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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7/06 3차원의 기적: 한 신경과학자가 인내하는 3D세계로의 특별한 여행 (15)
3차원의 기적3차원의 기적 - 10점
수전 배리 지음, 김미선 옮김/초록물고기


이 책을 처음 접했을 때 사실 좀 시큰둥했다. 저자를 아는 것도 아니었고, 저자의 특별한 경험이 그닥 강조되지 않은 표지 덕분에 필자가 저번 학기 들은 Vision Brain and Art 수업 내용 일부로 만든 대중과학서 정도로만 추측했기 때문이다. 굳이 복습하는 수고를 해야할까, 하는 오만함이었달까?

그런데 읽기 시작하고 깜짝 놀랐다. 저자는 50여년의 세월을 사시로, 입체맹으로 살아온 신경과학자다. 그러다 나이 50에 가까워 시각훈련을 통해 입체시를 얻었다. 때문에 저자는 과학자로서 지식 전달에 충실하기도 하지만, 입체시를 가진 일반인이 상상할 수 없는 세계를 생생하게 그려내고, 일반인들에게 이해받을 수 없었던 자신의 세상, 자신이 그렸던 일반인의 세상을 표현해낸다.



입체 없는 세상을 본다는 것

입체 없는 세상이란 어떤 것일까? 저자는 명확히 말한다. 절대 입체맹이 아니고는 그 세상을 상상할 수 없을 것이라고. 또 반대로 입체시가 없는 사람이 입체적인 세상을 절대 상상할 수 없다고.

저자가 아무리 상상할 수 없다고 하지만, 그래도 상상해보는 것이 인간이다. 필자는 눈 앞에 캔버스만이 있는 모습을 상상했다. 겹침이나 객체의 크기, 대기의 맑고 흐림, 명암을 통해 한 쪽 눈만으로 그 깊이를 추정하는 세상.

그러나 저자는 또 이런 손쉬운 답안을 난도질 한다. 마치 우리가 보는 세상이 3D 영화고 그들이 보는 세상은 기존 2D 영화인 것으로 이해할 수 없다고. 입체시를 가진 우리는 두 눈이 지어낸 세상에 너무나 잘 적응해서 2D 스크린에 비춰진 영화 속에서도 이제껏 우리의 경험에 빗대어 그 깊이를 계산해낸단다. 그러나 한 번도 입체를 보지 못한 사람은 그 게 안된단다. 게다가 대부분의 사시들은 주변시도 매우 약하기 때문에 자신의 초점 부근의 사물만이 똑바로 보일 뿐이다.

반대로 필자는 시각을 인지하는 과정을 과학적으로 배우며 입체시를 가진 사람이 보는 세상을 상상할 수 있다 믿었다 한다. 그러나 막상 입체시를 얻고는 그 생각이 얼마나 부족했는 지 절절히 고백한다. 아마 우리가 4차원주1 세상 혹은 도형을 떠올릴 수 없는 것과 비슷할 것 같다. 또 만약에 4차원을 인지하는 외계인이 있다면 그들은 절대 우리가 "보는" 세상을 볼 수 없을 것이다.



결정적 시기? 놀라운 뇌의 가소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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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2살 이전에 사시가 되어 입체시를 잃은 경우다. 저자는 수술을 세 차례 받아 언뜻 보면 사시인 줄 모를 정도였다 한다. 그래서 본인도 입체맹을 전혀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대학에 들어와서야 자신이 입체맹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자각했다 한다.

자신이 입체맹임을 확인 받고 나서 병원을 찾아 다녔을 때 그녀가 들었던 이야기는 대부분 "늦었습니다"였다. 당시만 해도 '결정적 시기'를 지난 성인은 입체시를 얻을 수 없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입체시는 두 눈에서 들어온 각 각의 이미지를 하나로 통합해 내는 뇌 능력과 관련되기 때문에 시각이 아무리 좋아도 뇌가 성장을 그치면 이 능력도 생성해 낼 수 없다는 판단에서였다.

그렇기 때문에 '언뜻 보면 모르는 사시' 정도에 만족하며 살았다. 그녀가 검안의를 찾은 것은 입체시를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저 움직일 때 시야가 흔들리지 않았으면 하는 바램 때문이었다. 그런 그녀에게 검안의는 시각훈련을 받게 되고 그러던 어느 날, 그녀는 운전대가 튀어나온 것을 "본다"

결정적 시기. 우리에겐 영어 교육 때문에 익숙해진 단어다. 영어로 사고할 수 있는 능력은 일정 나이 이하에서만 가능하다는 이론 정도로 알고 있다. 뇌가 신경세포 간의 새로운 연결회로를 만들 수 있는 때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새로운 연결회로가 열리는 때 이전까지 불가능하던 뇌 기능이 작동하는 것으로 보는 것으로 이해하는 데, 필자는 개인적으로 이런 순간을 '유레카 모멘트'라고 부른다. 이해할 수 없던 수학공식이 어느 순간 깨달아지고, 들리지 않던 영어가 들렸던 순간 - 아마도 필자의 뇌에선 이를 가능하게 하는 새로운 연결회로가 생겼을 것이다. 공부할 때 학습효과가 계단형으로 상승한다는 것 또한 같은 맥락이리니.

그런데 이런 '유레카 모멘트'는 정말 결정적 시기가 있는 것일까? 21세기 들어와 발표되는 연구를 보면 그 반대 결과가 많다. 사례 또한 여러가지다. 이 책의 저자 뿐 아니라, 우주비행사인 저자의 남편 또한 그런 예다. 반중력 상태에서 몸을 움직이려면 지구와 전혀 다르게 몸을 써야한다. 분명 결정적 시기를 지났을 우주비행사들은 그럼에도 적응해 살 수 있다.

물론 결정적 시기가 전혀 의미 없지 않다. 여전히 젊어서 배우는 게 수월하고 효율도 좋다. 필자가 이 나이 먹고 피겨스케이팅을 배운다고 김연아처럼 피겨 퀸이 될 리는 없지 않겠는가. 그렇다고 또 필자가 결정적 시기를 지났으니 피겨스케이팅을 전혀 배울 수 없는 것은 아니다. 다만 배우는 데 몇 배는 더 오래 걸리고 몇 십배는 더 힘들 것이다. 예술 경지에 오르지도 못할 것이다. 그럼에도 스케이트 날 위에서 내 몸을 움직이는 법을 터득 할 수는 있을 것이다. 늦은 때는 없다, 다만 더 좋은 때가 있을 뿐.



'본다'는 것의 아름다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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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가 입체시를 얻은 후 본 세상을 묘사하는 것을 읽고 있노라면 마치 헬렌켈러의 글을 읽는 느낌이다주2. 눈 앞에서 좌우 일렬로 내리던 눈송이가 공간을 두고 저 멀리에서도 내 앞에서도 내 옆에서도 내린다는 것에 감격하는 모습은 이를 몇 십번 본 나조차도 가슴이 울렁거리게 한다.
나무를 올려다 보면 나뭇잎 하나하나가 제 공간을 차지하고, 그 나뭇잎 사이 사이로 또 빈 공간이 존재한다. 그 사이로 햇빛은 파고 든다. 저 멀리를 바라보면 저 산과 나 사이에 무수한 빈 공간이 존재한다. 그리고 그 빈 공간은 내 앞 뿐만 아니라 내 옆까지 연결되어 존재한다.

바스락 거릴 듯한 옷자락의 주름이 너무 예뻐 몇 시간씩 바라보았다는 저자의 절절한 환희를 읽고 있노라면 '본다'는 경험이 얼마나 아름다운 지 조금 알 듯 하다. 또 어른이 되어서야 입체시를 얻은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꼽는 현상은 "내가 그림 속으로 들어선 기분"이라는 것이다. 앞에서 말했듯이 사시인 사람은 대부분 주변시도 매우 나쁘다. 따라서 내 눈 앞에 있던 캔버스 같기만 하던 세상이 입체시를 얻으며 나를 온통 둘러싼 말 그대로 "세상"이 되니 얼마나 경이롭겠는가. 이 감동은 영화 아바타를 3D로 처음 봤을 때 느끼는 놀라움과 비할 바가 못될 것이다.

이 책을 읽는 내내 우리가 너무나 당연히 생각하는 '본다'는 경험이, 사실은 매우 경이로운 인체의 작용이며 놀라운 능력이라는 생각이 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이 책을 읽지 않았어도 나는 저번 학기 수업으로 '시각 처리 이론'들을 알고 있을 테지만, 시각이란 것이 얼마나 놀라운 경험인지는 결코 마음으로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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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아닌우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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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otnote.
  1. 여기서 4차원은 물론, 엉뚱한 생각의 세상이 아니라, 말 그대로 4차원 세계다 [Back]
  2. 헬렌켈러는 끝내 세상을 못 보았지만 [Back]
2010/07/06 11:23 2010/07/06 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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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Subject: 수전 배리가 안내하는 3차원 세계로의 특별한 여행

    Tracked from The nGelmaum Notes 2010/07/12 07:33  삭제

    오늘 여러분께 소개할 책은 「수전 배리」교수님께서 쓴 『3차원의 기적』입니다. 도서의 기본적인 내용은 다음 절에서 소개하겠습니다. 이 책은 2009년 아마존 최고의 책으로 선정되었으며, 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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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천사마음 2010/07/12 15:4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말 환상적인 리뷰인것 같아요 ^^;; 책은 다시 읽은 느낌이 드네요.

    • 우연아닌우현 2010/07/13 16:25  댓글쓰기  수정/삭제

      과찬의 말씀이십니다. 천사마음님의 리뷰도 재밌게 읽었습니다. 가끔 또 놀러갈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