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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11/05 88만원세대 새판짜기: 혁명은 이렇게 조용히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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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석훈, 레디앙, 2009)

2년 전 크게 이슈를 불러모아던 <88만원 세대>의 후속으로 나온 책이다.
사실 "대세"에 대한 막연한 거부감이 있어서 그 책은 읽지 않았지만, 이 책은 어쩐지 충동구매하게 되었다.

혁명이란 단어는 사실 내겐 익숙치 않은 단어이다. 프랑스 혁명, 쿠바 혁명 등 과격한 변화가 수반되는 사건을 자동적으로 떠올리게 된다 (굳이 예외를 찾자면 Dance Dance Revolution 정도?) 하지만 이 책에서 말하는 혁명은 사회운동이나 캠페인 정도로 바꿔쓸 수 있을 만한 정도다. 그럼에도 저자는 '혁명'이란 단어가 주는 에너지 만큼은 20에게 일깨워주고 싶어서 '혁명'을 내걸었다고 재차 강조한다.

진중권씨도 한겨레 특강에서 재차 강조했지만, 지금 20대들은 좀처럼 행동하려 하지 않는다. 아니, 솔직히 나는 행동하지 않는다. 나는 실상 명박시대 한국에서 총장의 개인 재산이 되어가는 대학교에서 지내고 있다. 가장 몰려있는 사람이면서 아무런 조치없이 입으로만 화를 내고 있다. 잘못된 것이란 걸 알면서도 움직이지 않는다. 모국어로 사유하는 자유를 박탈당하고 있으면서, 돈으로 학생을 윽박질러 갇힌 공부로만 몰아가는 학교에 당하면서도 말이다. 아기 엄마들이 유모차를 끌고 나왔을 때 조차 나는 촛불행사에 참여하지 않았다. 그래서 우석훈 교수의 옳은 소리가 편하지만은 않았다. 그런데 이 한 문장이 나를 뭉클하게 했다.
내가 한국 20대들과 만들고 싶은 세계는 소설책도, 영화도 많이 볼 수 있고, 마음껏 꿈꾸며, 그것을 실현해 먹고살 수 있는 곳, 누구도 누구 위에 올라서거나 누구를 불해하게 하지 않으면서 자연과 어우러져 소박하게 살 수 있는 곳이다.
마치 마틴 루터 킹의 'I have a dream' 연설을 떠올리게 하는 이 문단이 내 마음에 파장을 일으켰다. 내가 그 동안 행동하지 않은 이유는 '내가 고생해봐야 자기네끼리 다 결정해버리니 아무 소용없는 일인데 귀찮게 왜!' 하는 삐딱한 마음이 컸다. 마치 내 마음을 안다는 듯이 서총장은 '학교는 학생들의 것이 아니다. 학생들의 의견은 필요없다' 라는 식의 발표를 해버렸다. 그가 만들고 싶어하는 세계, 내가 만들고 싶어하는 세계가 그렇게 한 걸음 더 멀어졌다. 주도권을 쥔 그들은 알아버린 거다. 우리의 냉소가 참 힘없는 것임을. 그래서 우리가 뭐라하든 무서워하지 않는 거다.

우리는 잔뜩 얼어있다. 스펙을 쌓지 않으면, 내 옆에 있는 친구들보다 낫지 않으면 낙오되리란 두려움에 휩싸여있다. 그래서 교수님조차 "반대 해야지, 왜 안해?"라고 다그치고 바보취급으로 도발하셔도 우리는 눈가린 말처럼 신자유주의가 이끄는 데로만 달리고 있다. 방송국 작가를 꿈꾸던 친구는 취업률 좋다는 이유로 간호대 가서 국시 때문에 쩔쩔매고, 합기도 소녀였던 친구는 행정고시를 준비한다고 몇 년째 공부 중이다. 나는? 어느 방향으로 가야할 지 길 잃고 서 있다. 내가 하고 싶은 것과, 내가 '잘' 살려면 해야하는 것 사이에서 마음을 못 정하고 줄타기하고 있다.

우석훈 교수의 글 뒤에 붙는 대학생들의 관찰기 역시 흥미롭다.
연세대라는 일류대학에 들어가는 대학생들 대부분은 과외(혹은 학원) 소비자였고, 상당 부분의 그들은 지금 시장 참여자(과외/학원 교사)이다. 그들이 직접 쓰는 20대 사회생활 관찰기는 참 뼈아프다.

나의 입시 소비 경험

위에 쓴 우석훈 교수가 꿈꾸는 세계에 대한 글은, 여행에서 만난 사람들과 했던 대화들을 떠오르게한다.
특히 떠오르는 사람은 인도 마날리에서 만난 '노스페이스 검은 후드티' 오라버니다. 입시경쟁을 격하게 치르고 수의대에 들어가셨던 분이다. 그리고 졸업 후 훌쩍 영국으로 가셨다. 정확한 사정은 모르겠지만, 어떤 보장 장치가 있어 가신 건 아니었던 듯 하다. 가던 길을 놓치면 길이 없을 거라 생각했는 데, 길에서 벗어나 주위를 둘러보니 그렇지 않았더란다. 우리가 보지 않아서 그랬지, 둘러보면 길은 있게 마련이라고. 너무 지금 보이는 길에만 집착하지 말라고. 우리는 '꽃들에게 희망을' 에서처럼 아무 것도 발견하지 못할 기둥을 오르고 있지는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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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아닌우현.

책은 삶을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매체인 동시에 삶에서 가장 쉬운 도피처라고 믿는 사람.
다른 사람이 글을 너무 잘 쓰면 배가 아픈 속 좁은 글쟁이 워너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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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1/05 11:26 2009/11/05 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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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경험자 2010/09/04 14:2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찰스 디킨즈의 소설리뷰를 찾다가 우연히 들렀습니다.
    지금 글의 마지막에 가던 길을 놓치면 길이 없을거라 생각한다는 20대에게 해 주고 싶은 말은 경험자로써, 가던 길을 놓치면 길이 없는 건 아닙니다. 하지만, 다시 돌아가는 것이 참 어렵고 힘듭니다. 그렇지만 다시 돌아가면서 얻는 길이 아마도 가던 길 그대로 가는 것 보다는 두 배 세 배 값진 경험을 쌓았는 것 같네요. 다시 돌아가면서 만나는 많지는 않지만 좋은 인연을 만나는 것도 선물이고요.
    살면서 가장 중요한 건..어느 순간이든지 상대를 배려하는 마음을 가진다면 아마도 늘 행복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리뷰가 좋아서, 잠시 주책없이 글을 남기게 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