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미로 책 읽기
영단어 인문학 산책영단어 인문학 산책 - 8점
이택광 지음/난장이


http://elcamino.namoweb.net/tc/books2010-06-24T17:50:320.3810

Broaden the Horizon, 항해를 그리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필자가 처음으로 Broaden the horizon이란 표현을 들었을 때, 참 멋있는 표현이라 생각했다. 새로운 세상에서 경험을 넓힌다라는 뜻을 '수평선을 넓힌다'라고 하다니. 그 때 필자의 머리 속에 떠오른 이미지는 꽤나 낭만적이었다. 돛을 단 배가 항구를 떠나 저 망망대해로 나가는 모습. 앞으로 나아갈 수록 시야를 메꾸던 땅들이 사라지고(그래서 수평선은 넓어지고) 익숙했던 땅과는 멀어지며 새로운 세상과는 한 걸음 가까워지는 모습.

이런 표현이 나온 건, 중국을 통해 육지 상에서 많은 것이 오갔던 동아시아와 달리 유럽은 '대항해시대'를 열 만큼 항해를 통한 교류가 활발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이런 생각을 하다보니 우리 말에는 없는 표현에서 우리는 뜻 이상의 것을 발견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단어에 대한 인문학적 접근

저자는 외국어를 공부하는 것이 단순히 외국 사람과 말이 통하게끔 하는 도구 하나를 배우는 것 이상으로 본다.
언어가 문화의 산물이라는 말은 역사를 포함하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중략) 이 책은 영단어에 대한 인문학적 접근이면서 동시에 영단어를 통해 인문학을 돌아보는 과정이기도 하다. 이 둘이 동시에 이루어지는 과정에서 우리는 영어를 도구적으로 생각하는 차원을 벗어나서, 영국과 미국의 문화에 터 잡아 독특한 의미들을 발전시켜온 영어의 진실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이 책은 영단어의 이해를 위한 해설서이기도 하고, 영단어에 숨어 있는 내력들을 생각하게 만드는 인문학서이기도 하다.
-프롤로그 중

이는 굳이 '외국어'가 아니어도 가능한 이야기일지 모르겠다. 어디선가 읽은 기억으로는 탈북자들이 언어 문제를 이야기하며 그랬단다. 처음 왔을 때 '부동산'이 대체 뭐길래 저리 많은가 싶었다고. 이는 단순히 남북한이 갈라져 있었기 때문에 생긴 현상이 아니라, 땅에 대한 소유권을 바라보는 두 체제의 근본적인 차이 때문이기도 하다.

필자가 서양문화사 수업 중 종교개혁을 배울 무렵 신학에서 말하는 의인(justification) 개념을 배울 때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의롭지 못한(unjust) 이를 의롭게 하는(justify) 분이 예수라는 뜻이다. 여기에 인간을 원죄를 갖고 태어난 의롭지 못한 존재로 보는 중세 기독교인의 시선이 잘 나타나있다.



영단어에서 이야기 읽기

필자가 외국에 나가면 한 번씩은 "한국은 중국어를 쓰냐?"라는 질문을 받는다. "아니다, 한국어를 쓴다"라고 답하면 민망함을 감추려 "그래도 문자는 한자를 쓰지?"라고 묻곤 하는 데, 한글을 쓴다고 답하면서도 뭔가 찝찝함이 남곤 했다. 한글이 아름다운 세계문화유산으로 자랑스럽지 않은 건 아니지만, 한국어에서 한자어가 차지하는 비중을 설명하지 않고 지나가기는 뭔가 꺼림칙하지 않는가.

그러던 중 좋은 비유를 찾아냈다. 라틴어. 다음 번에 저런 상황이 닥치면 필자는 이렇게 설명하자고 마음 먹었다.
한국은 한글이라는 고유 문자가 있다. 그렇지만 한자는 영어의 라틴어처럼 한국어에 중요한 뿌리이기도 하다. 라틴어를 몰라도 영어를 쓰고 말할 수 있지만, 라틴어를 앎으로써 영어를 깊이있게 배울 수 있지 않은가? 마찬가지로 한국어를 쓰는 데 한자를 굳이 배울 필요는 없지만 한자를 배움으로써 한국어 어휘를 풍부하게 할 수 있다.

이렇게 생각하게 된 계기는 한 독일인 아저씨 G씨 덕택이다. G씨는 기초 라틴어를 대학에서 배웠다. 쓰는 것은 서툴지만 어렵지 않은 것은 읽고 이해할 수 있다한다. 그래서 필자처럼 고만고만한 스페인어를 구사하면서도 (라틴어의 강한 영향을 받은) 스페인어를 읽고 이해하는 능력은 스페인어 회화보다 훨씬 좋았더란다.
비슷하게 필자도 일본어라곤 '고니찌와', '쓰미마센' 밖에 모르면서 미국인에게 일본어로 적힌 약의 설명을 번역해준 적이 있었다. 히라가나는 하나도 모르지만 1日3回, 3錠주1은 읽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한자와 라틴어를 비슷하게 놓으면 우리가 信주2이나 人間주3과 같은 한자어에서 선조들의 생각을 읽어내는 것처럼 영어의 어원(주로 라틴어)으로 옛 서구인들의 이야기를 읽어내는 게 가능해진다.

KBS 단막극 드라마시티 <순결한 순이>

KBS 단막극 드라마시티 <순결한 순이>

이 책에서 나온 재미있는 이야기 중 하나는 독약을 뜻하는 venom이었다. venom은 원래 사랑의 묘약이란 뜻이었는데 그 뜻이 독약으로 바뀐 것이다. 책에 나온 것처럼 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을 떠올릴 수도 있지만, 필자는 최근 본(그러나 나온 지는 꽤 된) 단막극을 떠올렸다.

내가 좋아하는 배우 임주환씨가 나오는 <순결한 순이>란 작품이다. 식모인 순이가 그 집 아들을 짝사랑하게 되며 펼쳐지는 이야기로 여기에 '사랑의 묘약'이 등장한다. 그 묘약이란 것이 그녀 입장에서는 venom의 원래 뜻이겠지만, 상대 입장에서는 그 venom이 그 venom이 아니게 된 상황을 볼 수 있다.


이 책은 venom 뿐 아니라 대략 45개주4 단어들의 이야기를 만나볼 수 있는 매력적인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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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아닌우현.

책은 삶을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매체인 동시에 삶에서 가장 쉬운 도피처라고 믿는 사람.
다른 사람이 글을 너무 잘 쓰면 배가 아픈 속 좁은 글쟁이 워너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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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otnote.
  1. 1일 3회, 3정 [Back]
  2. 믿을 신; 사람(人)과 말(言)으로 이루어졌다 [Back]
  3. 인간; 풀면 사람(人) 사이(間)이란 뜻? [Back]
  4. 세다 귀찮아졌다, 궁금하면 직접 세어보시길 [Back]
2010/06/25 02:49 2010/06/25 0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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