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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 the Camino

2010/07/14 13:17
온 더 카미노 On The Camino (특별부록 : '카미노 여행 준비 끝' 포켓 가이드)온 더 카미노 On The Camino - 10점
이신화 지음/에코포인트

이 책을 보자 마자 필자는 심박이 20%는 빨리지는 것을 느꼈다. Camino de Santiago. 말만 들어도 가슴이 두근거리는 이 길 이름. 그 곳을 필자는 35일에 걸쳐 배낭을 짊어지고 걸었던 사람이었기에, 이 책이 더 각별하게 다가올 수 밖에 없었다. 또 동시에 "흠, 다녀왔다고? 그래서 얼마나 잘 썼나 볼까?"하는 오만함도 내심 품고 있었다.
http://elcamino.namoweb.net/tc/books2010-07-14T04:17:420.31010



같은 길, 다른 길

그러나 책장을 넘기면 넘길 수록 저자가 걸었던 길과 내가 걸었던 길이 같은 길주1이되 같은 길이 아님을 느낄 수 밖에 없었다. 해마다 증가하는 순례객 수로 내가 갔던 2007년만 해도 다들 순례가 상업화 된다고 걱정하던 때였는데, 지금은 그 가속도가 붙으면 붙었지 절대 떨어지지 않았으리라 쉽게 예측할 수 있다. 더군다나 그 때까지는 주로 같은 유럽에서 오는 순례자들이 많았는 데, 이제는 한국인 또한 흔한 모양이다. 하기야, 카미노 여행기만 해도 벌써 수십권은 나왔을 테니까. 이 곳으로 가면 다른 순례길 관련 책이 정리되어있다. 필자가 갈 때만 해도 만난 한국인은 2명 뿐이었지만 그나마도 프랑스로 입양오신 분이나, 자신을 파리지앵이라고 여기시는 파리 거주민이셨다.

꼭 순례자만이 아니다. 같은 길일지라도 언제 걷느냐, 누구와 걷느냐, 무슨 생각을 걷느냐에 따라 확연히 다른 길이 될 수도 있다. 그런 면에서 보면 필자는 참 카미노의 행운아였다. 물론 필자도 이상기온으로 인해 때 아닌 장마를 만나 고생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대체로 보면 복을 쓰나미로 받았다. 바람과 비로 악명 높은 갈리시아 지방에서 맑은 하늘을 걸어 다녔고, 무엇보다 절체절명의 순간에서는 늘 나를 도와준 천사같은 이들을 만났다.

이 책을 보니 저자도 온타나스까지 비바람을 뚫고 고생해서 도착한다. 필자도 그랬다. 그 전날 (정보가 없어) 최악의 알베르게주2로 꼽히는 곳에서 오들오들 떨며 잤던 터라, 난방이 되는 알베르게를 찾아 비를 뚫고 온타나스까지 가기로 한 것이다. 그렇지만 이 책의 자처럼 필자는 서럽지 않았다. 날이 미친 듯이 비바람을 쏟아부었지만, 필자가 그 곳에 간다하니 한 걸음에 뛰어와 매끄러운 스페인어로 먼저 전화를 돌려준 (짐작컨대) 아일랜드 미남도 있었을 뿐더러, 무엇보다 같이 길 동무가 되어 준 세 여전사들이 있었다. 제 각기 다른 곳에서 와서 만난 우리 네 여자는 '핫 워터 샤워'를 비장하게 외치며, 그 모진 비바람 속과 언덕 길 11km를 2시간 반여만에 주파해버렸다. 필자 혼자였다면 5km도 못 가 징징 울어버렸을 그 길을.



걷기 여행: 나를 겸허히 보기

사용자 삽입 이미지
저자가 그 길을 걸었던 나이는 만 19세. 아직 세상이 만만해 보이던 때였고, 어리니까 사람들이 봐주는 걸 모르고 내가 잘나서 세상 일이 잘 풀리는 거라 믿었던 어리석었던 때였다.

그러다 길을 표시해주는 노란 화살표를 못 보고 다른 길로 빠져놓고, 그 사실조차 알아채지 못하고 룰루랄라 언덕 길을 신나게 내려갔더란다. 어라, 아무도 없다? 둘러보아도 화살표도, 다른 순례객들도, 아니 그 어떤 사람도 없고 앞의 길과 내가 온 길만이 있고 사방이 다 그저 밀밭이다. 반 시간 가까이 신나게 뛰다시피 내려온 언덕 길을, 10kg 배낭을 맨 채 다시 올라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눈물이 뚝뚝 흘렀다.

사실 이런 체험은 순례객이면 누구나 빠지는 일이어서 순례자들이 모이면 길 잃고 헤메던 곳을 Middle of Nowhere이라고 불렀다. 참 공감가는 말이었다. 그 때까진 나 잘난 맛에 취해 살던 때라 필자는 필자가 길치라는 사실조차 인식하지 못했기 때문에 이틀 걸러 하루, 많게는 하루에 두어번씩도 길을 잃었다. 그리고 그런 Middle of Nowhere에서 카미노로 돌아오는 길에서 필자는 길에서 지쳐 쓰러져 돌아갈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느꼈다. 그리고 그 두려움은 필자에게 인간이란 존재가 얼마나 작은지, 얼마나 약한 존재인지 깨우쳐 주었다.

순례길이라고 마음이 늘 평탄하지는 않다. 아니 오히려 더 들쑥 날쑥해서 싱싱한 사과 한 알에 기뻐 죽다가도 운동화에 들어오는 빗물에 짜증이 폭발하기도 한다. 비바람이 쏟아져 우비 속의 옷까지 다 젖고, 걷지 않으면 얼어죽을 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길을 걷던 날, 마을 입구에서 필자에게 물을 제대로 끼얹고 지나간 차에 대고 필자는 "ㅆㅂ"이란 가장 원초적인 욕을 쩌렁쩌렁하게 소리쳤다. 필자는 자신을 교양있고 예의바른 인물이라고 여겼던 터라 필자 자신에게 꽤나 놀랐다. 가식 뒤에 가려진 나의 밑바닥, 그게 그렇게 튀어나왔다. 나는 진짜 교양있는 사람도, 예의 바른 사람도 아닌, 빗물 좀 얻어맞은 것으로 화를 참지 못하는 옹졸한 면을 가진 그냥 보통사람이었다. 그 길에서 만난 나는 그랬다.



길에서 만난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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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fé con leche

이 책의 저자는 참 대책없이 충동적으로 카미노에 간 듯하다. 그러나 필자도 꼼꼼히 준비한 편은 아니었다. '짐은 최소한으로!'라는 구호 아래 가이드 북 하나 없이 떠났더란다.

필자가 이리 잘 살아 돌아 온 것은 정보 기생을 했기 때문이다. 숙주는 영어 잘하고, 여러 책자를 지녔고, 나와 비슷한 페이스로 걷는 독일어권 사람들이었다.

덕분에 El Acebo에 도착한 날, 새로 생긴 알베르게 축성기념 파티에 껴서 그 곳 신부님의 기타 공연까지 볼 수 있었다.

그들 덕에 빙그레 웃게 되는 사연 하나. 아스토르가 성벽이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에 피크닉 테이블이 있다. 독일에서 온 G씨와 걷던 필자는 너무 힘들어 그 테이블을 보자마자 그 곳에 주저 앉았다. "나 힘들어, 더 못 가."하고 버티며 주섬 주섬 비상 식량이었던 초콜렛과 비스킷을 꺼내 들었다. 조금 있으니 다른 독일어권 사람들이 합류한다. 그런데 왠 걸! 다들 하나씩 비상식량을 챙겨 다녔던 거다. 각자 내놓은 자기 식량 덕에 테이블이 꽉 찬다! 바게트 빵 스낵, 초콜렛, 과자, 과일에 이어 마무리로 와인까지! 그렇게 서로 시끌벅적 나누어 먹고 힘을 내 아스토르가로 갔던 기억에 혼자 배시시 웃었다.

사실 그 곳에서 만난 사람들 이야기는 너무나 많고 개인적인 부분도 많아 여기까지만. 블로그에 올리기보다는 술잔을 앞두고 해야 할 이야기 같다. 저자의 조용한 알베르게를 찾아드는 경향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저자도 필자와 같은 이유로 순례길에서 만난 사람들과 얽힌 이야기가 많이 빼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내 웃음과 눈물을 받아주었던 그 동료들 덕분에 책장을 넘기다 말고 그 때 기억들로 자꾸 빠져들었다. 아마 이 책을 읽는 필자의 모습을 본 사람이 있었다면, 필자를 의아하게 보지 않았을까. 심각했다 웃다 고개를 들어 멍하기를 반복했으니.




이 책을 읽기 얼마 전, 필자는 옅게 든 잠에서 너무나 생생히 인천 공항을 보았다. 인천 공항 가는 길에 벌어진 버스 사고 따윈 아랑곳 없이 그 날 내내 인천 공항에 비행기를 타러 가고 싶어 온 몸을 비틀어댔더란다. 이러저러한 사정으로 당분간 그 꿈을 이룰 수는 없어 아쉬울 뿐이다. 이 책을 다 읽은 다음 날, 자꾸 떠오르는 카미노의 여운을 달래고자 켈트 음악을 들었다. 필자가 산티아고의 레코드 가게에서 들으며 좋아하던 걸 기억한 순례자가 떠나는 날 내게 선물해주었던 음악이다. 음악을 듣노라니 순례 마지막날 켈트 밴드의 연주를 배경으로 했던 순례자들의 댄스파티가 떠올라, 달래려던 여운이 오히려 짙게 배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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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아닌우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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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otnote.
  1. Camino는 스페인어로 길이란 뜻이다 [Back]
  2. 순례자용 숙소 [Back]
2010/07/14 13:17 2010/07/14 1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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