취미로 책 읽기
스토리텔링의 비밀스토리텔링의 비밀 - 10점
마이클 티어노 지음, 김윤철 옮김,아우라, 2008, Aristotle's Poetics for Screenwriters

"42페이지로 구성된 시나리오 쓰기에 관한 가장 간결하고 정확한 최고의 책"

이는 <엔터테인먼트 위클리> 1999년 6월 29일자 커버스토리에 쓰인 문구다. 여기서 말하는 책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이다(소개하는 책은 <스토리텔링의 비밀>은 240페이지다). <시학>은 21세기에도 스토리텔링에 관한 이야기라면 거의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책이다. 이야기의 매체는 비극에서 소설, 드라마, 영화 심지어 게임에까지 확장되었지만 그 모든 스토리텔링의 핵심을 아우를 수 있는 진짜 진짜 고전이기 때문이다.


친절한 티어노씨, 아리스토텔레스의 대변인

사용자 삽입 이미지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

지난 학기 학교에서 '인문주간' 행사가 있었다. 그 행사 하나로 '스토리텔링' 강연이 있었다. 그 강연을 맡으신 교수님이 교내 공모전 심사를 하시기도 하는데, 이 공대생들을 향한 안타까운 한 말씀: "참 재미없어요. 심사해야 하니 읽긴 읽는데, 무슨 주인공이 되고 싶은 데로 다 되니...". 이 책의 '시작하는 말'의 첫 귀절 "이야기가 원하는 것을 말하라 Say what the story demands"와 맞닿는 이야기다. 이 책을 읽는 내내 짧아서 아쉽게 끝나버린 그 재미난 강연에 다시 들어간 느낌이었다. 이번엔 시간 제한 없이! 그 강연에서처럼 저자 티어노씨는 친절히 여러 영화를 예로 아리스토텔레스가 하려던 말이 무엇이었는 지를 짚어준다. 어떻게 해야 흥미로운 플롯이 되는지, 어떤 장치가 관객으로부터 '연민'과 '공포'를 나아가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지, 캐릭터는 어떤 특징을 가져야 하는지 한 챕터 한 챕터 읽다보면, 이 책을 소장하고 싶은 욕심이 생긴다.

더구나 핵심을 쏙쏙 뽑은 각 장(章)의 제목은 마치 '쪽집게 요약본'과 같아, 이 글을 쓰는 지금도 책 전체를 훑지 않고 차례만 보아도 '아, 이런 이런 내용이 있었지'가 쏙쏙 떠오른다. "왜 당신의 영화는 시한폭탄이 되어야 하는가?", "서브플롯은 잊어라-최고의 플롯은 한가지 길로만 간다", "빌어먹을! 겪지 않아도 되는 불행을 내가 또 불러들이다니!" 등등. 저자의 재치와 매끄런 번역에 절로 감사한 마음이 들 지경이다. 소심하게 마음 작은 한 켠에 작가의 꿈을 갖고 있는 사람이라면, 마치 잘 빠진 영화처럼 흡수되어 넘어가는 책장을 아까워할 것이다.



좋은 예, 나쁜 예

조금 아쉬운 점은, 이 책이 예시로 드는 영화는 분명 유명한 영화일텐데도 이 중 절반 이상은 내가 보지 않은 영화이고 그 중 또 절반은 이름조차 생소하다. 타깃 독자가 미국인에, 아마 나보다 한 세대 빠른 이라 그런 가보다. 물론 '남들 다 보는 건 안 보는' 희안하고 쓸데없는 오기를 가진 필자 탓도 크다('터미네이터'나 '아메리칸 뷰티'를 그런 이유로 보지 않았다).

그러나 덕분에 나는 더 풍부한 독서를 할 수 있었다. 모르는 영화를 대체할 만한 예시를 내 스스로 떠올려 볼 기회였기에. 또 필자는 영화보다 드라마를 더 좋아해서, 책이 설명하는 규칙에 들어맞는 드라마(좋은 예)를 떠올리는 재미도 쏠쏠했다. 주인공의 인생역전 플롯에는 찰스 디킨스 원작의 BBC 시대극 <리틀 도릿>을 떠올리고, 도덕적 갈등 장치에는 자신의 친구 수술비를 훔쳤던 소매치기 고복수에게 떨림을 느끼면서도 밀어내야 했던 전경이 나오는 드라마 <네 멋대로 해라>를 대입해봤다. 또 반대로 이 책에 나오는 고전적인 규칙에 익숙한 관객을 의도적으로 배신하는 작품(나쁜 예)을 떠올리는 재미도 쏠쏠하다 - 비록 성공률은 낮았지만.




이야기는 인간의 본능이고 그래서 누구나 한 번쯤 인생에 이야기 하나 쯤은 남기고 싶을 것이다. 내가 쓰는 이야기가 남에게 읽히기 위해서는 재미있어야한다주1. 안타깝게 필자의 이야기는 그렇지 못하다. 그러나 감히 인생에 이야기 작품 하나는 남기길 꿈꾸는 내겐 이 책은 이 여정의 지도와 같다. 부디 절판되어 잠재 라이벌들이 이 책을 못 보길 쫌스럽지만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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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아닌우현.

책은 삶을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매체인 동시에 삶에서 가장 쉬운 도피처라고 믿는 사람.
다른 사람이 글을 너무 잘 쓰면 배가 아픈 속 좁은 글쟁이 워너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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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otnote.
  1. 여기서 물론 재미란 단순히 웃기다는 이야기가 아님을 아시리라 믿지만 노파심에 덧붙인다 [Back]
2010/03/29 13:59 2010/03/29 1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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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정기철 2010/04/18 13:1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재밌게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