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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2/17 평행과 역설: 두 대가의 대담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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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엘 바렌보임, 에드워드 W. 사이드, 장영준 옮김, 생각의 나무, 2003)


따라잡기 벅찬 두 대가의 대담

이 책은 필자가 두 번째 읽는 책이다. 그러나 여전히 어렵다. 독자들을 염려해가며 나눈 이야기가 아니라 배경지식은 각주를 넘겨보며 채워야 한다. 그럼에도 필자가 꿋꿋이 읽었고, 온전히 그들 이야기를 이해할 수 없었음에도 기꺼이 어려운 책 읽는 수고를 했다.

첫 번째 이유는 두 대가의 크나큰 명성을 뒤늦게 알게 되어서.
부끄럽지만 필자가 이 책을 처음 읽었던 2008년 초가을 무렵엔 이 두 사람이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 줄 몰랐다. 단순히 책의 물리적 규격이 특이해서 눈에 띄었기 때문에 집어든 것이었다. 그랬는데, 다니엘 바렌보임이 지휘자라는 거다. 이제 막 카라얀의 이름을 익힌 때라 마음이 동해 집어왔다. 사이드란 사람은 누군지도 몰랐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 어처구니 없을 지경이다. 이건 키케로가 누군지도 모르고 <노년에 관하여>를 집어든 꼴이었다.

두 사람 소개


두 번째 이유는 두 대가의 흥미로운 출신배경으로 인한 긴장감 때문이다.
또 하나 고백. 나는 최근까지 팔레스타인이 나라 이름인 줄 알았다주1. 때문에 이 전에 읽을 때도 어느 정도 그 긴장감을 느끼기는 했지만 정확히 몰랐더란다. 이 번에 읽으면서 세계지도를 보며, 배경지식을 쌓으니 확연히 와 닿았기 때문에 새로운 내용으로 다가왔다.

다니엘 바렌보임은 러시아계 유태인 집안 출신으로 할아버지 대에 이미 브라질로 이민했다. 아르헨티나 태생으로 이 후 부모와 함께 이스라엘로 이주했다. 아르헨티나와 이스라엘에 이중국적을 갖고 있다. 11살 때 푸르트뱅글러주2에게 초청받았으나 2차 대전의 여파를 걱정하여 응하지 못했다. 지금은 베를린에 거주한다.

에드워드 사이드는 팔레스타인 집안에서 태어났으나 주로 이집트 카이로에서 기독교 아랍인으로 성장하여 10대 때부터 미국에서 거주했다. 이집트 거주 당시 푸르트뱅글러의 공연을 보았다.

게다가 이 대담과 출판을 기획한 카네기홀 예술고문 구젤리미안과 인연도 놀랍다. 아르메니아 가정에서 태어나 카이로에서 자랐다. 사이드가 보았을 공연을 같은 공연장에서 보았고, 그의 어머니는 여전히 에드워드 사이드의 아버지가 운영하던 문방구를 기억하신단다.

바렌보임과 사이드는 언뜻보면 섞일 수 없고, 얼굴만 맞대면 으르렁거릴 사이 같다. 그러나 이들은 호텔 로비에서 우연히 만나 이야기를 나눈 이후로 10년지기 친구이다. 사이드 역시 아마추어 음악가로 깊은 조예가 있고, 사회, 정치, 문화 전반에 걸쳐 두 지식인이 열정을 공유한다. 아예 이 둘은 힘을 합해 West-Eastern Divan Orchestra를 창단해서 이스라엘과 아랍의 젊은 음악가들을 하나의 공동체로 묶기도 했다.


세 번째 이유는 그 동안 필자 머리가 이 책을 읽기 충분히 굵었다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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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파엘의 <아테네 학당>

위에도 언급했지만, 이 책을 처음 읽었을 땐 배경지식이 턱없이 부족했다. 라파엘의 <아테네 학당>을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가 누군지도 모르며 보았다고 할까? 1년 반이란 시간동안 바렌보임이란 이름과 사이드란 이름을 알게 되었다. 클래식 음악들도 제법 들었고, 아는 지휘자와 연주자 이름도 늘었다. <아테네 학당>의 등장인물들의 이름을 알게 된 셈이다. 얇팍한 지식만큼 무서운 게 없다고, 덕분에 "이제는 이해할 수 있어"라는 오만이 생겼다. 그리고 읽고 난 지금, 그 것이 오만임을 알게 되었달까...... 아직은 깊게 사고하고, 배경지식을 꾸준히 쌓아야 하는 레벨이구나, 하고 겸손해 질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다. 그동안 알았다고 생각했던 인물이나 시대를 너무 수박 겉핡기로만 알았던 게다.





민족 음악, 민족주의의 결과물인가?

바렌보임은 2001년은 이스라엘에서 슈타츠카펠레 베를린과 함께 바그너의 곡을 지휘했다. 이는 즉시 큰 이슈가 되었다. 그 때까지 이스라엘에서 바그너의 음악을 공개적으로 공연하는 것을 암묵적으로 금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히틀러가 바그너 음악을 매우 좋아하고 그의 가족들을 총애했다는 것을 차지하고 나더라도 그는 알아주는 반유대주의자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바렌보임은 그의 음악작품에서 '유대인'으로 그려진 등장인물이 없으며, 그의 반유대주의가 작품 속에 들어있지 않다는 점을 들었다. 물론 그의 바그너 지휘는 정식 프로그램은 아니었고 앙코르 형식을 빌어, 청중에게 먼저 제안한 후 이루어졌다. 이로 인해 상처받은 청중들은 자리를 떠도 된다는 말도 덧붙였다. 공연 이후 악의적인 공격들이 이어졌다. 그가 이스라엘 사람이란 것도 소용없었다.

이스라엘 국민들의 분노는 이해가 간다. 우리도 친일파 작곡가의 곡을 대할 때 민족사를 떠올리지 않는가? 그의 행적과 음악을 마음 속에서부터 분리하기란 매우 힘들다. 그래서 정당하든, 정당하지 않든 그런 음악가의 음악을 듣는 것만으로 상처받는 사람이 생길 수 있다. 그들에게 그런 음악을 들으라 강요할 수 없다. 그러나 마찬가지로 그런 음악을 듣지 못하게 강요할 수도 없다. 

늦게 태어난 꼬꼬마들은 믿지 않을 지 모르지만, 일본 문화 개방은 1998년에나 이루어졌다. 이 전까지 영화관에서 일본영화를 볼 수 없었고, 아는 사람을 통해 비디오로 보는 것이 일본영화였다. 음반도 정식구매가 불가능했다. 그게 불과 12년 전이다. 조금 더 거슬러 80년대까지만 해도 차이코스프스키 정도를 제외하고는 러시아계 음악 듣기가 힘들었다 한다.주3 공산주의 국가 음악이라하여. 심지어 음악학도들조차 프로피코예프나 라흐마니노프 접하기 힘들었다 하니, 바그너를 배척했던 이스라엘보다 더 하면 더 했지 덜 할 게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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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아 말라스 국제 콩쿠르를 석권한 한국인 바리톤들

두 대가는 좀 더 넓혀 민족 음악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바렌보임은 '독일 음악'이란 것은 '독일식 호른'만큼이나 명확히 존재하는 것이라 말한다. 테크닉 적으로도 설명 가능하다. 따라서 '독일 음악', '프랑스 음악'이라 부르는 것에는 문제가 없다. 문제는 독일 음악을 (아리아계) 독일인만이 진수라 생각하는 자세다. 당연하다고? 당연하다. 그러나 조금 바꿔볼까? "한국 음악은 한국인이 해야 그 진수를 이해할 수 있다" 무슨 근거를 대서라도 기정 사실로 만들고 싶은 욕심이 들지 않는가? 사실 그런 유혹을 떨치기란 필자도 쉽지 않다. 그럴려면 김덕수 사물놀이 패를 잇는 사람이 필리핀 사람이 될 수도 있다는 걸 인정해야 한다.

역지사지라 하였다. 뒤집어보자. 명실공히 대한민국은 바리톤으로 알아주는 나라다. 그러나 위에서 문제로 꼽는 시각으로 본다면, 이들은 절대 일인자가 될 수 없다. 조수미도 절대 위대한 소프라노가 될 수 없다. 최근 국제콩쿠르를 휩쓰는 아시아계 주역들도 변방의 A 마이너일 뿐이다. 윤이상도 마찬가지다. 당신, 지금도 '한국 음악은 한국인이'를 외치고 싶은가?

책에서 인용한 2000년 11월 9일 독일의 당시 대통령 요하네스 라우의 연설을 옮기며 정리해야겠다.
애국주의는 인종주의와 민족주의가 받아들여지지 않는 곳에서만 꽃필 수 있습니다. 애국주의를 민족주의와 혼동해서는 결코 안 됩니다. 애국자의 자신의 고국을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민족주의자는 다른 사람들의 조국을 비웃는 사람입니다.



쓰다보니 또 스크롤 압박이 커져서 쓰려던 음악과 문학의 평행상태는 지우기로 했다. 사실 필자도 명확히 이해하지 못한 부분이기도 했으니까. 세 번째 읽을 때면 더 깊게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아쉽긴 하지만 헛되지 않았다 생각한다. 산을 꼭 정상에 올라야만 의미있는 것이 아니니까. 지금 내가 받아들일 수 있는 만큼 받아들여 나를 살찌우고나서 나중에 좀 더 커서 오면 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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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otnote.
  1. 가자 지구, 서안 지구(West Bank), 이스라엘 등을 포함한 지역. [Back]
  2. 카라얀에 앞서 베를린 필하모니 상임 지휘자로 세계에 이름을 떨쳤으나 나치의 그늘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Back]
  3. 이 건 필자도 들은 이야기다. 90년 대 초까지는 정말 꼬꼬마였으니까 [Back]
2010/02/17 00:34 2010/02/17 0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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