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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7/16 미녀냐 추녀냐: 문화 마찰의 최전선인 통역 현장 이야기 (19)
미녀냐 추녀냐미녀냐 추녀냐 - 10점
요네하라 마리 지음, 김윤수 옮김/마음산책



요네하라 마리. 올해 필자가 가장 꽂힌 저자이리라. 같은 저자의 <프라하의 소녀시대>로 시작해 <마녀의 한 다스>까지 읽으며 어찌나 빠져들었던지. 이 분이 돌아가시기 전이었다면주1 아마 팬레터라도 띄우지 않았을까. 이문화를 접하는 최전선에서 느끼는 단상들을 유머러스하게 풀어놓는 저자의 글솜씨가 늘 부러울 따름이다.


문화와 문화 사이, 통역과 번역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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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역가는 구약성경에도 등장할 만큼 오래된 직업 중에 하나란다. 그도 그럴 것이 통역가와 번역가는 문화와 문화가 만나는 그 접점에서 빠질 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언어가 다른 두 문화를 언어를 이어주는 이 직업을 두고 아이러니컬하게도 이탈리아 옛말은 "번역은 필연적으로 배신이다"라고 표현했다. 화자와 청자가 믿음과 달리 오가는 말에 늘 '변형'이 끼어들 수 밖에 없기 때문에 한 말일 것이다.

다른 언어를 통하게 해 준다는 공통점 때문에 사실 필자는 번역과 통역의 차이점에 대해 그닥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번역을 겸하는 이 동시통역가의 이야기를 듣노라니, 내가 참 무지했구나 싶었다. 우리 말만 하더라도 입말과 글말이 얼마나 다른데, 하물며 두 언어를 오가는 통역과 번역이 같을 리가!

번역은 보통 글에서 글로 옮기는 작업이다. 대부분의 상황에서 어떤 단어 혹은 문장이 표현하고자 하는 내용을 가장 적절하게 옮길 방법을 고민할 시간이 주어지고, 이에 따라 독자들도 이에 상응하는 기대치를 갖게 된다. (<번역의 탄생>은 이 고민과정을 들여다보며 감탄할 수 있는 매우 좋은 예다)

그러나 동시통역 상황에서 고민으로 인한 침묵은 곧 밥줄 끊기는 소리다. 특정 단어가 생각나지 않으면 비슷한 단어로 대체하거나 풀어 말하는 기지를 가지고 임해야 한다. 또한 한 번 놓친 말을 다시 들을 수 없기 때문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집중해야 하는 일이기도 하다. 대신 이런 특수 상황이며, 결과물이 (다시 천천히 들여다 볼 수 있는) 글이 아니라 (한 번 나오면 녹음해두지 않는 한 흘러가버리는) 말이기 때문에 번역만큼의 완벽하지 않아도 허용되는 경향이 있다.



통역가의 세상: 넓고 얕은 지식의 체계

넓고 얕은 지식 체계. 필자가 스스로의 지식을 표현할 때 자주 쓰는 말이다. 여기저기 들쑤셔 주워들은 말은 많지만 뭐 하나 깊이 아는 것이 드문 것을 좀 있어보이면서도 유머스럽게 말하고자 할 때 쓴다.

통역가들의 세상이 그렇지 않나 싶다. 보통 이들은 하루는 원자력 발전에 관한 컨퍼런스에 갔다가 그 다음 번에는 양어장 시설에 관한 상담 통역을 하는 등, 전문 분야를 따지지 않고 하는 경우가 많다주2. 언어력이 뛰어난 사람일지라도 전문 분야의 어휘들은 생소하기 따름이다. 때문에 이들은 일을 맡은 순간부터 벼락치기로 그 분야를 공부하고 관련 어휘를 외운다고 한다. 이런 식으로 일을 하다보면 여러 분야에 걸친 넓고 얕은 지식의 체계가 생기게 될 수 밖에 없지 않을까?

필자는 언어 능력을 바탕으로 전문지식을 보충해 일하는 이런 전문 통역가와 정반대 척점에서 통역하시는 분을 본 적 있었다. 서울에서 열린 한 디자인 컨퍼런스에 참가했었는데, 그 곳에서는 영어를 잘 하시는 디자이너를 통역가로 내세웠다. 초청인사의 강연이 시작되자 필자는 손발이 오그라들었다. 그 통역이라는 것이 조사와 동사만 붙인 채 명사는 영어 그대로가져다 쓴 말이었기 때문이다. 재현해 쓰자면 대충 이런 식이다.

서스테이너블 디자인(sustainable design)은 엔바이론먼트 디자인(environment design)이라고도 불리며 피지컬 오브젝트 디자인(physical object design)나  서비스 디자인(service design)에 있어 이코노미컬, 소셜, 이콜로지컬(economical, social, ecological)한 프린스플(principal)를 적용한 디자인입니다

물론 모든 전문가들이 번역을 그렇게 한다고 볼 수도 없고, 디자인 분야가 다른 분야에 비해 생긴 지 오래 되지 않아 외래어를 많이 쓰는 경향이 있긴 하다. 그러나 도에 넘치는 저런 식의 번역은 있으나 마나 할 정도를 벗어나 청자에게 '화자가 한국어는 영어와 별반 차이가 없다고 생각하지 않을까?'하는 걱정까지 떠안게 해 줄 지경이다. 요네하라 마리가 이 책 뿐 아니라 위에서 언급한 책들에서도 외국어를 구사하는 데 "(자국어인)일본어는 공기처럼 근원이 되는 언어"라고 했던 말을 깊게 새겨들을 수 있게 해 준 경험이다.



남의 실패담만큼 신난 게 있을까?ㅋㅋㅋ

요네하라 마리가 전하는 통역가들의 실수는 본인에게는 부끄럽겠지만 제3자에겐 큭큭거리게 만드는 유머다. 그도 그럴 것이 진지한 상황에서 나온 생뚱맞은 언사는 일부러 웃기려고 꺼낸 개그 소재가 가질 수 없는 '기대치 제로 상황'을 깔고 있기 때문이다.

의심할 나위없이 아름다운 일본어를 구사하는 통역가를 사이로 알맹이가 모두 증발하고 있는 상황이지만, 화자나 청자나 전혀 눈치채고 있지 못한 상황이라든지, '다른 사람 샅바로 씨름한다'를 '다른 사람 팬티로 레슬링한다'로 통역해 버린 상황, 기관차를 설명하면서 '하고 싶어 안달난 여자'란 뜻의 '달리는 여자'로 통역해 화자의 품위를 다 깎아먹은 통역가의 일화 등등. 읽고 있노라면 필자가 외국 나가 한 실수는 별거 아니라는 생각과 함께 책장이 언제 이렇게 다 넘어갔나 놀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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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아닌우현.

책은 삶을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매체인 동시에 삶에서 가장 쉬운 도피처라고 믿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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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otnote.
  1. 저자는 2006년 난소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Back]
  2. 이는 저자가 활동하던 시대 일본의 상황이니 현재 한국 상황과 다를 수도 있겠다 [Back]
2010/07/16 00:44 2010/07/16 0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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