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미로 책 읽기
유토피아

(토머스 무어, 나종일 옮김, 2005)

이 책을 읽어보지 않은 사람들도 다 제목은 들어본 "그" 오리지날 유토피아다.
그래, 실토하자면 내 의지로 이 책을 결코 집어든 게 아니다. 저번 학기 때 들은 김대륜 교수님의 인문강의에 꽂혀 사심 수강하게 된 The History of Western Civilization주1강의 때문이었다. 에세이 주제는 the idea of religious toleration represented in Thomas More's Utopia주2.

Thomas More

Thomas More

물론 수학의 정석의 집합 단원만 수차례 보는 대한민국 학생의 티를 벗지 못하고 나는 첫장부터 읽었다. 그러면서 느낀 것 하나. 이 책의 정치적 의미, 사회적 의미에 파묻혀 나는 잊고 있었다. 유토피아는 소설이다. 그가 벨기에로 출장을 다녀오는 길에 친구를 통해 뱃사람을 소개받는 것으로 이야기가 시작된다. 그렇다고 물론 '소설은 소설일 뿐이고 허구일 뿐이다'라는 말이 아니다. 당대 내노라하던 인문학자 토머스 무어의 소설을 '의미'에 짖눌려 논문 대하듯하는 마음가짐으로 책장을 넘길 필요가 없다는 거다.

토머스 무어가 이상적인 세상으로 제시한 유토피아가 마음에 모두 든다고 할 수는 없다. 특히나 역사적으로 공산주의가 실패한 것을 알고 있고, 민주주의 이론을 세뇌당한(그렇다고 그 민주주의를 다 누리고 있는가는 다른 문제일테지만) 나로서는 쉽사리 가고픈 마음이 생기지 않는다. 그렇지만 그가 당시의 사회를 반추해서 만들어낸 세계는 나름 정교한 시스템을 가지고 있다 생각했다.

과제 때문에 더 세심한 관심을 가지고 읽었기 때문이겠지만, 그의 "급진적인" 종교관에 많은 관심이 갔다. 개인적으로 토머스 무어와 같은 카톨릭 신자주3이고, 어릴 적부터 성당에 다녔지만 중학교 이후 8~9년 가까이를 냉담하게 지냈고, 예비 신자 15년 만에 올 여름 첫영성체를 받았다. 여전히 산사 구경을 좋아한다. 성당에 다시 나오기 전이었던 시기, 카미노 데 산티아고주4에 가서 '접신'했고, 이듬해는 터키에서 무슬림들과 어울려 놀았다. 지난 여름에는 원숭이 사원의 할아버지께서 정성스레 손목에 감아주시는 실팔찌를 물이 빠지도록 하고 다녔다. 내가 5년째 풀지 않고 차고 있는 목걸이는 산스크리트어 '옴' 모양이다. 댄 브라운 소설도 재밌게 읽는다.
"너의 종교가 뭐냐?", "색깔을 분명히 해라"라고 할지도 모르겠다. 나는 카톨릭 신자이다. 그러나 나는 하느님은 자비로우신 분이고, 존재를 초월하시는 분이기에 내 '독실하지 못한' 행동들이 옳지 않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독실한 분들이 쫌생이라는 건 절대, 절대 아니다. 유토피아 인들이 그러하듯 나 역시 종교심에서 연유한 독실함이라면 거룩한 것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바다로 향하는 강 줄기는 여럿이다. 종교도 서로 다를 수 있지만 그 끝은 같은 신이다주5'라는 표현을 참 좋아한다. 이 말은 터키 동부 Van에서 만난 크루디쉬 무슬림에게 들은 이야기다.


토머스 무어가 처형장으로 향하는 모습

토머스 무어가 처형장으로 향하는 모습


토머스 무어는 이런 생각을 1516년에 벌써 한 것이다. 그리고 그는 생각에만 그치지 않았다. 그는 종교가 사람을 가르고 해치는 이유가 되는 것을 반대했고, 따라서 교회의 분열을 막고자 헨리 8세가 영국교회의 수장이 되는 것에 동의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재판에 회부되었을 때 그는 "속세의 인간이 영적인 세계의 우두머리가 되는 것을 용납해서는 안 된다주6"라고 했다 한다. 그리고 그는 처단되었다.

카톨릭 신자로서 나는 제2차 공의회를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고, 그 정신을 가장 훌륭히 이행하셨던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을 참 존경한다. 그렇지만 여전히 베네딕토 16세 교황님의 행보는 나를 조마조마하게 하고, 종교는 전쟁의 명분으로 쓰이는 경우가 아직 많다. 명동에는 눈살을 찌푸리고, 심지어는 길가는 사람을 막고 시간을 뺏으며 선교하시는 분들이 많다. 유토피아가 나온지 500년이 되어가는 이 때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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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아닌우현.

책은 삶을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매체인 동시에 삶에서 가장 쉬운 도피처라고 믿는 사람.
다른 사람이 글을 너무 잘 쓰면 배가 아픈 속 좁은 글쟁이 워너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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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otnote.
  1. 영어강의로 바뀌기 전 강의명은 서양문화사 [Back]
  2. 토마스 무어의 유토피아에서 나타나는 종교적 관용 정도 되겠다. 아, 들린다.. 재수없어 하는 목소리. 한 마디 하면, 나도 이 에세이 때문에 피X 싸는 줄 알았다. [Back]
  3. 토머스 무어는 사후 400년이 되던 해인 1935년 교황청으로부터 성인 칭호를 받았다 [Back]
  4. 야곱 성인이 유럽에 카톨릭을 전파했던 길로 현재까지 순례자들이 순례하는 길이다 [Back]
  5. 무슨 -ism에서 나온 말이라는 데, 그 때 써놓지 않아서 뭐였는 지 기억나지 않는다. 아시는 분 있으면 꼭 좀 리플 부탁한다 [Back]
  6. pp.9 에서 재인용 [Back]
2009/12/05 02:17 2009/12/05 0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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