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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2/15 심리학으로 보는 조선왕조실록 (14)
심리학으로 보는 조선왕조실록

(강현식, 살림, 2008)

블로그 작가의 매끄러운 글솜씨

물론 그는 작가이기 앞서 임상 및 상담심리를 전공한 전문가이다. 그럼에도 책날개에 밝히다시피 그는 심리학 글쓰기로 대중과 소통하는 것을 먼저 시도했다. 우리나라 대부분의 사람들이 심리학에 대해 잘 모르고, 심리학자의 역할에 대해서도 잘 알지 못한다 느꼈기 때문이란다. 누다심이란 필명으로 블로그를 운영하니 한 번 구경해보는 것도 좋겠다.

이 책에 앞서서 필자는 '평행과 역설'을 읽고 있었다. 나중에 리뷰를 올리겠지만, 이 책은 책장이 쉽게 넘어가는 책은 아니다. 좋은 책이지만 두 대가의 대담을 쫓기에 내 지력이 뒤처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책은 한 번 들면 80페이지씩은 쑥쑥 넘겨버리게 하는 매력있는 책이다. 조선왕조실록이라는 무거운 이름에 움츠러들었던 마음이 무색할 정도의 코믹한 삽화들도 읽는 이의 마음을 편하게 해준다.



태조의 발견: 내가 다른 이의 목숨을 쥐고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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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손에 타인의 목숨이 왔다갔다 한다면?

우리는 태조가 위화도 회군 때부터 조선건국을 생각했다 여기기 쉽다. 그러나 저자가 '양가감정'이란 심리상태를 통해 보는 태조의 행동들을 보면 그렇지 않을 수도 있었겠구나 싶다. 왕좌를 두 차례에 걸쳐 거절했던 그다. 그저 겸손해보이고 싶어서였을까?

태조는 전쟁터에서 오래 산 장수였다. 자신의 지휘로 죽어가는 부하를 보아야했고, 죽음 앞에서 허무를 느낀 때도 분명 많았을 것이다. 더 이상 자신의 판단으로 다른 이의 생명을 좌지우지 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 들었을 테다.

필자는 태조의 그런 마음이 십분 이해가 된다. 이공과 계열에서 7년째 살고 있는 필자는 고등학교 때는 의대 바람, 지금은 의전대 바람을 똑똑히 체험하고 있다. 그럼에도 의사가 되고 싶다는 생각은 안 든다. 환자의 안전이 내 손끝에 달린다는 책임감이 너무나 무겁기 때문이다. 물론 '내가 환자를 죽였다는 죄책감은 뒤집어 내가 환자를 살렸다는 오만이다'라는 말이 있다지만, 필자의 감정은 명언으로 쉬이 다스려지지 않음을 잘 안다. 때로 의사가 갖는 부와 지위가 탐나긴 하지만, 그래도 의사가 되고 싶지 않다.

그 자리가 의사가 아니라 왕이라면 그 책임감이 더할 것이다. 반역이라도 꾀하면 일족을 죽여야 하는 자리다. 그 일족이 자신의 가족일 수도 있다. 부하가 자신이 내린 명령을 지키기 위해 죽는 상황을 수없이 지켜봐야 했던 그로서는 그만 두고 싶었을 지 모른다. 왕이 되고픈 마음 뿐 아니라 왕이 되기 싫은 마음 역시 태조 안에 있었을 것이다.



명종, 어머니의 그늘에서 벗어날 수 없던 눈물의 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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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종 편을 보노라면 대치동 아이들을 볼 때 같은 짠한 마음이 들었다. 문정왕후 윤씨 때문이다. "문정왕후는 자신이 원하는 일을 종이에 적어서 명종에게 보냈으며 명종이 따르지 않으면 불러다가 반말로 욕을 하는 것은 물론, 종아리를 치거나 뺨을 때리기도 했다고 한다. (중략) 명종은 너무나 강한 어머니 앞에서 한없이 약해지는 자신의 모습 때문에 눈물을 달고 살았고, 그에게는 '눈물의 왕'이라는 별명까지 생겼다"주1. 물론 왕이었던 지아비와 아버지를 순식간에 잃고 독해질 수 밖에 없던 문정왕후도 이해하지 못할 바는 아니지만, 어른이 된 아들을 "잡으려는" 모습은 고개를 가로젓게 한다.

강한 어머니와 약한 아들. 하루에도 몇 번씩 가방을 바꿔메고 엄마가 짜준 인생 플랜에 맞춰 사는 대치동 아이들이 떠올랐다. 그들이 명종처럼 언어적/물리적 폭력에 노출된 게 아니다 하더라도, 부모에게 억압적인 태도로 양육되었다면 어른이 되어서도 그 그늘을 벗어나기 힘들다 한다. 그런 부모들이 읽었으면 하는 부분이 있어 인용한다. 비록 그들이 '그런 부모'에 속한다 인정할 지는 의문이지만.

성공한 부모 밑에서 실패하는 자녀가 나오는 이유는 간단하다. 부모가 늘 자녀보다 앞서서 움직이기 때문이다. 자녀에게 기회를 주고, 실수를 하더라도 기다려야 한다. 부모가 성공했다는 것만으로도 자녀는 큰 부담을 느낀다. 그런데 성공한 부모가 자녀에게 도전해 볼 기회도 잘 주지 않고, 설사 주더라도 실수를 하는 즉시 야단치거나 꾸중을 하면, 자녀는 근본적인 자기 실패감을 느낀다.



심리학이 묶어 준 조선 역사

각 각의 왕을 심리학적으로 살펴보면 자칫 책이 짜임새 없이 단편적이 되기 쉽다. 그러나 오히려 부모-자식 관계를 잘 활용해서 왕의 순서대로 정리했기 때문에 조선 역사를 한 번 훑어보기에도 좋은 책이 되었다. 특히 어려운 이름과 왕의 여러 여인 때문에 그 관계가 헷갈릴 때면, 책 맨 뒤에 실어놓은 조선왕조 세계도는 큰 도움이 된다. 보기 쉽도록 지문에 나온 인물들로만 이루어져 있음은 참고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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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아닌우현.

책은 삶을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매체인 동시에 삶에서 가장 쉬운 도피처라고 믿는 사람.
다른 사람이 글을 너무 잘 쓰면 배가 아픈 속 좁은 글쟁이 워너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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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otnote.
  1. 본문 134쪽 [Back]
2010/02/15 11:22 2010/02/15 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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