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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5/31 편집에 정답은 없다: 출판편집자를 위한 철학에세이 (5)
편집에 정답은 없다편집에 정답은 없다 - 10점
변정수 지음/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http://elcamino.namoweb.net/tc/books2010-05-31T01:23:480.31010

철학에세이 부제가 아깝지 않은 책

참 오랜만에 내 스크랩 노트에 빼곡하게 글귀를 옮겨 적은 책이었다. 필자가 편집자 wannabe여서 특히 더 와닿았을 수는 있겠지만, 이 책에서 말하는 것들은 굳이 편집에만 적용할 필요가 없는 이야기다. 저자는 뛰어난 에디터십의 요건으로 판단능력과 조정능력을 꼽기 때문이다. 수많은 선택을 하며 남과 더불어 살아가는 삶이 과연 에디터만의 삶이겠는가?

먼저 판단능력에 관한 이야기부터 하자.
판단해야 할 순간에 어떤 이유에서든 판단을 유보하는 것은 '아직 아무것도 판단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가장 나쁜 판단을 한 것'이니, 어느 쪽이든 '시기를 놓치지 말고' 빨리 판단을 하라는 것이다. 어떤 판단에서든 갖아 중요한 요소는 타이밍이다. 판단이 필요한 가장 적절한 시점에서 판단을 망설이는 것은 대개 '잘못된 판단'보다 훨씬 더 나쁜 결과를 낳는다.주1
이 책이 편집 이상을 이야기한다는 필자 의견에 고개가 끄덕여지지 않는가? 저자는 자주 편집자를 지휘자에 비유한다. 나도 이 비유를 빌리자면, 편집자가 판단을 유보하는 것은 지휘자가 공연 중에 돌발 상황에 당황하여 바톤을 멈추고 멍히 있는 꼴이라 할 수 있다. 지휘자가 바톤을 잠깐 동안은 연주자들이 연습대로 할 수 있을지는 모르나, 일정 시간이 흐르면 악기들이 흩뜨러지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지휘자 비유로 대부분 커뮤니케이션의 의미는 눈치챘으리라. 편집자는 원고를 탈고하고 책이 서점에 꽂힐 때까지 모든 과정에 관여하여 조정해야 한다. 당연히 그 과정 과정의 업무를 맡은 사람들과 원활한 의사소통이 중요하다. 다만 지휘자와 달리 편집자에게는 지휘자만큼의 권위가 없다. 저자의 제안은 "토론자 겸 사회자가 되라"다. 이는 자신과 상대가 원하는 점을 정확히 파악하고 정리해 준 다음 문제 해결책을 제시하는 방법이다. 이는 특히 상대가 자신이 뭘 원하는 지 정확히 모르는 채 불만에 쌓여있을 때 유용하다. 그런데 상대 뿐 아니라 자신조차 그런 상태라면 서로 짜증만 내다 '좋은 게 좋지'라고 덮는 상황이 온다. 이 때 필요한 것이 자기성찰이다.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가를 살피는 것 말이다.



편집은 맞춤법 검사 이상!

사용자 삽입 이미지
흔히 (이미지와 레이아웃을 주로 다루는 패션 잡지를 제외한)'편집자' 하면 떠올리는 이미지라면, 머리에 대충 펜을 비녀삼아 꼽고 눈을 부릅뜨고 빨간 펜으로 틀린 곳을 찾아내는 사람이다. 사실 편집 현장 구석지에 있어본 필자 역시 크게 다르지 않았다. 아니 사실 편집자의 교정지를 받아보는 입장이었기에 그런 편견이 더 견고했을 수도 있다.

교정지의 많은 부분이 띄어쓰기나 맞춤법 확인, 어색한 문장 구조를 고치는분이다. 때문에 이런 모습만 보면 편집자를 우리말 규범 확인자 정도로 볼 수 있는데, 바로 이런 점을 저자는 매우 우려스러워한다.

그가 드는 간단한 예를 보자.
저자가 강연 중에 "1995년은 제 1차 세계대전이 끝난 지 50년이 되는 해이다"라는 문장의 문제점을 파악해보라 하면 대부분의 수강생이 '세계 대전' 혹은 '끝난지' 등의 답을 낸다는 것이다. 답은' 제 1차'가 아니라 '제 2차' 세계대전이다. 띄어쓰기 틀린 것과 '제 2차'를 '제 1차'로 틀린 것 중 어느 쪽이 더 치명적일까? 당연히 후자다주2. 그래서 저자는 "편집자는 '별 걸 다 알아야하는 사람'"이라 말한다. 책이란 그릇에 담길 수 있는 모든 것을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다.

필자의 자랑을 하나 하자. 필자는 잠깐 편집 디자인 쪽에서 인턴을 한 적이 있다. 필자의 미적 감각은 산업디자인 학생이라 하기 좀 민망한 수준이라 스튜디오에서 디자인 실력으로 예쁨 받기는 애당초 불가능했는데, 의외의 곳에서 예쁨을 받았다. 바로 편집자 분께 받았는데, 이유인 즉 편집 과정에서 놓친 오류 몇 개를 필자가 조판하는 과정에서 찾았기 때문이었다. 맞춤법도 몇 개 있었지만, 가장 기억 남는 것은 아무래도 한 공룡학자 프로파일(profile)이다. 어쩐지 낯익은 이름이라 잠시 구글로 검색하니 2004년에 이미 죽은 학자였다. 그러나 교정지엔 아직 '현대인'이라고 적혀있고 아무런 수정이 가해지지 않았다. 교정지를 돌려보내며 포스트잇으로 이를 알린 적이 있다.

물론 그렇다고 편집자의 '교정'이 '창작'이 되면 안 된다. 다시 위의 지휘자 비유를 빌려오자면, 지휘자가 해석 한답시고 작곡자의 의도를 훼손하면 안 되는 것처럼 편집자가 저자의 의도를 훼손하면 안 된다. 다만 작곡가의 의도가 악보와 정확히 맞아 떨어지는 것이 아니어서 해석이 필요하듯, 편집자 역시 언어기호로 옮겨진 저자의 의도를 명확히 드러나도록 조정할 수 있는 것이다. 현대 지휘자의 시초라 할 수 있는 말러가 베토벤의 악보 일부분을 수정해 연주했을 때 그는 '어떻게 베토벤의 악보에 손을 대느냐?'는 질타를 수없이 받았다. 이런 반응에 그는 조목조목 당시의 악기 한계와 악보 흐름을 근거로 하여 베토벤의 '의도'를 자신의 해석에 반영했음을 보였다. 제대로 된 편집자라면 말러가 베토벤을 이해했던 만큼 저자를 이해하고 교정해야 하지 않을까? 물론 효율성을 따져야만 하는 현실에서는 조금 힘들겠지만, 적어도 그런 마음가짐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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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아닌우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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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otnote.
  1. 본문 57 [Back]
  2. 필자는, 50년을 78년으로 고쳤긴 했으나, 여전히 저자의 의도를 파악하지 못했다는 점은 똑같다 [Back]
2010/05/31 10:23 2010/05/31 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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