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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2/10/03 놀이의 달인, 호모 루덴스 (19)
놀이의 달인, 호모 루덴스 - 10점
한경애 지음/그린비

돈 쌓는 노동 사회, 이것이 정상인가?

우화 중 가장 많은 각색이 이루어진 우화는 아마도 '개미와 배짱이'일 것이다. 이 책의 시작 역시 이 '개미와 베짱이'에서 시작한다. 우리 사회 구성원 대부분은 개미다. 학생은 성적을 모으고, 취업 준비생은 스펙을 모으고 직장인은 연금을 모은다. '무슨 즐거운 일이 있을까?'란 질문은 돈(또는 돈으로 환원될 점수)을 어느 정도 모아야만 할 수 있는 여가로만 존재한다.

이것이 우리에게는 당연한 사회다. 그런데 원래 이것이 당연한 사회인가?
이 책 1장에서 보여주는 산업혁명 이전 사회는 그렇지 않다. 중세에는 신민들도 하루 4시간, 넉넉히 잡아 1년에 180일 정도만 일했다 한다. 그 일하는 4시간도 철저히 일하는 시간이 아니다. 술도 마시고 이웃이 지나가면 붙잡고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날이 좋으면 볕도 쐬어가며 하는 시간이다.

이 책에 따르면 '노동 윤리'라는 것이 들어선 때는 산업혁명의 시작, 인클로저주1의 확산, 이로 인한 저임금 노동자 계급의 탄생과 맞물린다. 그리고 이 노동 윤리의 핵심은 '게으름은 죄악'이 되었다. 자본가에게 이윤을 가져다 주는 생산성 개선은 곧 노동의 집약이었으니까. 그리고 이 때부터 놀 줄 아는 호모 루덴스가 일 하지 않으면 불안한 자, 따분한 노동자가 되었다.


파괴와 창조, 놀이가 그대를 자유롭게 하리라

놀이와 노동의 차이는 무엇일까? 사실 '무엇을 하는가'는 답이 되지 않는다. 같이 피아노를 쳐도 해방을 느끼는 사람이 있고, (필자처럼) 머리를 쥐어짜다 선생님의 눈을 피해 피아노를 발로 차버리는 사람도 있다. '무엇'이 아니라면 무엇이 놀이와 노동을 가르는가. 저자에 따르면 과정을 즐기느냐, 목적 달성을 위해 내지르느냐의 차이이다.

놀이와 놀이가 아닌 것을 구분해보면 저자의 주장이 좀 더 명확해진다.
- 집으로 돌아가기 위한 도로시 일행의 여정: '돌아가기'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노동이다
- 대마왕을 무찌르지 않고 다른 여행에 나선 <마법진 구루구루>주2 아이들의 여정: '대마왕 무찌르기'란 목적이 아니라 괴물과의 대결 자체를 무구하게 즐기는 놀이다.

왕의 남잦 엔딩신

놀이판이 열리면, 놀이의 주인인 광대들이야말로 세계의 왕이다. 규칙을 만드는 사람들의 눈에 그들의 놀이는 위험하기 짝이 없다. 때로는 죽음으로 그 대가를 치러야 할 만큼. 그러나 영화는 그 죽음의 순간조차 "한판 놀이"로 비약하는 광대들을 보여준다(p.90).


또한 놀이는 파괴와 창조의 과정이다. 기존의 법칙을 부정하고 노는 법을 만들어 내는 태도, 움직임이 놀이이기 때문이다. '왕의 남자'의 광대들은 왕은 물론 죽음마저 "한판 놀이"로 비약하고, 카니발은 흥청망청거리며 일상을 전복한다. 그래피티 아티스트는 빈민가 주택을 캔버스로 바꿔버리고 히피들은 꽃을 들고 베트남전에 대항했다.

사람이라면 반드시 노동해야 한다는 명령, 학생에게 주어지는 수많은 규칙, 미래에 대한 불안이 아니라 순수한 즐거움만이 우리를 움직이고 활동하게 한다면!

자본주의가 만든 가짜 놀이, 가짜 놀이에서 피어난 진짜 놀이

그런데 요즘 '노는 게 노는 게 아닌'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며칠 밤 꼬박 게임하다 죽고, 가수는 딴따라가 아니라 상품이다. 질서의 파괴도, 내 것의 창조도 없는 "안전한 놀이"가 제공한 울타리 안에서 노는 것이다.

입맛을 자극하는 패스트푸드와 콜라, 하지 않고서는 못 배길 것 같은 컴퓨터 게임처럼, 외부의 자극이 고스란히 몸에 새겨진 욕망과 그 욕망이 원하는 '즐거움'들이 있다. 우리들은 그러한 즐거움에 너무나 익숙하다. (중략) 문제는 그 즐거움들이 '중독된' 즐거움이라는 것이다. 자극에 탐닉하는 동안 나는 점점 더 약해지고 있다.
술 없이는 하루도 살 수 없는 알코올 중독자를 두고서 과연 그가 술을 즐긴다고 말할 수 있을까? 그는 술을 즐기고 있는 게 아니라 술에 장악되어 있다.그것은 즐거움이 아니다. 외부의 자극에 수동적으로 반응하고, 조금씩 마비 상태가 되어 더 큰 자극을 욕망할 때 나는 놀고 있는 것이 아니다. 욕망의 노예가 된 채 매뉴얼대로 움직이는 아바타에 불과할 뿐. 노는 것. 무언가를 진심으로 즐길 수 있는 천진함은 언제라도 그것을 그만둘 수 있을 때, 바로 내가 놀이의 주인일 때 가능하다.
- 본문 p.81-82

시간이 날 때마다 스마트폰으로 페이스북을 확인하고, 놀이가 탐하는 파격을 따라한 놀이동산에서 (결국에는 제자리로 돌아오는) 롤러코스터를 타고, 모니터를 끄면 사라질 레벨업을 향해 질주하는 게임. 자본주의는 놀이를 울타리 속으로 끌어들여 놀이를 규칙 아래 놓았다. 이제 패션 잡지를 보면 '캐주얼'조차도, 히피와 보헤미안 패션조차도 따라할 룰과 입어야 할 아이템을 지정해준다.

드라마 '뿌리깊은 나무' 패러디

한 누리꾼이 만든 드라마 '뿌리깊은 나무'의 패러디. 엔터테인먼트 상품인 드라마를 수동적으로 보는 것에서 나아가 새로운 시점을 창조해내며 노는 것, 바로 호모 루덴스의 능력 아닐까?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울타리 안의 놀이" 안에서도 울타리를 넘는 "진짜 놀이"가 등장한다. TV 드라마를 소재로 게시판이 만들어지고, 드라마 이후 이야기를 탄탄하게 만들어 낸다. 기획사가 만들어 낸 상품을 소비하는 데 그치지 않고 팬아트를 만들고, 자신의 스타를 팬픽의 캐릭터로 재창조한다.

가짜 놀이에서조차 진짜 놀이를 만드는 사람. 그가 진정한 놀이의 달인이다. 참을 수 없는 즐거움으로 세상을 창조하는 호모 루덴스다. 파괴와 창조를 동시에 만드는 호모 루덴스의 이러한 능력은 마치 인도 신화에 나오는 여신 '시바'와 비슷하다. 시바는 모든 창조의 근원이되 파괴자다. 신과 필적하는 인간의 이러한 놀이 능력은 공짜가 아니다.

그러나 잊지 말자. 즐거움은 결코 거저 주어지는 것이 안다. 지루한 세계를 돌파하기 위해서 우리에겐 함께 놀 친구들, 힘센 상상력이 필요하다
본문 p. 1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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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아닌우현.

책은 삶을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매체인 동시에 삶에서 가장 쉬운 도피처라고 믿는 사람.
다른 사람이 글을 너무 잘 쓰면 배가 아픈 속 좁은 글쟁이 워너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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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otnote.
  1. 양모 생산을 위해 공유 경작지로 쓰이던 공간에 울타리를 치는 행위 [Back]
  2. 이 만화에 나오는 아이들은 대마왕과 싸우기 위해 모험을 떠난다. 긴 여행 끝에 대마왕의 성에 다다르지만 아이들은 대마왕과 싸우지 않고 돌아선다. '대마왕을 죽이면 끝나는 건가?', '그러게. 그럼 우리 대마왕은 좀더 내버려둘까?'라며. [Back]
2012/10/03 20:03 2012/10/03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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