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미로 책 읽기
지식의 미술관

(이주헌, 아트북스, 2009)

지난 번 세계명화2: 성서 상징에서 느꼈던 갈증을 풀게 해준 고마운 책이다. <한겨레>에 연재되던 내용을 엮은 것이라 그런 지 각 부의 장이 적당한 길이로 잘 나뉘어져있어 새로운 내용들이 섞여있어도 그다지 부담스럽지 않게 받아들일 수 있어 더 좋았다.

각 글에 키워드를 하나씩 내걸고 한 작품으로 이야기를 시작하여 꼬리에 꼬리를 무는 형식으로 다른 작품과 비교하거나 작가의 관한 이야기, 혹은 그 작품이 세상과 어떤 인연을 갖게되는 지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그의 글 재주 덕분에 배울 게 많은 책인데도 책장이 술술 넘어간다. 정신없이 읽다보니 커피가 다 식고, 도서관이 문닫는 연휴에 읽을 책장이 40여페이지 밖에 남지 않아 아쉽게 했던 책.

무엇보다 마음에 드는 것은 그의 서문에 밝힌 그의 "미술감상"에 대한 소견이었다.
누누이 이야기했듯, 단순히 지식의 양이 감상자의 감상 능력과 안목 수준을 경정하는 것은 아니다. 직관을 활용해 작품의 본질을 들여다보는 능력이 보다 중요하다. 그러나 그 능력을 배양하기 위해서는 다시 지식과 경험의 확대를 위한 노력이 필수적이다. 지식과 경험은 구슬이고 직관은 꿰는 실이기 때문이다. 이 책에 쓰인 내용들이 독자 여러분의 직관에 꿰여 구슬다운 구슬, 아름다운 구슬이 될 수 있기를 소망해 본다.
어떤 분야이든 그 분야의 대가들은 통하는 데가 있다고 하더니, 통합(직관)을 위해서는 분화(지식과 경험)가 필요하다는 칙센트미하이 박사 말이 언뜻 내비친다. 감흥없는 감상도 부족한 것이지만, 최소한의 이해없는 감상도 부족한 것일테니까!



보는 대로 그리기? 아는 대로 그리기?

의궤

조선시대 행사를 기록하던 의궤

어설프게 머리가 자라기 시작하던 때, 나는 이미 동네 미술학원을 다니고 있었고, 서양 회화, 특히 르네상스 때부터 이어진 아카데미 화풍의 그림들를 '회화의 정석'으로 알고 자랐다(그래도 눈썹없는 모나리자가 예뻐보이진 않았지만). 그래서 어린 머리로는 그런 틀에서 벗어난 그림들이 꼭 어린애들 그림 같았다. 그렇게 "안" 그리는 게 "못" 그리는 것이라 여기었던 터다.

아카데미 화풍의 기초가 무엇이던가. Linear Perspective(원근법)과 명암을 통한 3차원 구현 아니었던가. 그런데 조선시대 화원들이 그렸다는 의궤에는 그런 perspective가 없다. 위쪽의 사람들은 아예 뒤집혀 있다.
너무 속상했다. 왜 우리나라 조상들은 똑같이 못 그린 거야? 하고.

누가, 이 때만해도 그림은 감상 이상의 용도가 있었다고, 보이는 대로 그린 것이 아니라 아는 대로 그려놓은 것(촉각상)이라고 설명해주었더라면 좋았을 것을. 우리가 너무나 르네상스 화풍에 익숙해져서이지, 사실은 이와 같은 접근이 더 범세계적이고 자연스러운 것이었다고 말해주었더라면 좋았을 것을.

나는 이런 이야기를 대학에 와서나 들었다. 그 당시 교수님이 들어주신 예가 이집트의 그림들이다. 이 책에서도 예를 든 이집트 그림을 예로 든다. 얼굴은 측면, 몸은 정면 발은 다시 측면. 우리가 가장 잘 알아볼 수 있는 부분들을 그리는 거다. 간혹 이집트 그림에서도 "보이는 대로" 그려진 인물들이 있다. 그런 이들은 대부분 노예와 같은 낮은 지위의 사람이다. 그야말로 "(남들에게) 보여지는" 객체이지 주체가 못 되는 처지이기 때문이다. 같은 원리로 의궤에 나타난 인물들은 주체적으로 그들의 방향을 드러낸다. 가운데 말을 타고 가는 사람은 그의 진행 방향대로 앞을 보고 있고, 관자(觀者)의 먼 쪽에 있는 사람들은 관자가 그들 가까이(그러니까 행렬 건너편)에 와서 보면 제대로 선 모습이다.



Bergama Zeus

베르가마 신전이지만 지금은 베를린에 있다

엘기니즘: 강자의 변명들

약하면 억울한 일을 많이 당한다. 미술계도 그렇다. 우리나라만 해도 외규장각에 보관되어 있던 서적들이 죄다 파리에 가 있다. 국보급 예술품들이 유럽의 수집가들 방에 켜켜이 쌓여있는 경우도 있다.
아예 로마시대 때의 제단을 통째로 뜯어 간 곳도 있다. 터키의 베르가마(Bergama)다. 높이 9.6m에 달하는 이 제단은 지금 독일 베를린 박물관에 가 있다.

우리나라를 비롯한 피해국들은 반환을 요구하지만 그렇게 하나 둘 반환하고 나면 박물관이 비어버릴 가해국 입장에서는 완강하게 반대하고 있다. 박물관이 비어버리면 문화유산센터로서 기능을 잃어버리게 된다는 주장이다. 더구나 어떤 작품들은 약탈후 거래까지 이뤄졌기 때문에 문제가 더 복잡해진 경우도 있다.

안타깝게도, "경매에 나왔을 때 사가는 게 가장 좋은 문화재 환수 방법"이라는 게 현 상황이다. "한 번 내 손에 들어온 것은 영원히 내 것"이라는 두살배기 아기들 같은 저내들 생각에 씁쓸하지만 별 도리가 없으니 안타까울 뿐이다.



Portrait of Romaine Lacaux

르누아르, 로맨 라코 양의 초상, 1864

그림에 빠지다: 스탕달 신드롬

스탕달은 그의 책 <나폴리와 피렌체-말라노에서 레조까지의 여행>에서 "산타 그로체 교회를 떠나는 순간 심장이 마구 뛰는 것을 느끼기 시작했다"며, "생명이 빠져나가는 것 같았고 걷는 동안 그대로 쓰러질 것 같았다"고 기록했다. 교회 안에 있는 예술품을 보고 충격을 받아 이런 증상을 겪었다는 것인데, 이 기록에 의거해 1979년 이탈리아 피렌체의 정신과 의사 그라치엘라 마게리니가 '스탕달 신드롬'이라는 용어를 만들어 냈다.
-본문 p. 134-5


그림에 발이 잡힌 적이 있는가? 가장 강렬히 나를 사로잡았던 그림을 꼽으라면 나는 왼편에 실은 르누아르의 '로만 라코양의 초상화'를 꼽을 것이다. 내가 이 그림을 만난 건 2006년 서울 한가람미술관에서 <인상파 거장전>을 보러 갔을 때였다. 관람실 코너를 돌아서는 순간 마주친 로만 라코양의 촉촉한 눈빛! 살아있는 반짝이는 그 눈빛에 잡혀서 관람객들이 몰려있던 앞쪽으로 다가가지도 못하고 꽤 오랫동안 서 있었다.
어떻게든 이 기분을 오래 간직하고 싶어서 엽서든 액자든 기념품을 팔면 제깍 사야겠다, 마음먹고 샵에 갔을 때 실망했더란다. 엽서가 있긴 했지만, 종이 위에 인쇄된 로만 라코 양의 눈빛은 물감처럼 반짝이지 않고 정신 놓은 사람마냥 멍~한 눈빛이었기 때문이다. 마치 종이 위에 인쇄된 고흐의 그림 마냥 "이건 아니지!"를 외치게 되는, 안타까운 순간이었다.



Liszt around the Piano

피아노 없는 리스트가 상상되는가?

미디어와 아트: 미디어는 도구일 뿐?

"꿀벅지"란 표현을 둘러싼 논란을 두고 김제동이 "개념이 현상을 만든 사례다. 단어가 만들어지니 개념이 생기고 이후 현상이 생기는 것이다" 이라고 했다 한다. 개념이 생기고 단어가 만들어진다는 게 우리의 일반적 생각이다. 그러나 김제동의 말을 들어보면 꼭 그렇지만도 않다.

미디어와 아트의 관계도 그렇지 않을까? 아트를 위해 미디어를 발전시키는 경우도 물론 있다. 그러나 새로운 미디어에 의해 새로운 영역의 예술이 발전하는 경우를 우리는 발견한다. 소형 비디오카메라가 나오지 않았던들 우리가 아는 백남준이 있을까? 튜브에 담긴 물감이 나오지 않았더라면 빛에 민감했던 인상파 화가들의 작품을 볼 수 있었을까?

미술 뿐 아니다. 피아노의 발명은 음악사에 획기적인 발명이라 할 수 있다. 물론 이전에도 하프시코드라 하는 피아노의 조상이 있었지만, 이 악기는 피아노와 달리 강/약의 조절이 힘들다. 하프시코드로 리스트의 피아노 곡을, 혹은 쇼팽의 피아노 곡을 연주하는 걸 상상할 수 있는가? 얼마나 혁기적이었으면 이름까지 피아노(piano; 약하게)가 되었을까. 원래 피아노는 piano forte(약하게, 강하게: 우리 식으로 하면 강약)의 준 말이다. 여전히 피아노를 줄여쓸 때 pf.라고 쓰는 이유가 여기있다. 역으로 피아노로는 바로크 음악의 느낌을 제대로 표현할 수 없다하여 '원전음악'이 유행하기도 한다. 아티스트의 고뇌없이 미디어의 "신기함"에만 기대는 작품도 물론 배양해야겠지만 그렇다고 피아노로 린킨 파크를 연주하는 것 역시 좋다 할 수 없지 않은가.



낸시 랭

"연예인 형 아티스트", 낸시 랭

연예계를 닮아가는 미술계

지금은 너무다 덤덤하게 받아들이지만 자꾸 쏟아지는 음악성에 대한 비판에 "저희는 대중 가수입니다. 뮤지션이 아닙니다"라고 답했다는 아이돌 가수 이야기. "가수가 뮤지션이 아니야?" 내게는 충격이었다.

미술로 치자면 "예술가가 장인이 아니야?" 정도 되겠다. 뮤지션 아닌 가수가 처음에야 생소했지만 이제는 받아들여지는 것처럼 장인 아닌 예술가도 받아들여야하는 게 팝 아트계가 아닐까 싶다(본인은 팝 아트에 대해 무지하므로 보충 설명/반박 환영한다)

최근 '강심장' 프로그램에 나오는 낸시 랭은 자신을 "연예인형 아티스트"로 표현했다. "뮤지션 아닌 대중 가수" 같은 개념의 아티스트라는 표현이 아닐까 조심스레 예측해본다.

이 이야기들과는 조금 다른 시점에서 저자는 이야기한다. 시장구조 측면이다. 마치 단순한 방송국-연예인이던 구조가 방송국-소속사-연예인이란 기본틀에서 매우 복잡다단하게 진화한 연예시장처럼 미술시장계가 구매자-갤러리-화가에서 구매자-아트 어드바이저-갤러리-에이전트-화가로 복잡하게 진화한다고.



여기다 쓰려니 개인적으로 생각을 많이 불러일으켰던 점들만 뽑아 쓰게 되었다. 그렇지만 이 책에 실린 30가지 키워드와 그에 딸린 이야기 보따리들 모두 풍성해서 미술 작품 자체 뿐 아니라 미술 세계 바깥과도 통합적으로 소통할 수 있게 해준다. 다만 키워드가 어떤 특정 시대에 집중하게 되는 경우가 많고, 그러다보면 미술사의 앞뒤로 오가게 된다. 따라서 미술사의 전체적인 흐름을 먼저 파악한 다음에 읽는 게 더 좋겠다 싶다(물론 본인의 미술사 지식도 얄팍하나 읽는 게 큰 지장이 없었으므로 정말 상식적인 수준이면 될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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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아닌우현.

책은 삶을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매체인 동시에 삶에서 가장 쉬운 도피처라고 믿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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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1/01 22:03 2010/01/01 2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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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데모니슈 2010/01/08 08:1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트랙백이 있기에, 놀러왔습니다.^^* 편안하게 잘 읽었구요.
    전 책은 아직 못 봤네요;;;; 덜덜... 다른 책 좀 보느라..ㅡㅡ;;;
    책에 관한 얘기들을 풀어가셨군요. 유익한 블로그인 것 같습니다. 구독할께요.^^*
    금요일이네요. 즐거운 하루 되시길...^^

    • 우연아닌우현 2010/01/08 12:22  댓글쓰기  수정/삭제

      안녕하세요, 데모니슈님^^ 님의 리뷰도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구독해주신다니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보내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