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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3/07/12 나는 내성적인 사람입니다 (10)
나는 내성적인 사람입니다 - 10점
소피아 뎀블링 지음, 이순영 옮김/책읽는수요일


공백이 길어질 수록 글을 쓰는 것이 점점 더 어려워진다. 그래서 그동안 '이건 서평을 써야 해'라고 할 만한 책을 여럿주1 읽었으나 글을 쓰지는 못했다.

지난 번 글을 올리고 4개월 만에 이 글을 쓰게끔 만든 이 책의 매력은, 그렇다. 내가 내성적인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읽는 내내 나 자신을 떠올리며 즐겁게 읽었다. 이야기가 이어지면 알겠지만 여기서 말하는 '즐겁게'는 깔깔대며 웃는 즐거움이라기보다는 칙센트미하이가 <Flow: 미치도록 행복한 나를 만나다>에서 말한 것과 같은 몰입의 즐거움, 즉 겉으로 보기에는 잔잔하지만 뇌는 폭죽을 터뜨리는 즐거움이다.

그 즐거움을 여러분과 나누기 전에 미리 짚고 넘어가자.
우선 이 책의 저자도 내성적인 사람, 아니 내향적인 사람이고 독자 역시 그러리라는 가정 하에 썼다. 그러니 자신이 내향적인 사람이라면 감정이입을, 그렇지 않다면 새로운 탐험을 기대하고 책장을 넘길 것.그리고 이 책은 미국이라는, 내겐 너무 부담스럽게, 외향적인 국가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우리보다 좀 더 시끌벅적하고 자신을 내보이는 데 거리낌이 없는 곳임을 어느 정도 이해하길. 그대가 필자만큼만 내향적인 사람이라면 우리나라에서 태어난 것이 덜 불행하게 여겨질 것이다. 이 책과 같은 제목을 쓰는 EBS 다큐프라임 <성격>의 3부에서 본 것으로 기억하건데, 우리나라는 미국은 물론 중국보다 훨씬 내향적인 성향을 띤 나라다. 우리보다 더 내향적인 곳이 조사대상 국가 중에는 일본 정도 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내성적인, 내향적인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빈 수레가 요란하다'라는 속담도 있지만 PR시대라는 말이 등장하면서부터, 혹은 시끌벅적한 파티와 인맥이 돈이 된다는 사실이 공공연해지면서부터, 그러니까 점점 더 사회가 미국스러워지면서부터 내성적인 사람은 수줍은 사람, 할 말 못하는 사람, 사회성이 떨어지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자리잡아 가는 것 같다.

그러나 내가 생각하는 내향적인 사람이란, 그러니까 나 같은 사람이란 혼자 있을 때 기운을 차리는 사람이다. 내 사람과 내 사람이 아닌 사람과의 경계가 조금 뚜렷한 사람이다주2. 생각이 말로 나오기 까지 머리를 한 바퀴 다 돌아야해서 시간이 조금 더 오래 걸리는 사람이다.

저자가 융과 한스 아이젱크 등 여러 심리학자와 사회학자의 이론을 대비하고 보완하면서 들려주는 내향성에 대한 이야기는 내 정의와 여러 모로 비슷하다. 혼자 있는 것이 그저 좋고, 대규모의 사교 장소에서 오랜 시간 머무르면 지치고, 혼자 아이디어를 떠올리며 몰입에 도달하는 사람.

그러나 무엇보다도 아래 글에 공감하는 사람이라면 내성적인 혹은 내향적인 사람이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사용자 삽입 이미지

Anquetin, Louis Girl Reading a Newspaper, 1890

우리 내성적인 사람들은
혼자 있는 시간 대부분을 기분 좋게 즐긴다.
우리는 라디오만을 벗 삼아
몇 시간 동안 운전할 수 있다.
우리는 주말에 혼자 집에 있으면서도
전혀 따분한 줄 모른다.
혼자 보내는 저녁을 좋아한다.
혼자 보내는 아침도 좋아한다.
우리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을
할 일로 생각한다.
-본문 18p
이 글을 읽는 순간 누가 보는 것도 아닌데 필자는 어찌나 고개를 열심히 끄덕였는지!
수련회 온 여고생처럼 깔깔거리며 노는 것도 즐겁지만, 회사 동료들과 술 한 잔 기울이며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좋지만 그런 발랄한 즐거움과 별개로 시간이 길어지면 정신력이 고갈되며 '혼자 쉬고 싶다'라는 생각이 간절해진다.



내향과 외향. 틀린 것이 아니라 다른 것

원하든 원하지 않든 내향적인 사람은 말대꾸가 느린 탓에 남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편이고, 늘 이것저것 생각하느라 머릿 속이 바쁘다. 조지 오웰이 그의 에세이 <스파이크>주3에서 말한 '감금을 견딜 수 있는, 자기 안에 위안거리가 있는 배운 사람들'처럼 누가 자극을 주지 않아도 전에 보고 들은 것, 생각했던 바를 다시 곱씹어보는 성향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외향적인 사람을 깊이 없는 사람으로 "싸잡아 무시하는 것은 편견이 심한 태도"라고 저자는 엄중히 경고한다. 내향적인 사람 역시 생각을 '많이'할 뿐 '깊이' 없이 할 수 있다는 점을 짚는다. 또한 '우리' 내향적인 사람이 보기에는 '극성스런' 표정과 리액션도 우리가 느끼는 것처럼 과장이 아니라, 우리보다 도파민을 더 많이 활용하고 그래서 더욱 재빠르고 큰 강도로 감정을 표출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우리를 시끌벅적한 자리로 이끄는 것도 우리를 귀찮게 하려는 게 아니라 '그들이 생각하는' 행복을 우리에게 선물하고 싶어서란다.

그렇다면 외향적인 사람들에게 내향적인 사람, 아니 나는 어떻게 보일까?
어느 누군가는 내게 "목석 같다"라고 말했다. 얼굴에 감정이 잘 드러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외향적인 사람에게는 서운할 수 있겠다. 하지만 이는 내가 그의 이야기에 시큰둥해서 그런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나의 뇌는 과부하에 걸릴 지경이었기 때문에 얼굴 근육 조작을 놓아버린 것이다. 여기다 '늦장 대답'까지 곁들여지니 딴청 부리다 걸린 현장범으로 여겨지겠지만, 이것은 최적의 단어를 찾아내려는 애타는 노력이 실패한 것뿐이다.

그리고 전화. 이 글을 쓰기 전에 통화 목록을 쭉 살펴 보았다. 명확한 업무 전화를 제외하고 지난 한 달 동안 3분을 넘긴 전화 통화가 2통이다주4. 편지를 쓰라면 2~3장도 쓱쓱 써내려가지만 전화는 나에게, 그리고 대다수 내향적인 사람에게 쉽지 않은 일이다. 명확한 논의 거리가 없는 전화는 이야기 소재를 떠올려야 하는 소개팅 자리와 같다. 편지를 쓰듯 할 말을 가다듬을 시간도 없다. 0.5초의 공백이면 내가 불편해한다는 것을 상대가 눈치챌 것임을 아는 상황이니 더욱 얼어 붙는다. 편한 사람일지라도 그렇다. 최근 엄마와의 평균 전화 통화 시간 1분 20초. 언니와 통화도 2분 내외다. 이 이상 길어지면 전화 통화는 대체로 엄마와 언니의 질문과 나의 "응/아니" 대답으로 이루어진다. 그러니 수시로 지인과 안부를 주고 받는 입장에서는 내가 무관심한 사람, 심드렁한 사람, 관심 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처럼 보일 지도 모른다. 하지만 일대일주5로 만나서 함께 차를 마시거나 이메일을 포함한 편지주6로 이야기를 주고 받는다면 꼭 그렇지 않음을 발견하리니!

나를 '우리'라고 불러주는 사람의 조언

나는 나의 내향성이 좋다. 자극이 없어도 내 안에 쟁여놓은 이야깃거리로 머릿 속에서 예능 한 편을 그려내거나 옛 일기를 뒤적이면서 오늘의 일기를 쓰는 것만으로도 재미있게 주말 저녁을 보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연인으로서가 아니라 홍보팀 직원으로서는 그런 나의 내향성이 원망스러울 때가 많다.

홍보팀보다 외부 사람을 더욱 많이 접하는 모 팀의 팀장님과 LG스포츠단을 방문했을 때다. 7m 앞을 지나가는 봉중근 선수를 보자마자 팀장님은 "봉중근 선수다! 봉중근 선수, 반가워요. 저 완전 팬이에요. 어머, 어머, 웬일이야!"라며 악수를 청했다. 그 동안 필자는 무엇을 했을까? 한 걸음 뒤에서 굳은 채로 서서 '무슨 말을 어느 타이밍에 해야 하나' 생각하고 있었다. 결국 봉중근 선수와 팀장님의 모든 대화가 끝난 뒤 함께 꾸벅 인사하는 것으로 끝. 사전 조사와 질문을 준비해가는 인터뷰가 아니고서는 이 모양이다.

그런 나를 '우리 내향적인 사람'으로 불러주는 저자의 조언은 와 닿는다. 잘난 사람이 아니라 내 자신을 잘 알고 또 인정해주는 사람이 해주는 조언이기 때문이다.
기억하라. 우리는 외향적인 사람들이 할 수 있는 것은 뭐든 할 수 있으며, 더 잘할 수 있다. 단 하나 다른 점이 있다면, 시간이 지나면 흥미를 잃는다는 것이다.
잠깐이라도 고독을 즐기려는 본성을 밀어내고 다른 사람들과 교류하는 것은 좋다. 내가 생각하기에, 내성적으로 사는 것은 고립을 의미하지 않으며 그래서도 안 된다. 물론 고독에 대한 우리의 욕구를 존중할 필요가 있지만 사람들과 교류하며 얻는 이익도 똑같이 존중해야 한다. 사람들과 교류하기 위해 때로 자신의 안락 지대를 벗어나야 한다면 그렇게 하라. 내키지 않는 일이 우리에게 좋을 때도 있다. 그것이 인생이다.

이 글 때문에 내일 약속 장소를 나의 안락 지대 신촌 홍대 대신 강남으로 잡았다. 내일이면 이 책을 원망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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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아닌우현.

책은 삶을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매체인 동시에 삶에서 가장 쉬운 도피처라고 믿는 사람.
다른 사람이 글을 너무 잘 쓰면 배가 아픈 속 좁은 글쟁이 워너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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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otnote.
  1. 여덟 단어, 다시 아이를 키운다면, 출판 24시, 올드걸의 시집, 러시아 통신, 땡큐! 스타벅스 등. 이유는 다르지만 모두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Back]
  2. 그렇다고 그 경계가 고정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관계가 소원해지면 내 사람의 범주에 들었던 사람이 그 바깥으로 밀려나기도 하고 반대로 새로 들어오는 사람도 있다 [Back]
  3. <나는 왜 쓰는가(조지 오웰, 이한중 옮김, 한겨레출판, 2000)>에 수록되어 있다 [Back]
  4. 그나마 1통은 3분 1초로 십년 지기 친구와 반년만에 통화한 것이다. [Back]
  5. 3명 이상이 되면 나는 열심히 듣다가 인사하고 집에 갈 확률이 높다. 두 사람 이상의 이야기가 오가면 나는 당최 말할 타이밍을 잡을 수가 없어 두 사람 얼굴을 번갈아 보며 이야기를 조용히 들을 뿐이다. [Back]
  6. 손편지는 더 좋다! [Back]
2013/07/12 23:36 2013/07/12 2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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