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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3/08 어루만지다: 달콤한 말을 속삭이자 (19)
어루만지다

(고종석, 마음산책, 2009)


입에 매끄러운 달콤한 말

sweet
저널리스트이자 소설가이고 언어학자인 저자가 12년 전 펴낸 <사랑의 말, 말들의 사랑> 책의 연장선에 있다한다. 저자가 고른 사랑에 관한 토박이어 마흔 개가 각 장을 이뤄 그 뜻과 어원, 사촌지간인 어휘들을 고찰해본다. <번역의 탄생>의 저자 이희재씨의 주장처럼 토박이말들은 그 형태가 조금 바뀌더라도 오랫동안 사람들에게 입말로 남아있는 경우가 많고 한자어와 달리 독해 속도와 이해 면에서 앞서는 경우가 많다주1. 여기나온 입술,  감추다, 메아리, 미끈하다, 발가락, 가냘프다 등의 말이 그러할 거다. 물론 잇바디나 바람벽, 궂기다란 말처럼 지금은 조금 생소해진 어휘들도 등장한다. 그러나 읽다보면 나도 한 번 써볼까, 싶은 마음이 몽글몽글 솟아오를 거다. 아니 아예, 이 어여쁘고 생생한 말들을 직접 살려내고 싶어진다. 당장이라도 누군가의 발가락을 간지럽히고, 그 사람의 손이 닿지 않는 근지러운 데를 손톱으로 조근조근 긁어주고, 미끈한 점토를 함께 조물락 거리고 싶어진다. 뭐, 그럴 사람이 없다는 게 조금 문제지만.



사랑의 달콤쌉싸름한 맛은 세계 공통이다?

역시 사람 생각하는 건 비슷한 구석이 있나보다, 전혀 다른 언어에서 비슷한 표현이 나타나기도 하니 말이다. 물론 교류와 함께 생긴 차용도 있다. 우리가 빵을 빵이라 하는 것은 포르투갈에서 pan을 들여온 일본인을 통해 습득한 어휘이기 때문에 포르투갈과 스페인처럼 우리도 빵을 빵이라 한다. 그러나 이와는 조금 다르게 교류없이 '우연의 일치'로 비슷한 표현을 가진 예들을 찾을 수 있다.

우리 말 메아리는 산을 뜻하는 메(뫼)와 아리(살이 生)이 합해 만들어진 언어라 한다. 그러니 "산에 사는 것" 정도? 메아리가 산에만 있지는 않지만 가장 흔히 접하는 메아리가 산메아리일테니. 서구권의 echo역시 산의 정령 이름에서 비롯했으니 놀랍지 않은가?주2

여자의 정조를 꽃에 비유하는 것도 그렇다. 흔히 기생을 부리고 내는 돈은 화대花代 혹은 토박이말로 꽃값이라 한다. 또 <서경별곡>에서 나오는 "대동강 건너편 꽃을/ 배 타들면 꺾으리이다"에서 보듯 "꽃을 꺽다"라는 표현은 여성의 정조를 강제로 뺏는다는 표현이다. 프랑스어 déflore나 영어 deflower가 같은 뜻을 지녔으니 이 역시 인류의 비슷한 생각을 보여주는 예로 꼽을 수 있겠다.주3

엄마와 마마, 아빠와 파파/빠빠. 우리의 첫사랑인 부모님 부르는 호칭 또한 그 연관성을 쉽게 볼 수 있다. 아이의 첫사랑인만큼 처음 낼 수 있는 소리로 이뤄져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주4. 요 전에 별 생각없이 성경 책을 읽다 겟세마니 동산에서 예수가 아버지를 부른 말을 보고 얼마나 놀랐던가. "아빠(Abba)"라니.


스스럼많은 딸래미

낯가림

낯가리기는 꼬꼬마의 생존전략

독자분들은 스스럼없다는 표현은 많이써도 '스스럼'을 단독으로 써본 적은 별로 없을 것이다. 필자 또한 그렇다. 대신 '낯가린다'라는 표현을 자주 쓴다. 이유인즉 필자가 (낯가리는 단계를 넘은 지인들은 극구 부정하겠지만) 낯을 꽤 가리기 때문이다. 낯은 얼굴이니 얼굴 가린다라는 표현으로도 쓸 수 있겠다. 완전히 같은 말은 아니지만, 비슷한 뉘앙스의 표현이니 이제 '낯가린다'라는 표현과 '스스럼쟁이'라는 표현을 함께 써볼 참이다. 필자의 스스럼은 처음보는 사람과 늘 데면데면 대하고, 너나들이주5는 나보다 어린 사람에게도 꼭 어색하게 "저기... 말 놓아도.... 되지..?"라고 확인 받아야 할 정도다. 미용실에서 미용사와 수다 떨고 싶은 마음은 있어도 한 번도 성공한 적 없다. 하기야 긴장상태에서 단답형으로 대답하는 내 모습은 미용실 고객이라기보단 첫 미팅에 나간 남학생에 더 가까우니. 사실 집에서도 그닥 살가운 딸은 못 되는 지라, 아들래미 같은 딸래미일 때도 종종 있다. 그래도 요즘은 나이와 함께 뻔뻔함을 먹어대서인지 더 어려서도 못하던 투정과 어리광을 가끔 부려보고 있다. 엄마 앞에선 항상 어린이여도 되니까! :)




굳이 성경에 나오는 '로고스' 이야기주6를 들먹이지 않아도 왜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인가 따져보는 일은 즐거운 일이다. 더구나 그 말이 우리의 영원한 주제 사랑이라면 더더욱 즐겁다. 그래서 4시간 여만에 앉은 자리에서 독파해버렸다. "스스럼쟁이"여서 여기엔 가장 시시한 일부만 다뤘지만, 이 책의 사랑은 단짝과의 정주7부터 부모자식간, 연인과의 달착지근한 사랑까지 넓은 폭을 다루고 있으니, 지금 어떤 식으로라도 사랑하고 있다면 재밌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예고] 박노자, 왼쪽으로, 더 왼쪽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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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otnote.
  1. 물론 현대까지 널리 쓰인다는 는 전제하에. 일부 국어학자들의 극단적인 토박이말 사용은 가끔 외국어를 읽는 느낌이다 [Back]
  2. 관련 내용 본문 p.29~31 [Back]
  3. 관련 내용 본문 p.72~73 [Back]
  4. 터키에서는 특이하게 '안네'라고 엄마를 칭하긴 하지만 [Back]
  5. '너'와 '나로' 호칭하는 사이 [Back]
  6. "태초에 말씀이 계셨다" [Back]
  7. 저자와 달리 내 세대엔 '깜보'란 말을 쓰지 않는다. 쓰지 않는 정도가 아니라 이 책으로 처음 접했다. [Back]
2010/03/08 23:49 2010/03/08 2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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