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을 펴기 전에 들었던 책 '블랙 아테나'의 육중한 무게감(심리적, 물리적 모두)에 비하면 너무나 명확히 '20대 일반인'을 위한 책이었다.
사족
네이버 블로그의 아아젠님의 리뷰에서 보고 읽어볼 생각을 했던 이 책에서 나는 '백인우월주의', 오리엔탈리즘의 실체를 파해치고 싶었다. 그러나 생전 처음 듣는 언어구조학으로 시작해서 120페이지가 넘는 서론을 걸쳐 시작하는 본문을 세 페이지도 못 넘기고 접었다. 너무 어려웠다. 내가 너무나도 모르는 세계다. 나도 좀 어려운 책을 읽고 싶다는 허영심을 채우기엔 나의 교양은 너무 허약하다.
그리하여 '20대 일반인'인 나는 정신없이 읽었다. 사실 책표지에 자랑스러이 떠돌아 다니는 이름 중에는 서희태 음악감독이나 김남희 작가, 안철수 교수님, 우석훈 박사, 최정원 씨, 이상은 씨처럼 반가운 이름도 있었지만 낯선 이름이 더 많았다. 그럼에도 역시 무엇인가를 이룬(혹은 이루고 있는) 사람들의 진솔한 이야기는 분야/지명도를 뛰어넘어 가슴을 파고들었다.
21명 저자 모두 정말 좋은 이야기들이었지만, 아무래도 지금 나의 고민/상황과 공명하는 이야기들이 더 와닿을 수 밖에 없다. 그 중에서도 가장 나를 떨리게 했던 이야기를 적어보려한다.
에드워드 권
에드워드 권, 요리사.
'날 것 그대로의 맛을 누린다'는 핑계로 요리와는 담쌓는 내게 요리사는 그저 엄친딸, 엄친아보다도 먼 외계 사람들일 뿐이다. 그러니 에드워드 권이란 이름을 들어 본 적이 없었다. 그저, 이런 책에 실릴 정도니 웬만큼 대단한 요리사인가보다라고만 생각했다.
그런 요리사가, 어려서는 떡볶이를 케첩으로만 했다 죄다 버렸다는 이야기를 털어놓는다. 이승기 못지 않은 도전정신'만' 갖고 덤볐다 퇴짜 맞고는 다시 덤빌 생각조차 않던 내게 한줄기 빛인 이야기였다. 대학까지 가서도 정신 못 차리고 군대까지 다녀와서도 방황했다는 그. 그렇지만 요리를 제대로 하겠다는 마음을 먹은 이후에는 주변 눈총 따위 신경쓰지 않고 열심히 했단다. 자기 전에 레시피 하나를 외우고, 하나를 개발해서 하루 레시피 두 개를 익히는 날들을 보냈다 한다. 그러면서 우리에게 묻는다. "당신의 노력을 담는 작은 노트가 있습니까?", "단 삼십 분, 당신만을 위한 시간이 있습니까?" 다행이다. 내겐 이 블로그가 나의 그러한 노트이다. 그리고 책을 읽는 그 시간들이 어느 때보다 나를 위한 시간이다.
김남희 작가
김남희 작가의 대표작.
나의 멘토이신 이혜진 선생님의 추천으로 이 분 책을 읽었다. 그리고 이듬해 2007년 4월. 나는 카미노 데 산티아고에 서 있었다. 10kg 남짓의 배낭을 짊어진 그 곳에서 나는 타인과 관계하는 법, 자연과 관계하는 법을 배웠다. 너무나 당연하게 여겨왔던 삶의 우선순위에 대해서도 거리를 두고 볼 수 있었다. 그래서 이성적인 판단으로는 내릴 수 없는 시도도 해 볼 용기를 얻었다 - 비록 실패로 돌아갔지만, 시도하지 않았다면 나는 평생 가지 않은 길에 미련을 두고 내 길을 탓했을 것이다. 무엇보다, 나를 초월하면서 동시에 내 안에 머물고 모든 창조물 안에 머물고 있는 그 분과 재회할 수 있었다. 지식으로 머리를 채우기 시작하면서 외면하려 했던 그 분 앞에서 나는 그 때 울고불고 떼를 썼다. 간절히 부탁했고, 그 분께 다짐했고, 겸허히 그 분 뜻을 따르기로 했다. 여전히 그 때 했던 다짐은 내 삶의 방향을 가리키는 화살표가 되고 있다.
김남희 작가는 또 묻는다. 보고 싶지 않은 진실을 본 적이 있느냐고.
작가나, 장기여행자들에겐 명함도 못 내밀 여행경험이지만, 그래도 곱게 자란 나는 그러한 진실을 본 적 있다. 나는 무력했다. 어찌해야 할 지 몰랐다. 한창 밝게 웃으며 놀아야 할 아이들이 삶에 허덕이고, 세상을 다 안다는 표정을 지을 때 나는 난감했다. 그렇지만 내가 세상에 배신당했다 느끼며 환멸을 느끼려는 순간 따뜻한 집으로 초대한 것 역시 그들이었다. 변변한 거라고 없는 집에서 시원한 물 한 잔을 마시며, 내가 접어준 종이연꽃을 돌려가며 보던 가족들.
당신 삶이 어딘가 이상한데, 대체 왜 그런지 모른다면 떠나보라.
파묻혔던 삶에서 조금만 벗어나보라. 당신에게 가장 필요로 하는 것, 당신 안에서 관심을 필요로 하지만 늘 무시당하기 일쑤인 당신의 일부를 만날 것이다. 당신의 밑바닥, 세상을 밑바닥을 마주하며 진짜 이야기를 만날테니까.
가수 이상은
내가 겨우 2살 때 그녀는 '담다디'를 불렀다. 나는 담다디 노래의 후렴구 밖에 모르는 세대이다. 그래서 나는 그녀가 20대 때 어떤 모습이었는 지 모르겠다.
그럼에도 그녀의 글은 내 마음을 파고 들어왔다. 30대 하루 하루 사는 데 바빠하며 살았는데, 그 삶에서 내공이 차곡차곡 쌓인 지금 40대에, 20대의 황당한 꿈이 더 이상 불가능한 꿈만은 아니란다.
콩닥콩닥. 혹시 나도 40대엔, 지금은 차마 시도해볼 수 없는 그 일에 덤벼들 수 있는 내공이 쌓일 수 있는 거 아닌가? 아니 50대에라도 되면 좋겠다. 60대에 해야된다면, 60대에라도......,
물론 시간을 산다고만 해서 그 내공이 쌓일 수는 없겠지만, 허무맹랑한 꿈을 꿔도 된다는 허가를 받은 느낌이랄까? 어쩌다 우리는 이런 허가를 기다리며 있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서희태 음악가
내가 홀릭했던 베토벤 바이러스의 음악 감독이었다.
음악가여서 그런 걸까. 글도 사람을 울린다. 영화표를 끊고 남은 시간 동안 읽던 터라 하마터면 영화관 상영관 들어가기도 전에 울 뻔 했다.
그의 질문 중 하나였다. "당신을 기억도 못 하겠지만, 그래도 다시 만나고 싶은 사람이 있습니까?" 딱 두 번 만났던 그가 떠올랐다. 유학생이던 서희태 음악가에게 사우어크라우트를 더 얹어주던 시장 상인처럼 그가 내게 베푼 것은 그리 대단하지 않은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추위와 체력고갈로 절박하던 내게 Peter는 구세주였다. (4살 연상 미남이었다는 것은 오프더레코드) 비가 일주일 넘게 이어지던 카미노 위의 날들 중 하루였다. 그 날만큼이라도 따뜻한 침대에서 자고 싶은 간절한 마음에 애써 잡은 침대를 버리고 나서려는 찰나였다. 안면이 없었는 데도 불구코 그는 나를 뛰어와 세웠다. 내가 찾아가려는 숙소의 존재여부가 불확실하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알아볼 수 있을 만한 모든 곳에 전화를 걸어주었다. 확인은 결국 불가능했지만 나는 가야겠다 생각했다. 그러면서도 망설였다. 그 때 그가 내 어깨를 토닥이며 미소로 해주었던 "You can make it".
아, 그는 절대 모를 거다. 그 토닥임, 그 한 마디가 얼마나 큰 힘이었는지. 나는 틀렸고, 그 숙소는 찾을 수 없었다. 그래서 온 것 이상을 더 걸어가야 했다. 그 날 그가 아니었으면 절대 11km가 넘는 오르막길을, 마주쳐오는 비바람을 헤치고 가지 못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다음날, 그 다다음날까지도 나는 걷다 힘들 때마다 그의 "You can make it"을 되뇌었다. 왜 하필 나는 그를 다시 만났던 날 (롤링페이퍼 역할을 하던) 조개를 챙기지 않았던 것일까. 누구에게보다도 그의 이름을 받았으면 했는데. 덕분에 그 아쉬움까지 그에 대한 기억이 더 깊어졌겠지만. (정보가 더 있으면 공개수배라도 할텐데...이 놈의 미련)
이 책에는 질문만 있고, 답은 없다. 선배들은 어떻게 살라고 일러주지 않는다. 조금 먼저 인생의 길을 나섰다는 이유로 조금 먼저 부딪혔던 고민과 경험을 털어놓을 뿐이다. 서로 다른 인생, 단 하나의 정답만이 있겠는가. '무엇이 정답인가'가 아니라 '무엇이 문제인가'를 깨닫게 해주는 것이 선배의 몫이라면, 각각의 문제에 대해 나름의 답을 만들어가는 것은 이 책을 읽는 이십대의 몫이다.
편집부의 글처럼, 족집게 과외같은 속 시원한 답은 없다. 그렇지만 21명의 인생 선배들이 각자 몇 개씩 던져주는 질문에 한 번 멈춰 답을 생각해보고, 책장을 넘겨 선배들의 이야기를 귀 기울여보자. 그러다보면 조급했던 마음을 조금은 다잡고 부끄러워 숨겨두었던 꿈을 살그마니 꺼내 볼 용기가 당신을 감쌀 것이다, 내게 그러했듯이.
책 즐겁게 읽으셨다니 저도 기쁩니다^^ 김남희 작가님 참 멋지신 분이죠? 제게 이 책 추천해주셨던 선생님께서 나중에 조병준씨의 "제 친구들하고 인사하실래요?" 추천해주시면서 이번엔 인도가겠다는 거 아닌지 걱정하셨더랍니다ㅎㅎ (짐작하셨나요? 네, 인도도 다녀왔습니다. 일정상 책에 나온 곳은 포기하고 돌아왔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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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현님의 독후감을 읽고 김남희 씨가 궁금하여 주말에 그녀의 여행 시리즈를 읽었네요. 2권(산티아고편)이 특히 좋았습니다^^. 우현 님의 감동이 이 책으로 안내했으니, 좋은책 읽고 감동받은 이의 감동에도 감사~^^
책 즐겁게 읽으셨다니 저도 기쁩니다^^ 김남희 작가님 참 멋지신 분이죠? 제게 이 책 추천해주셨던 선생님께서 나중에 조병준씨의 "제 친구들하고 인사하실래요?" 추천해주시면서 이번엔 인도가겠다는 거 아닌지 걱정하셨더랍니다ㅎㅎ (짐작하셨나요? 네, 인도도 다녀왔습니다. 일정상 책에 나온 곳은 포기하고 돌아왔지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