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미로 책 읽기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요한 볼프강 폰 괴테, 박찬기 옮김, 민음사, 1999)


"유부녀 좋아하다 권총자살 한 이야기"

삼각관계
워워, 이는 필자가 한 이야기가 아니다. 이 블로그보다 20,000배 쯤 인기있는 무한의 노멀로그여자친구 있으면서 사랑한다고 말하는 남자편에서 나온 이야기다. 덕분에 필자는 고질적으로 가지고 있는 고전문학회피증후군주1을 이겨내고 책을 펼쳤다. 워낙 이름이 큰 책이라 '달과 6펜스'처럼 너무 어린 나이에 '읽어야 할 책'으로 인식해 읽다 내동댕이 친 책이었지만, 이젠 나이가 먹어서인지, 책장이 내 기억 속 책장보다 가벼웠다. 아니면 무한님의 자극적인 표현이 '막장드라마'를 연상시킨 효과 때문인가?

사실 <오시안의 노래>주2라든지, 괴테가 매일 끼고다닌다던 <일리아스> 이야기로 꾸며져서 그렇지, 현대극으로 옮긴다면 그저 그런 삼각관계 이야기다. 그래도 한 편의 시대극을 읽는 느낌과, 괴테의 개인적인 경험주3에 대한 상상, 알베르트와 베르테르 사이의 긴장에 대한 기대감, 편지 수신자인 빌헬름에 일치감으로 다음 장을 넘기게 된다.



베르테르의 라이벌은 빨간머리 앤

빨간머리 앤

감수성 가득한 소녀 빨간머리 앤

물론 이야기 속 라이벌은 로테의 약혼자/남편 알베르트다. 여기 빨간머리 앤과 붙은 종목은 감수성이다.
읽는 이로 하여금 누가 더 손발 오그라들게, 아니 아예 손발 없어지게 만드나, 하는 시합같은 것 말이다. 물론 이같은 경쟁엔 빨간머리 소녀 앤이 더 불리하다. 같은 말을 해도 앤이 하면 옹송그러들지 않게 예쁘게 받아줄 테니. 아무래도 소녀 아닌가.

그런데 이 베르테르는 별 거 아닌 일에 참 잘도 운다. 눈물지으며 떼도 잘 쓰고, 상사에게도 감성적으로 대든다. 그나마 처음에는 자제를 하더니만 콩깍지가 씌이고 난 이후에는 발하임의 머슴에 변호를 자처하고 나선다. 그 변호라도 법관을 설득할 만큼 '차가운 이성'이었으면 '쿨한 도시남자'를 그의 뜨거운 가슴에서 발견하겠지만, 감정이입에 빠져버린 그가 나는 어리숙한 유딩으로 보이더라.

괴테의 탓도, 속물인 나의 탓도 아니라 18세기와 21세기라는 시간 차이 때문이겠지. 18세기가 낭만주의가 꽃피던 시대로 현란한 과장을 당연스레 여겼다면, 지금 필자와 독자가 사는 21세기는 '리얼리즘'에 목숨걸고 글쓰는 시대 아닌가. 덕분에 온갖 속물스런 걱정을 한풀 접고(대신 혈통과 평판이 더 중요한 요소로 자리잡고) 로맨스를 바라볼 수 있는 이야기가 되지 않았을까?



삽화로 깨진 남주의 환상

윗 문단에서 필자가 베르테르에 대해 너무 가혹히 평판했다 생각할 지 모르겠다. 아마 비이성적인 실망과 분노가 겹쳐 그럴 것이다. 그러나 독자 분들도(특히 여성분들) 이 삽화를 보면 이해해 주시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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셀 수 없이 넘쳐나는 러브스토리에 익숙해진 21세기 독자들 중 배 나오고 턱살이 흐르는 멜로 남주를 아는 사람이 누구인가? 코메디 말고 정극 중에서. 그래, 물론 18세기에는 그런 신체적 상태가 부주4를 나타내는 척도였을 지 모른다. 그러나 외모지상주의에 찌든 대한민국 국민인 필자는 충격과 공포였을 뿐이다., 이런 삽화를 1999년도 판에서까지 굳이 넣어야 할 이유가 무엇이란 말인가? 더구나 이 책은 2004년도에 19쇄로 나온 책인데! 오, 제발. 저런 외모의 사람이 닭살 송송 돋게 만들며 나를 좋아한다 그러면 나는 됐습니다, 라고 할 수 밖에. 로테가 정말 아름다운 심성을 지니긴 지녔구나. [아, 출판사의 의도는 이거였나?]

"엊그제의 괴테 번역이나 도스토예프스키 번역은 오늘의 감수성을 전율시키지도 감동시키지도 못한다"라는 편집위원들의 마음가짐이 시각적으로도 드러나주길 간곡히 바라는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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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아닌우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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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otnote.
  1. 앞선 포스트에서 밝힌 바 있듯, 초등학교 6학년 때 달과 6펜스를 집어들었다 난해함에 질린 이후 고전이라면 질색하는 병 [Back]
  2. 사실 베르테르가 로테에게 낭송해주는 부분을 처음 몇 단락 읽고는 손을 옹송거리며 그냥 넘겨버렸다 [Back]
  3. 그의 경험과 더불어 친구 예루살렘 역시 유부녀를 좋아하다 자살한 소식에 영감을 얻어 괴테는 7주만에 이 불후의 베스트셀러를 썼다한다 [Back]
  4. 보아하니 베르테르가 먹고살 걱정은 한 적은 없던데 [Back]
2010/03/08 23:38 2010/03/08 2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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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Subject: [책]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Die Leiden des jungen Werthers)

    Tracked from 월풍도원(月風道院) - Delight on the Simple Life 2011/10/21 16:27  삭제

    요한 볼프강 폰 괴테의 경험 속에서 우러나온 소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이보게 빌헬름. 오랜만에 편지를 하는군. 지금은 창밖에 어둠만이 존재하는 밤이라네. 먹고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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