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미로 책 읽기
User image
(이왕주, 효형출판, 2005)
매력적인 캘리그래피에 이끄려 몇 년 전에 이 책을 집어들었다가,
너무 어려워서 내려놓았던 기억 때문에 학교 도서관에 '리더십 마일리지' 현수막에 걸린 표지를 볼 때마다 씁쓸해하면서도 다시 집어들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었다.

이 책을 다시 집어들게 된 건, 예정없이 단골카페에 갔던 날 때문이었다.
딱히 읽을 걸 챙겨가지 못 해서, 카페 한 켠 작은 책장에 있는 책을 쭉 훑어보는 데
이 책이 나를 불렀다.

영화 '집으로'를 시작으로 펼쳐진 이야기들..
여전히 책장은 쉽게 넘어가지 않았지만,
'그 때 왜 그리 어려워했지?' 싶게 생각보다 재미있었다.

플라톤, 소크라테스 뿐 아니라 니체, 하이데거, 스피노자, 로티, 라캉, 비트겐슈타인 같은 철학자, 그리고 도덕경까지 사람을 움츠리게 만드는 이름들을 자유자재로 들먹이는 저자의 유식에 조금 움츠러들게 되는 건 사실이다. 내가 무식한 걸 어쩌랴.
하지만 저자의 마술은 그런 철학자들이 한 줄로 함축적으로 표현한 사상을 무식한 내가 (반의 반이라도) 이해할 수 있게 영화에 빗대 풀어낸다는 거다. 더욱 대단한 건, 내가 본 영화보다 안 본 영화가 더 많은데도, 한 페이지 남짓한 그의 영화소개만으로도 고개가 끄덕여지고, 이 영화도 봐야지, 하게 된다는 거다. 예로 들면 제인 캠피온 감독의 The Piano 영화를 가져와서 에리히 프롬의 '소유와 존재'를 말한다.

이 영화에서 작가 제인 캠피온은 피아노라는 메타포로써 사랑에 대한 독특한 정의를 시도한다. 첫째, 사랑은 존재의 관계다. 여기서 존재의 관계란 가령 피아노와 연주자의 관계 같은 것이다. 돈이 있으면 누구나 피아노를 소유할 수 있다. 그러나 피아노르 사랑하는 일은 다른 자격을 요구한다. (중략) 그의 관심사는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존재하느 것이었다. 그가 왜 땅도 피아녿 심지어 에이다까지도 포기할 수 있었던가. 그런 것들의 소유를 사랑한 게 아니라 존재를 사랑했기 때문이다. 물론 그는 피아노를 위해 땅을, 에이다를 위해 피아노를, 에이다의 행복을 위해 에이다를 포기한다. 그러나 여기서 베인스가 포기하는 그것들에 대한 소유권뿐이다.

저자가 독립영화관에서 보았던 프랑스 코미디(?) Rain을 봤더라면 뭐라고 했을까 궁금하다. 같이 본 친구와 영화관을 나오면서 둘다 고개를 갸웃거렸는데, 그의 시원한 해석이 있다면 좋으련만!
Writer profile
author image
우연아닌우현.

책은 삶을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매체인 동시에 삶에서 가장 쉬운 도피처라고 믿는 사람.
다른 사람이 글을 너무 잘 쓰면 배가 아픈 속 좁은 글쟁이 워너비.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센스
Creative Commons License
2009/08/31 13:30 2009/08/31 13:30

Trackback :: 이 글에는 트랙백을 보낼 수 없습니다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