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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선가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고어디선가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고 - 10점
신경숙 지음/문학동네


온라인에서 연재될 당시, 필자는 첫 편을 놓쳤다는 이유로 읽지 않았던 소설이었다. 그렇지만 작가의 <엄마를 부탁해>를 재미있게 읽었기 때문에, 이 책에 대한 기대도 없지 않았다.
역시 명불허전일까. 토요일 잠자리에서 읽기 시작해서 일요일 밤이 되기 전 다 읽어버렸다.

나를 닮은 정윤, 나를 닮은 윤미루

http://elcamino.namoweb.net/tc/books2010-11-07T13:29:380.31010
독자가 캐릭터에서 '나'를 읽어내는 순간부터 독자는 소설에 흠뻑 빠져들게 된다. 필자 역시 그랬다. 혼자 처박혀 놀기 좋아했던 정윤, 요리 못하는 정윤, 엄마가 아팠던 정윤에게서 필자는 정윤에게 빠져들었다. 동시에 외로움 타는 미루, 언니의 그늘이 짙은 미루에게도 공감했다.

무엇보다 미루의 "언니가 하니까 했다" 는 필자의 깊은 공감을 산 부분이었다. 엄마가 공책을 앞에 들이밀고 "한글 공부 해야지" 할 때는 "팔 아파"라며 뒷짐지던 어린 필자가 한글을 깬 이유도 "언니가 책을 읽으니 나도 따라 읽을 거다"라는 단순한 이유였고 사람들에게 편지를 써주기 시작한 것도 언니가 버들 비슷한 이름을 가진 친구와 편지를 주고 받았기 때문이었다. 성당에 다니기 시작한 것도 언니가 다녔기 때문이었다.
미루는 언니가 떠나고 난 이후에도 언니가 찾던 언니의 그 사람을 찾는다. 여전히 손편지를 쓰고, 성당에 다니고주1, 책을 읽는다. 언니가 그러하지 않음에도. 둘째들끼리 모이면 하는 늘 하는 소리지만, 언니/오빠라는 존재들은 동생들에게 (동생의 의지와 무관하게) 어떤 일을 하게 하는 능력이 있다. 그리고 그 능력은 이성이 아니라 태어나는 시점부터 시작되는 각인에 의한 효과다.


그림자 혹은 쌍둥이의 상실

정윤과 미루에게는 각각 자신만큼 자신을 오래 보아와 준 친구가 있다. 그 것도 독자에게 긴장감을 가져다주는 이성의 친구. 단이의 적극적인 다가섬으로 정윤과 단 사이에 벽이 서긴 했지만, 그래도 여전히 정윤은 자신을 가장 잘 아는 친구로 단이를 여긴다. 미루와 명서 사이는 이에 비해 좀 더 오누이에 가깝다. 그러나 정윤이 미루와 명서를 처음 보았을 때 '누구도 그 둘 사이에 끼어 앉을 수 없는' 사이로 보았으니 단순한 친구 이상주2임을 짐작할 수 있다.

소설이 진행되면서 정윤은 단을, 명서는 미루를 먼저 떠나보낸다. 그림자 혹은 쌍둥이 같던, 자신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을 떠나보내야 하는 고통스러운 과정을 절제된 필체 사이 사이로 엿보고 있노라면, 미루와 명서가 반쪽 씩 밖에 남지 않은 듯 하다. 넷 모두가 일치되었던 그지 없는 행복한 단 하나의 추억에서 멀리 밀려져 나와 상처 받은 둘 뿐이 남았을 때, 그 둘은 오히려 멀어졌다. 남은 한 명을 바라보는 또 한 명은, 어쩔 수 없이 잃어버린 자신의 그림자를 떠올릴 수 밖에 없으니까.



우리는 예수일까, 크리스토프일까

사용자 삽입 이미지

로렌초, 크리스토프 성인

소설 일찍이에서 윤교수의 입을 통해 던져지는 질문이다. 그리고 윤교수의 입을 통해 우리는 예수이기도, 크리스토프이기도 하다는 답을 얻기도 한다.

답을 얻었음에도 불구코 이 질문에 대한 고민은 소설 끝까지 계속된다.
십자가를 짊어질 예수를 지고 강을 건너는 크리스토프.
우리는 예수일까, 크리스토프일까.
그도 아니면 예수의 등에 매달린 십자가일까.

누구나 "시대"라는 이름으로 통칭되는 십자가를 짊어지고 있으면서,
동시에 우리는 그 시대를 만들어내고 있으며,
이 시대를 뛰어넘을 해결책을 갈구한다는 점에서
역시 우리는 십자가주3이면서 예수이고, 예수이면서 크리스토프 성인일까.
그렇다면 우리는 크리스토프의 역을 맡았을 때 세찬 물살에 되돌아서지 않고 강 건너편까지 등 뒤의 예수를 짊어질 수 있을까.

처음에 아기였던 예수가, 강을 건너면서 점차 점차 더 무거워진다는 점도 필자에겐 의미심장했다.
필자가 겁없이 시작했던 지금 하는 일이 그렇다. 처음에는 그저 내 힘 조금 보탠다라는 마음으로 시작했던 일었지만 서서히 다가오는 '시대의 실체'를 보면서 어깨를 짓누르는 무게가 점점 무거워지고 있음을 느낀다. 더군다나 그 실체가 한꺼번에 들이닥치는 날이면 아예 황산벌 전투에 들어선 백제군마냥 앞이 막막하기도 하다.

다행이라면 우리는 크리스토프처럼 고독하지 않다. 우리는 혼자 강을 건너지 않는다. 작가가 던진 '우리는 크리스토프인가?'라는 질문에 곰곰히 생각해보는 사람들 모두가 크리스토프가 될 수 있다면, 우리는 바톤터치 할 수 있는 것 아닌가? 물론 그러려면 다음 주자에게까지는 달려가야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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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아닌우현.

책은 삶을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매체인 동시에 삶에서 가장 쉬운 도피처라고 믿는 사람.
다른 사람이 글을 너무 잘 쓰면 배가 아픈 속 좁은 글쟁이 워너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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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otnote.
  1. 비록 오랜 기간 냉담했지만 [Back]
  2. 그 것이 꼭 연인 사이일 필요는 없지만 [Back]
  3. 여기서 십자가는, 예수 부활 이후 죄의 사함의 의미가 아니라, 죄의 사함 이전의 죄를 뜻한다 [Back]
2010/11/07 22:29 2010/11/07 2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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