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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9/05 꽃들에게 희망을 (19)

꽃들에게 희망을

2009/09/05 19:04

꽃들에게 희망을

(트리나 폴러스 글/그림, 김석희 옮김, 시공주니어, 2001, Hope for the Flowers)
이 책을 처음 만난 건, 중1 신을하 선생님이 내주신 독서과제를 통해서였다.
이 때까지 학교에서 내주던 추천도서와는 사뭇 다른 추천도서들로 그 때까지 편식일로를 달리던 내 독서습관에 일침을 놓아주시기도 했고, 책 뿐만 아니라 영화에도 눈뜨게 해주셔서 지금까지 참 감사드린다.
2,3학년도 국어를 신을하 선생님께 배웠더라면 지금쯤 문학소녀가 되어있을텐데+_+

그 때 읽은 책 중에 가장 인상 깊었던 책이 바로 "꽃들에게 희망을" 이 책이었다.
처음 책을 펼쳤을 땐 '아무리 그래도 이젠 중학생인데, 한 장에 글 10줄 있는 동화책 읽으라고?'라는 생각이 들었었다ㅎㅎㅎ
그렇지만 읽기 시작하면 헤어나올 수 없는 그 매력에 빠져들리니~.
단순명료한 글 덕분에 내용이 쉽게 읽히는 데다가 한 장 한 장에 펼쳐지는 Yellow/Black 일러스트가 참 따스해서 애벌레들이 사랑스럽다. (애벌레가 사랑스럽게 보일 수 있다니!!)

이 책을 다시 읽게 된 것은 교사모임 때문에 샘골공부방 거실에서 잠시 있었을 때 우연히 책꽂이에서 이 책을 발견했기 때문이었다. 거의 9년만에 펼쳐보는 이 아름다운 책에 다시 감탄했다. 그리고 조금 더 크고나서 읽으니 그 때는 미처 몰랐던 상징적 요소들이 여기저기에서 수줍게 숨어있는 걸 발견할 수 있었다. 되재공소로 출발하느라 반 밖에 읽지 못해 아쉬웠던 터라 학교 도서관에서 찾아보았다. 1975년 판.
타이포 글씨체인 현대판보다 손글씨인 이 판본이 정감이 가서 혹했지만, ,'-읍니다'로 표기된 글들 때문에 자꾸 이야기에서 흠짓 물러설 수 밖에 없어 다시 내려놓았다.

그리고 어제 공부방 가는 버스에서 실비아 수녀님과 전화하고 끊으려는 민우 전화를 낚아 "책 빌려가도 되요?" 해서 빌려왔다.

자기가 태어난 곳을 갉아먹으며 자란 애벌레가 "높은 곳으로 오르고 싶은 본능"과 "호기심에", "남들도 선택하기 때문에" 애벌레 기둥에 오르는 애벌레. 혹시 집안의 자원들을 흡수하며 몸집을 키우면서 학업성취+취직을 향해 별 고민없이 오르던 우리의 학교 시절이 아닐까. 그렇다면, 나는 지금, "저 위에 무엇이 있는지는 모르지만, 이런 짓을 하면서까지 올라갈 가치는 없어."란 걸 깨달으면서도 다른 애벌레들의 눈치를 보느라 더 오르지도, 그렇다고 내려갈 용기를 내지 못하고 있는 애벌레 상태가 아닐까.

중학교 때 이 책을 읽었을 때와는 사뭇 다른 생각이 드는 점도 있다. 그 때는 호랑애벌레가 다시 땅으로 내려와 행복을 누렸음에도 불구코 결국은 다시 애벌레기둥을 오르는 것이 미련스럽게만 느껴졌다. 그래서 노랑애벌레가 나비가 되는 동안에도 '바보스럽게' 똑같은 '실패'만 거듭하는 호랑애벌레를 고소히 여기기도 했다. ('여성성'을 상징하는 노랑 애벌레에 '여자'를 투영하여 '내 편'으로 멋대로 해석하고 '노랑애벌레 vs 호랑애벌레' 속도경쟁구도로 멋대로 재편해버린 탓도 크다. 구박하지 마시라. 나는 그 때 세상을 단순화시켜야만 이해할 수 있는 어린 청소년이었다)

그렇지만, 호랑애벌레가 욕망을 쫓아 다시 애벌레기둥으로 가지 않았더라면 노랑애벌레는 과연 늙은애벌레를 만나 고치를 만들 수 있었을까? 아니라고본다. 땅을 기어다니며 풀을 뜯어먹는 삶이 만족스럽지 않음을 알면서도 계속 그러한 삶을 살다 애벌레로 죽었을 것이다. 호랑애벌레가 곁을 떠났기 때문에 방황하고 다닐 수 있었고 그런 방황 덕분에 고치를 틀어야함을 알려주는 늙은 애벌레를 만날 수 있었다.
호랑애벌레도 비록 '무자비하게' 오르긴 했어도, 그렇게 욕망을 이루기 위해 열심히 올랐기 때문에 깨달음(비록 그 깨달음이 욕망의 끝은 허무란 것이었어도)을 얻을 수 있었다. 무엇보다 꼭대기에 올랐기 때문에 노랑나비가 되어 찾아온 노랑애벌레를 볼 수 있었고, '나비'라는 진짜 가야할 방향을 찾을 수 있었다.

'나비'란 꿈을 품은 후에도 애벌레기둥을 내려오는 내내 호랑애벌레는 다른 애벌레의 냉소 때문에 '정말인가? 그냥 내가 너무 되고 싶어서 착각한 것일 뿐이지 않을까?'하고 흔들리며 주춤한다. 고치를 만들어내는 마지막 실을 뽑는 순간까지도 흔들린다.

이제 다시 땅으로 내려가려는 어린애벌레인 나로서는 나비까지 가는 길이 너무나 험난해 보인다.
하지만, 고치를 만드는 실을 품은 애벌레라면 모두 그 안에 나비를 한 마리씩 품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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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아닌우현.

책은 삶을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매체인 동시에 삶에서 가장 쉬운 도피처라고 믿는 사람.
다른 사람이 글을 너무 잘 쓰면 배가 아픈 속 좁은 글쟁이 워너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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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9/05 19:04 2009/09/05 1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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