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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4/06/04 로그아웃에 도전한 우리의 겨울(The Winter of Our Disconnect) (13)
로그아웃에 도전한 우리의 겨울 - 10점
수잔 모샤트 지음, 안진환.박아람 옮김/민음인

매력적이고 탐나고 배아픈 책이다. 6개월 만에 서평을 쓰게 만들 만큼.
출판사 책 소개에 나와있듯 이 책은 저자가 아이들에게 집을 '스크린 금지 구역'으로 선포한 6개월 간의 과정을 담고 있다. 그 실험도 독특하지만 그 과정을 담는 저자의 필체는 매우 사랑스럽다. 칙릿의 주인공처럼 발랄하고 (필자처럼) 괄호를 좋아하고, 이야기거리가 무궁무진하지만 너무 멀리 나가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의 <월든>뿐 아니라 갖가지 보고서와 책에서 최근 두뇌 과학의 결과물들을 끌어오는 데 그것이 외따로 놀지 않는다. 주석이 주렁주렁 달렸는데 엄청 재미있다니! 글쟁이로서 배가 아파야 되는 데 또 좋다고 읽고 있는 책이었다.


게임과 페이스북: 가장 쉽고 가장 혹하는 놀이

이 책을 알게 된 건 사내 스터디 UNCRC31주1을 함께하는 동료 덕택이었다. TV와 컴퓨터 게임 등 전자 매체가 아이들이 놀이 시간 대부분을 메꾸고 있는 현실, 우리가 바꾸었으면 하는 것들을 이야기하는 자리였다. 한국일보에 난 이 책의 서평도 소개해주었는데 그걸 읽고는 바로 퇴근길에 도서관주2에서 대출해왔다주3. 이미 극찬한 바 있는 내 취향의 필체주4는 이때까지 알 수 없었으나 끌렸다. 최근 가벼운 페이스북 중독주5을 겪고 있고, 초등학교 때 게임 중독을 거쳐온 전력이 있던 터라 남의 일 같지 않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UNCRC31에서, 그리고 이 책을 읽으면서 생각했다. 우리는 왜 게임과 페이스북에 빠지는 걸까?
<가난한 사람이 더 합리적이다>에는 하루 2달러로 살아가는 사람들 중에도 집에 TV를 모셔놓고 사람들이 나온다. 나 역시 컨테이너 가건물에 살면서 40인치 쯤 되어보이는 큰 TV를 가진 가족을 만나본 적 있다. 경제학자의 머리로는 이해할 수 없겠지만 100년 전 파리의 빈민가에서 거지 꼬라지로 살았던 조지 오웰은 이해할 것이다. 당시 구제원에서 머무는 날이면 노숙인들은 날이 진 뒤 빈 강당 같은 공간에 잠겨 다른 노숙인들과 함께 '보호'받았다. 그때를 돌이켜 그는 이렇게 적는다.
감금을 견딜 수 있는 건 자기 안에 위안거리가 있는 배운 사람들뿐이다. (중략) 그들에겐 무위의 끔찍스러움을 견딜 자산이 없는 것이다.
TV 가진 사람들이 못 배운 사람들이라고 말하려는 게 아니다. 당시 매체라고 할 만한 게 책이나 신문 정도였다고 하면 그걸 누릴 수 있는 사람은 글을 읽고 쓸 줄 알아야 했으니까. 필자가 말하려는 건 무위, 그러니까 심심함은 인류에게 매우 견디기 힘든 일이라는 거다. 그리고 21세기인 지금, 그 심심함을 가장 쉽고 간편하게, 그리고 화려한 자극으로 해소하는 것이 무엇이겠는가? 손에 든 스마트폰에서 실행되는 게임과 페이스북 아니겠는가?


디지털 동안거: 멀티태스킹에서 해방된 삶, 몰입을 되찾다

저자가 디지털 동안거를 결심한 동기 중 하나는 딸 아이가 과제하는 모습 때문이었다. 애니(수지였나?)의 랩탑에는 자료 검색을 위한 검색창 외에도 각종 메신저 등등 9개 창이 떠 있었지만 그녀는 당연하게도 '숙제하는 중'이라고 말했다. 낯 익지 않나? 근무시간 나의 컴퓨터 창도 그쯤 떠 있는 것 같다. 회사 홈페이지 창, 받은메일함 창, 메일 작성하는 창, 원고 쓰는 워드 창, 엑셀 창, 관련 사진 창, 공유 서버 창, 자료 검색 창, 사내 메신저 창, 뉴스 모니터링(네이버와 페이스북, 트위터) 창. 그 와중에 전화는 수시 때때로 울린다.

윈도우 95 이래 멀티태스킹을 한지 20년이지만 나는 멀티태스킹에 능하지 못하다. 창과 창을 오가다 보면 내가 뭘 하려던 건지 기억이 안 난다. 결국 모니터에는 포스트잇이 덕지덕지 붙고 그것으로 부족해 파티션에는 주간계획표에 이러저러한 일 거리를 적어두어야 일을 놓치지 않을 수 있다주6.창과 창을 오갈 때만이 아니다. 우리는 너무나 쉽게 몇 가지를 한꺼번에 하려 든다. 음악을 들으며 책을 읽고, 모니터를 보며 뒷통수로 대꾸하고("네, 하고 있어요!"), 탁자를 마주한 상대를 두고 페이스북 상태를 업데이트한다. 공연을 감상하면서 동영상 촬영도 함께 한다.

그런데 저자가 인용하는 최근 뇌과학 발표,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에 따르면 필자만 그런 게 아니다(휴~). 인간의 뇌는 원래 멀티태스킹용이 아니다. 되짚어 보자. 책 읽을 때 들었던 노래의 가사가 기억에 얼마나 남는가? 탁자를 마주했던 상대가 웃을 때 보조개가 있던가, 없던가?
지지난 주말이었던 것 같다. 드라마 <밀회> 때문에 <월광>이 계속 머리를 맴돈 탓에 CD를 꺼내 들었다. 책을 읽지도 일기를 쓰지도 페이스북을 켜지도 않고 그냥 들었다. 내가 알던 <월광>이 아니었다. 주선율은 같았지만 내가 몰랐던 음들이 고막에 부딪혔다. 분명 이전에 들었을 때도 부딪혔을 것이다. 다만 읽느라, 쓰느라, 보느라 너무 바쁜 나의 뇌가 '내가 안다고 믿는' 선율만 골라 들었을 것이다.


물리적 제약 만들기: 우리의 약함을 인정하는 한 방법

스크린이 주는 흥미로운 자극을 자유의지만으로 제한한다는 것은 쉽지 않다. 저자가 인용한 오시트의 말대로 "좋아하는 빵이 가득한 제과점에서 하루 종일 있으면서 원래의 식단을 지키려 애쓰거나, 바텐더로 일하는 동안 술을 끊어야 하는 경우" 처럼 우리는 이미 스크린과 종일 붙어 지내기 때문이다.
내 경우는 카메라였다. 기계 욕심이 많았던 터라 남들보다 빨리 자동카메라, 그리고 나중엔 디지털 카메라를 갖게 되었다. 2001년 당시 디지털 카메라란 게 지금 핸드폰 카메라보다도 못한 화질이긴 했으나 필름 걱정 없이 몇 백장을 찍을 수 있다는 매력에 빠져 어딜 가도 들고 다니며 사진을 찍어대곤 했다. 그러다 어느 순간이었다. "너는 사진만 찍어?"라고 누가 말해주었던 것 같다. 사진 찍느라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나 다음 순간에는 또 셔터를 눌러댔다.

대학 입학 이후 첫 배낭여행. 40여 일 여정에 카메라를 챙기지 않았다. 덕분에 시도 때도 없이 주섬주섬 카메라를 켤 일이 없었다. 물론 친구들이 찍어준 사진밖에 남은 게 없는 건 조금 아쉽다. 그러나 당시 나였다면 사진 찍겠다고 일행이 될지도 모르는 사람들을 줄줄이 보내버렸을 것이다. 그렇기에 그때로 다시 돌아간대도 나는 카메라를 챙기지 않을 것이다. 하나 하나 모두 사진으로 남기지 않아도 된다는 경험을 한 뒤주7, 사진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을 수 있었다.

지금은 전자레인지와 TV 없이, 신용카드 없이 살고 있다. 요리 젬병이 내가 전자레인지와 함께 살면 내 식단이 온통 레토르트 식품으로 가득하리란 걸 알기 때문이고, TV를 들여놓으면(사실 집이 좁아서 놓을 곳이 없기도 하다) 채널을 몇 바퀴씩 돌리면서도 끄지 않을 것임을 알기 때문이다주8. 또한 내가 꼼꼼하게 지출을 관리할 사람이 아님을 알기에 신용카드 없이 체크카드로 살고 있다(그런데 최근엔 체크카드도 마구 써버리고 월말이면 허덕인다. 이게 신용카드였다면 아찔하다).



이 책에서 여러 번 언급하는 문장이 있다.
물을 최초로 발견한 자가 누구든지 간에 물고기는 아니었을 것이다.
우리가 우리도 모르는 새 무언가에 의존하고 있다면, 그래서 우리의 삶이 우리의 생각만큼 자유롭지도 않고 풍요로롭지도 않다면 우리는 잠시라도 우리가 채워놓은 물 밖으로 나가보아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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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아닌우현.

책은 삶을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매체인 동시에 삶에서 가장 쉬운 도피처라고 믿는 사람.
다른 사람이 글을 너무 잘 쓰면 배가 아픈 속 좁은 글쟁이 워너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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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otnote.
  1. 아동의 여가와 휴식에 대한 권리를 규정한 유엔아동권리협약(UN CRC)의 31조에서 따온 이름 [Back]
  2. 내가 애정하는 마포구립서강도서관. 331.541모53ㄹ. 내일(6/5) 반납 예정이다 [Back]
  3. 현재 여러 인터넷 서점에서 이 책이 품절 상태인가 보다. 근처 도서관에서 수배해보시길 [Back]
  4. 가볍지만 얕지 않고, 깊지만 무겁지 않은! [Back]
  5. 하루 최소 15번은 접속하는 것 같다 [Back]
  6. '놓치지 않는다'가 아니라 '놓치지 않을 수 있다'라는 표현에 유의! [Back]
  7. 그 다음 배낭여행 때도, 그 다다음 배낭여행 때도 카메라를 챙기지 않았다. 대신 엽서를 모았고 꼭 찍고 싶은 장면은 친구에게 카메라를 빌려찍었다. 이젠 인화하지 않아도 이메일로 사진을 보내줄 수 있으니까! [Back]
  8. 보고 싶은 드라마는 랩톱으로 그 드라마만 찾아 보고 있다. [Back]
2014/06/04 14:26 2014/06/04 1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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