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미로 책 읽기
규칙도, 두려움도 없이

(이여영, 에디션더블유, 2009)

내가 이 책을 보고 사야겠다고 마음 먹은 것은 '20대 여자'라는 타겟설정 때문도, 이 책이 '성공적인 사회생활'을 인질로 잡는 자기계발서이기 때문도 아니었다. 미드에나 나올 법한 마천루 사이를 조깅하는 탄탄한 여성이 담긴 표지 때문은 더더구나 아니었다. (이 표지 때문에 친구는 '이상한 책'을 본다고 쉽게 말해버렸다. 그녀가 주장하는 '사회생활의 정답 패션'을 책에도 입혔더라면 이런 폄하는 피했을텐데) 이여영이라는 이 기자의 특이한 이력 때문이었다. 중앙일보 기자로서 촛불시위를 보고 와서 '중앙일보가 기록하지 않는 것들에 대해'라는 글을 블로그에 남긴 기자였다. 기자가 궁금해졌다. 어떤 뚝심으로, 사회적 약자인 20대 여자가 저런 무모한 짓을 했지?

사실 그런 정치적(?) 이야기는 맨 마지막 한 장(Chapter) 뿐이다. 그렇지만 절대 나머지 자기계발서 내용의 책장이 아깝지 않았다. 대학시절부터 입사 이후까지 이십대면 겪고, 겪어야 할 길에 그녀의 솔직한 이야기들이 적절한 긴장과 때로는 '정말 저 정도까지?'하는 의혹까지 갖게 한다.

익숙한 것과 결별하라. 이 평범하고 뜬 구름잡는 이야기에 무슨 타격을 받겠는가. 그러나 그녀가 봉천동과 대학친구들을 떠나는 과정을 읽고나니, 나 역시 대전에 익숙해져서, 새로운 치즈를 찾을 생각을 하지 못하는 상태임을 깨달았다. "나는 갑천변에 저 아파트 한 칸 얻고 살면 좋을텐데", "나는 캠퍼스가 참 좋아, 기숙사도 나름 정들었어"라 하던 말이 "이 편한 걸 왜 버려?"를 꾸며 말 하는 것일 뿐이었음을. 물론 객관적으로도 대전이 살기 좋은 곳이긴 하지만, 나는 여전히 좀 집착적으로 대전에 남아있고 싶어한다. 훌쩍 떠나고 싶은 만큼 반대로 익숙한 '돌아올 곳'이 필요하기 때문일까.

회사는 교과서가 아니다. "회사는 학원이 아니다". 내가 인턴 들어갔던 디자인 스튜디오 사장님이 첫 날 내게 하신 말이다. 인턴인 나로서는 '열심히 배우겠습니다'라고 들어왔지만, 배우는 건 어디까지나 '내 사정'이다. 나는 배워야 하는 게 아니라 일을 해내야 하는 거였다. 어느 감독은 아예 "열심히 하는 건 필요없다. 잘 해야한다"라고까지 했다 한다. 물론 말꼬리 잡힐 여지는 있지만, 틀린 말은 아니다. 조용히 묵묵히 열심히 일하는 것이 회사 생활에 미덕이 아니라고 저자는 여러 번에 걸쳐 강조한다. 욕을 먹더라도 일을 밀고 나갈 수 있어야 한다고, 오히려 욕을 먹는 것이 '내가 일하고 있다'는 증거라 한다. 이런 따끔한 선배의 말, 듣고 싶지 않지만 들어야 할 말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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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ment of Truth.
그녀는 문제의 블로그 글을 쓴 이유로 20년 후에 후회할 일을 만들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라 한다. 기자로서 그 글이 가져올 여파를 짐작하고도 그녀는 쓴 것이다. 문화부 소속으로, 라이프스타일 기자이기때문에 그런 정치적 이슈는 넘어가도 누구에게 손가락질 받지 않을 수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그 뜻을 표출했다. 기자니까. 그게 그녀의 사명이었으니까.
사실 나는 많이 부끄러운 20대이다. 정치에 냉소적인 20대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촛불도 켜지 않았고, 태안의 기름 한 방울 닦지 않은 사람이다. 그래서 이번 학생회장 선거 때는 투표하려 한다.......(응? 고작 그거?) 냉소로는 아무 것도 변할 수 없다는 걸 뼈저리게 느끼게 해 준 MB과 서 총장에게 고맙다고 해야하나, 이걸?

무엇보다도 길들여지지 말라. 당신은. 당신 주변의 누구로부터도. 당신이 읽은 데서 출발해, 당신이 생각한 데서 끝내라. 당신 내면 깊숙한 곳에서 울려퍼지는 소리 그대로 행하라.
세상은 그런 당신을 비난할 것이다. 어쩌면 당신은 두려울 것이다. 그럴 때면 싸우기를 주저하지 마라. 더 많이 싸울수록 당신은 더 빨리 성숙해진다. 규칙도, 두려움도 없이. 내내 악전고투할 평생의 서막이라고 할 20대에는 말이다. (에필로그 중에서)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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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아닌우현.

책은 삶을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매체인 동시에 삶에서 가장 쉬운 도피처라고 믿는 사람.
다른 사람이 글을 너무 잘 쓰면 배가 아픈 속 좁은 글쟁이 워너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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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1/23 20:53 2009/11/23 2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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