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미로 책 읽기
위험한 정신의 지도위험한 정신의 지도 - 10점
만프레드 뤼츠 지음, 배명자 옮김/21세기북스(북이십일)

유머를 아는 정신과의사

빌 브라이슨의 시리즈(발칙한 미국학, 발칙한 유럽산책 등)을 한 번이라도 접한 사람은 표지의 일러스트를 보고 반가이 집어들만한 책이다. 그의 책에 실렸던 일러스트가 여기에도 등장한다주1. 프롤로그에 대놓고 유머를 첨했다는 그의 글을 읽고나니 필자는 이 책의 저자와 빌 브라이슨을 겹쳐 놓았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빌 브라이슨의 책을 읽을 때처럼 미친 듯이 웃을 일은 별로 없다. 유쾌한 재미로만 따지면 정신과의사가 글로 먹고 사는 빌 브라이슨을 이길 순 없지. 그렇지만, 숱한 심리학과 유사 종류의 책을 읽은 필자가 (책을 통해) 만난 의사들 중엔 가장 유머러스한 사람이다. 번역가도 밝혔듯이 독일어에서 한국어로 옮겨오며 어쩔 수 없이 숱한 언어유희를 접어야 했던 점을 고려하면 아마 더 웃긴 의사일지 모른다.

권위있고 지루한 의사들이 '정상'이라면 저자 만프레드 뤼츠 역시 그의 환자들만큼 '독특한' 의사일지도!



정상인이 문제라고?

뤼츠는 '싸이코패스'라는 말을 뒤집어 '스탠더드패스'라는 말을 만들었다. 자신이든 타인이든 "정상"이지 않으면 견디지 못하는 "정상인"을 가리키는 말이다. 수천수만 대중의 1인이 되어야 안심주2하기 때문에 2차 전쟁 당시 나치에 동조하는 인물 역시 스탠더드패스라고 볼 수 있다. 늘 각이 맞춰져야 하고, 남들 웃을 때만 맞추어 웃어야 하고, 우스꽝스러운 일은 절대 하지 말아야한다고 생각하는 유머없는 사람, 너무 정상인 사람이 바로 스탠더드패스다.

이런 스탠더드패스들이 아무 제약없이 사회에서 활동하는 것을 보며 저자는 "우리는 엉뚱한 사람을 치료하고 있다!"고 외친다. 하느님의 음성을 듣고 교회를 세웠던 성 프란치스코 같은 사람을 이제 우리는 1급 정신병자로 취급하고, 히틀러와 스탈린에게 기꺼이 동조할 인물을 정상으로 간주하는 세상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평범하지 않은 사람과 장애가 있는 사람을 환자로 규정하려는 사회적 압력에 굴복하느냐 마느냐가 정신의학의 자유성을 측정하는 잣대다. 그리고 평범하지 않은 구성원, 튀는 일원들을 자유롭게 내버려두느냐 마느냐가 사회의 자유성을 측정하는 잣대다.
-본문 83쪽



"그 동안 어떻게 참으셨어요?"

사용자 삽입 이미지
당신이 알코올중독, 혹은 그 어떤 중독이나 정신병이 생겼다 치자. 알코올 중독임을 어렵사리 시인하고 병원을 찾았다. 병원 접수가 끝나고 드디어 진찰실로 안내 되었다. 흰 가운을 입은 의사가 앉아 있다.
어떤 느낌이 들겠는가? 정신병을 가진 환자로서 의사를 바라보려니 위축되지 않겠는가? 의사가 무슨 말을 할까?
"대체 뭐 때문에 술을 드셨어요? 언제 드셨나요? 하루 몇 차례나 마시나요?" 등등...
고해성사도 칸막이를 두고 하건만, 어떤 가리개도 없이 의사 앞에서 나의 과오들을 털어 놓으려니 잔뜩 위축이 들고 죄책감이 들지 않겠는가?

필자는 한 번 정신과에 간 적이 있다. 병이 있어 간 것은 아니고, 대학병원에 건강검진을 받으러 갔더니 직원 분이 2층 한 바퀴 돌고 오래서 들렀다주3. 어디가 아프거나 문제가 있어 온 것도 아닌데, 의사 앞에서 어찌나 쫄아들던지. 의사 선생님의 의심스런 눈초리 한 번에도 '혹시 나에게 정신병이 있는 건 아닐까?'하는 불안함에 '정상' 도장을 받아 나오는 순간까지도 조마조마했던 기억이 난다. 검진 차 간 사람도 이럴진대 '나 문제 있어요'하고 찾아간 환자는 자신이 한심스러워 보일까 얼마나 걱정하겠는가.

그러나 뤼츠는 문제를 뒤짚음으로써 환자와 의사 모두에게 긍정적인 효과를 불러온다. "왜 중독이 되셨어요?"하는 물음 대신 "그 동안 어떻게 참으셨어요?"하는 질문을 던진다. 알코올 중독자도, 마약 중독자도, 정신병자도 24시간 내내 취해있거나 생활이 불가능한 경우는 별로 없기 때문에, '정상' 상태를 유지하는 동안 환자 자신을 지탱하는 힘을 이끌어내는 방법이다. 이런 방법은 치료기간 죄책감이나 후회 같은 부정적 감정보다 희망과 자신감 같은 긍정적 감정을 이끌어 내 환자 자신이 치료 방법을 선택하고 주도할 수 있게 해 준다.


저자는 이 책 전반에 걸쳐 "정신병 환자들은 비정상이다"라는 명제를 뒤짚고자 한다. '정상'의 반대는 '비정상'이 아니라 '독특함'주4이라고 말이다. 때문에 대부분의 정신병 환자주5는 비정상이 아니라 독특한 사람으로 보아야한다고.

만약 평범함이 아니라 독특함이 영원히 남는다면 천국에는 정상이 아니라 본모습이, 표준이 아니라 진실이, 평범한 일이 아니라 경탄할 일만 있을 것이다.
-본문 26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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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아닌우현.

책은 삶을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매체인 동시에 삶에서 가장 쉬운 도피처라고 믿는 사람.
다른 사람이 글을 너무 잘 쓰면 배가 아픈 속 좁은 글쟁이 워너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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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otnote.
  1. 이 책을 위해 다시 그렸는 지, 재탕인지는 확인해 보지 못했다. 그러나 이 아저씨 일러스트를 빌 브라이슨과 동일인으로 여겼던 필자로서는 반가움과 '어?'하는 놀라움이 겹쳤다 [Back]
  2. 본문 42쪽 [Back]
  3. 나중에 알고 보니 그 검진 때 정신과 검진 받은 사람은 필자 한 사람 뿐이었다 [Back]
  4. 본문 262쪽 [Back]
  5. 이 책에서는 정신박약이나 지적지체는 다루지 않기로 했다 [Back]
2010/08/30 08:24 2010/08/30 0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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