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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1/05/07 나와 너의 사회과학 (4)

나와 너의 사회과학

2011/05/07 18:42
나와 너의 사회과학나와 너의 사회과학 - 10점
우석훈 지음/김영사

나의 사회과학은 무엇인가?

책장을 덮는 순간, 다시 필자의 눈에 이 책의 제목 '나와 너의 사회과학'이 들어왔다. 술술 책장 넘기는 재미에 목차를 넘길 때 이미 떠올려야 했던 질문을 그제야 떠올렸다.
"내게 사회과학이란 뭐지?"

20대, 여성, 직장인, NGO 직원, 싱글, 대졸자, 지방출신주1, 서울시민.
이러저러한 명칭을 붙일 수 필자에게 사회과학은 무엇일까?

필자는 사회과학을 좋아한다. 아니, 좋아하기 보다는 관심이 간다.
단지 알랭 드 보통('불안: 불안의 원인과 해법'의 저자)과
장 지글러('탐욕의 시대', '빼앗긴 대지의 꿈'의 저자)가 사회과학자이고,
이적씨가 사회과학과를 나와서 사회과학에 매력을 느끼는 건 아니지만주2
사회과학이 필자에게 어떤 역할을 하냐고 묻는다면,
꿀먹은 벙어리 상태가 되버릴 것 같았다.

마지막 책장을 덮은 지 30분 만에 내놓는 졸답은,
"진짜 세상에 대한 공부"다.

몇 번 글에서 언급한 적이 있었겠지만, 필자는 어려서 고전물리를 사랑하는 공순이었다.
통제된 상황에서 예측하는 것에만 익숙했던 필자에게,
세상은 너무 많은 변수, 그것도 측정할 수 없는 변수를 던져놓는 공간이었다.

변덕쟁이인 세상을, 그리고 필자 자신을 발견하면서
사회과학은 필자에게 재미있는 학문이 되었다.

심리학은 변덕쟁이 필자의 속내는 무엇인지 엿볼 수 있게 해주었고,
철학은 왜 하필 우리가 지금 생각하는 방식으로 우리가 생각하는지 고민해보게 했고,
종교학주3은 진짜 예수의 뜻은 무엇이었을 지 추측하게 해주었다.
최근 관심을 두고 있는 국제개발학은 굳건히 뿌리내린 부당한 세계의 구조를 보게해주었고, 나아갈 방향을 모색하라고 필자를 다그치고 있다.



쉬운 길과 어려운 길 - 일원론과 다원론

필자가 읽다 만 책 <Living with Complexity>에는 다음 문구를 인용하고 있다.
There is always an easy solution to every problem—neat, plausible and wrong.
- H. L. Mencken (1917)
일원론은 쉽다. 뭐든 "작정한" 원인 탓으로 돌리면 된다.  깔끔하고 명쾌하게 딱 떨어지는 설명!
그러나 그게 정말 우리 사회를 올바르게 설명하는가?

예로 "한국의 정서는 한이다"라고 못박아두고 보면,
한국문화의 모든 정적인 요소는 한 맺힌 슬픔 탓이고,
모든 동적인 요소는 한풀이 혹은 한을 잊어보려는 몸부림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지 않는가?
아, 농협 사태를 북한 소행으로 보는 자들은 모를 수도.



우리는 '진보'하는가?

필자는 오랜 시간동안 인간사회는 주식시장처럼 '진보'한다고 생각했다.
오르막 내리막을 반복하지만 먼 시점에서 보면 결국은 오르는 주식시장 같이 말이다.

그런데 우석훈 교수는 아니란다.
그 자체가 목적론을 띤, 무서운 사고일 수 있음을 경고한다.

현재 원숭이가 원숭이인 것은 진화가 덜 된 것이 아니라,
인류와 공통 조상에서 현재 원숭이의 환경에 따라 최적화된 것이다.
그런데 원숭이를 공통 조상과 일치시켜 버리고는
원숭이를 '아직 인간(진화의 최종달성단계)이 덜 된 것'이라고 해석해버리는 것이 우생학이다.
이러면 원숭이는 시간이 지나면 인간이 될 존재이고, 따라서 아직 인간만큼의 가치가 없는 존재다.

마찬가지로 인간사회를 '진보'하는 것이라 보는 시각에서는
선진은 진보의 최종달성단계에 가까운 상태,
저개발 선진을 따라가야 할 상태, 즉 야만이 되어버린다.

그러나 저개발국이 반드시 선진국의 형태로 발전해야 하는가?
생존이나 보건 등 몇 가지 보편적인 가치에 관해서는 최종단계는 꽤나 뚜렷하다(건강하게 충분히 오래 사는 것).
그러나 정치, 사회, 문화, 경제의 최종단계가 무엇이란 말인가?
최종단계의 모습을 알지 못하는 데, 우리가 더 가깝다고 자신할 수 있는가?
저개발국이 처해있는 환경에서 우리와 같이 변화하는 게 과연 더 그들에게 이익이 될 수 있는가?
나는 과연 국제개발학을 제2의 우생학으로 만들고 있었던 건 아니었을까?
책장을 넘기면서 고민이 생겼다.
고민을 던져주다니, 이 책 진짜 사회과학책이다.



책 중간 중간, 공대 출신 필자가 읽기엔 약간 어려운 부분이 있었다. 아마 인문계 출신의 독자라면 선형, 비선형 등등의 분석에 대한 내용이 살짝 부담스러울 수 있겠다. 그러나 '입문서'라는 저자의 의도대로, 세부적인 내용이 장벽으로 다가오지는 않는다.

필자는 저자의 애틋한 바람을 무시하고, 매 장(章) 끝에 나오는 "쪽글" 과제를 수행하지 않았다..
그냥 '좋은 독자' 정도로만 남을 마음이었으니까.
그렇지만 작성하지 않았어도, 한 번쯤 들여다보며 '글을 쓴다면 어떤 내용을 쓸까?'라고 혼자 물어보았다.
그만큼 흥미로운 질문이었기 때문이다. 사회과학 내공을 업그레이드하고픈 독자라면 리갈패드 하나 꺼내놓고 자분자분 써내려가보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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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명의 덧>
카테고리 이름이 바뀌었습니다.
하하, <한달에 여섯권>이란 블로그 제목이 무색하게 요즘 글이 안 올라왔지요.
직장인이 되고, 걸어서 출퇴근하게 되면서 책 읽는 시간도 줄은데다,
주말이면 여느 집 직장인처럼 쓰러져 자고 있습니다;;
제 본업도 글을 만지작 거리는 일이 되다 보니,
비업무 시간에까지 글 쓴다는 게 부담스러운 때가 종종 있습니다.

뭐, 그렇다고 책을 전혀 안 읽냐, 블로그를 닫을 거냐, 그런 건 아닙니다.
다만, 포스팅 주기를 유연하게(띄엄띄엄^^:) 하려고 합니다.
사실 제 글 목 빠지게 기다리는 분 몇 분 없으시잖아요?ㅋㅋ
(아니면 이미 목 빠지셨거나,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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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아닌우현.

책은 삶을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매체인 동시에 삶에서 가장 쉬운 도피처라고 믿는 사람.
다른 사람이 글을 너무 잘 쓰면 배가 아픈 속 좁은 글쟁이 워너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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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otnote.
  1. 엄밀히 말하면 태어나긴 서울에서 태어났다. 다만 어려서부터 지방에서 큰 거지.- 이런 우김도 '서울제국주의'의 한 단면인가? [Back]
  2. 물론 그래서 사회과학을 '더' 좋아한다!!! [Back]
  3. 종교학은 신이란 개념을 포함하기에 전적으로 사회과학이라 할 수는 없겠지만, 종교/교리를 만든 사람에 대한 고민까지 포함하는 학문이므로 사회과학에 다리를 걸쳤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Back]
2011/05/07 18:42 2011/05/07 1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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