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미로 책 읽기
새벽 세시, 바람이 부나요?

(다니엘 글라타우어, 김라합 옮김, 문학동네, 2008)

이 소설은 주인공들이 서로 보내는 이메일로 이루어져있다. 새로운 매개체를 통한 새로운 사랑의 형태에 대한 호기심 때문에 읽고 싶어졌던 책이다. 이전에 포스트잇 라이프를 굉장히 즐겁게주1 보았기 때문에 이번 책 역시 기대하는 바가 없지 않았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 책 역시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즐겁게 읽었다.

My Blueberry Nigiths

"somethings are better on paper"

이메일이라는 매개체
포스트잇 라이프에서 포스트 잇이 서로를 잘 아는(적어도 안다고 생각하는) 모녀 사이에서 오가는 데 반해 이 책에서 나오는 이메일은 서로 같은 동네에 산다는 것 이외에는 알지 못하는 남녀 사이에 오간다.

이메일은 좀 특이한 녀석이다. 편지 같기도 하고, 쪽지 같기도 하고 메신저 같기도 하다. email이란 이름처럼 편지에서 나온 녀석이다. 그렇지만 에미처럼 단 20초만에 뚝딱 써서 보낸다. 날씨 인사나 안부인사를 생략하고 써도 이상하지 않다. 가는 데도 오래 걸리지 않는다. 상대가 늘 웹에 붙어살거나, 아웃룩을 켜놓는 편이라면, 그리고 상대가 답장할 의도가 있다면(!) 몇 분, 몇 초만에 뚝딱 써내려간 메일을 받을 수도 있다. 그렇다고 메신저나 채팅방처럼 상대가 꼭 그러하리라 기대하지 않는다.

그래서 이 책을 읽을 때는 각 캐릭터들이 한 말 만큼이나 메일간의 간격 또한 눈여겨 읽어야 한다. 5초만에 온 답장인지, 3시간 후인지, 혹은 아예 2주 후인지. 그 간격만큼 인물들의 머리에서, 혹은 가슴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 지 짐작하는 것 역시 독자의 몫이다.

낯선이의 기적

때로는 낯선이이로부터 관심이 기적같다

낯선이의 기적
'낯선이의 기적'이란 표현은 내가 2년 전 쯤 붙인 말이다. 그 무렵 나는 첫 실연의 맞이하고 혼자 아픈 척은 다하고 다닐 때였다. 마음을 달래려고 갑천의 징검다리에 쪼그려 앉아 물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 때 저 멀리 추리닝 입은 사람 한 명주2이 나를 계속 쭉 지켜보는 것이 아닌가. 그게 내게는 참 위안이었다. 사실이야 어떻든 내가 해석한 그의 관심은 "저 녀석, 저러다 물에 빠져드는 건 아니겠지?"라는 걱정이었다. 낯선이로부터 받은 관심이 참 큰 위로였단다.

레오가 에미에게 받은 위로가 그랬을 것이다. 마를리네에게 오지 않을 이메일을 기다리는 그 순간 도착했던 (아직은 낯선) 에미의 연말 인사. 나는 사랑받을 자격없는 사람이 아니었던가, 하는 순간에 받는 낯선이의 관심은 기적과도 같은 효과가 있기에 '낯선이의 기적'이란 말을 하는 거다.

John Thornton (Richard Armitage)

"You're coming home with me?"

집, Home
이 책에서 내가 가장 인상깊었던 메일 문구를 꼽으라면 나는 당연 이 문장을 꼽을 것이다:
내가 이따금 당신의 집이 되는 거, 좋아요!

옆의 사진은 내가 열 번도 더 본 BBC 시대극 드라마 North and South의 마지막 장면이다. 밀튼 행 기차로 쏜튼씨를 따라나서는 마가릿을 발견한 순간 그의 대사주3는 드라마를 보는 모든 여심들을 뒤흔든다.
"You're coming HOME WITH ME?

물론 이 소설에 나오는 에미-레오 커플의 경우, 에미에게 이미 집(가정)이 있기 때문에 다른 식으로도 해석이 가능하지만, 일반적으로도 나의 집처럼 느껴지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참 축복받은 일이다. 콩닥콩닥 설레기만 하는 사람이 아니라 씻지않은 모습으로도 만날 수 있고, 어려서 엄마에게 폭 안기듯 안겨서 영화를 볼 수 있는 사람, 말로 하기 힘든 감정과 생각까지 터놓을 수 있는 사람, 그래서 때로는 나의 집처럼 느껴지는 사람 말이다.


한 번이라도 펜팔이 있었던 사람, 펜팔을 갖고 싶었던 사람, 혹은 누군가와 에로스에 앞서 플라토닉한 사랑을 꿈꾸는 사람이라면, 그러면서도 에로스에 조마조마하는 사람이라면 재밌게 읽을 소설이다.



Writer profi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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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아닌우현.

책은 삶을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매체인 동시에 삶에서 가장 쉬운 도피처라고 믿는 사람.
다른 사람이 글을 너무 잘 쓰면 배가 아픈 속 좁은 글쟁이 워너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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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otnote.
  1. 단지 쾌락을 느꼈다는 것 이상으로, 공감으로부터 나오는 즐거움이다. 실제로는 정말 숨도 못 가눌 정도로 울며 보았다 [Back]
  2. 너무 멀어서 남자인지 여자인지, 혹은 젊은 지 나이드신 분이신지도 모르겠다 [Back]
  3. 그리고 이 드라마의 마지막 대사 [Back]
2009/12/23 14:46 2009/12/23 1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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