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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3/27 제중원 박서양: 조선인 최초의 양의사 절망에서 꽃을 피우다 (18)
제중원 박서양 - 8점
이윤우,가람기획,2010

박서양 vs 황정 vs 박서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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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선 포스트에서도 한 번 밝힌 듯 한데, 요즘 필자가 월,화를 나는 낛은 드라마 '제중원'이다. 19세기 말, 20세기 초 역동적이며 혼란스럽던 시기를 배경으로 뜨거운 인간의 삶을 그려내서 필자의 심장을 뛰게한다. 그저 한 개인의 '의사 되기' 과정이 아니라, 백정이란 신분제도를 뛰어넘는 일, 중매란 일반적인 시스템을 거부하고 연애라는 '새로운 시도'를 하는 모습, 성별 차별을 뛰어넘어 전문인으로 거듭나려는 여의사 등.

드라마 제중원의 주인공 '황정'의 실제모델이라는 박서양은 어떤 사람이었을까? 소설 속에서 만나는 박서양은 황정을 생각하고 있던 필자의 고개를 갸웃하게 한다. 꽤 다른 모습이기 때문이다. 박서양 뿐 아니다. 어눌한 말투와 '의사는 환자를 거부할 수 없어요~'하던 드라마 속 착한 알렌은 이 소설 속에서는 좀 더 현실적인 캐릭터이다. 외교관의 입장에서 광산채굴권 등 미국의 이익을 위해 앞장섰던 실제 역사와 좀 더 맞닿아 있다. 매력적인 역관 댁 아씨 대신 부농의 딸이 들어왔고, 연적이며 라이벌인 백도양이 빠지며 로맨스가 주는 긴장도 덜하다. 드라마가 시청자들의 몰입을 위해 이러저러한 갈등 요소들을 풀어 맛깔난 상을 차렸다면, '제중원 박서양'은 시대와 개인을 좀 더 담백하게 차린 상이라 할 수 있겠다.

그런데 진짜 박서양과 이 책 속의 박서양은 또 다른 인물이기도 하다. 이 책이 실제 인물을 다뤘다고는 하나 팩션이지 역사가 아니기 때문이다. 연도의 차이도 있을 것이고 이러저러한 사실이 빠지고 왜곡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팩션 속 박서양은 역사가 전해주는 사실이 채워줄 수 없는 성장의 투쟁을 담아낸다. 황정과 박서양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더 알고 싶다면 때마침 좋은 글이 있으니 읽어보길 권한다. http://koreandb.nate.com/theme?themeno=5



자존감, 자신감, 열등감

소설 속 박서양은 반촌 출신이다. 반촌에 산다는 것은 백정이 아니어도 백정이고, 천인이라는 것이다. 작가의 말에서처럼 서양의학을 배우는 것이 기적이 아니라 그저 '학문'을 배우는 것 자체가 박서양에게는 기적인 상황이었다. 신분제가 폐지되어서도 많은 이들이 그를 백정으로만 보았던 그 시기, 그는 그 자신을 어떻게 보았을까? 그는 다른 의생들보다 먼저 제중원에 들어서서 의학 면에서 앞선다. 그런 자신을 보며 박서양은 일생에 누려볼 수 없었던 일종의 뿌듯함을 느낀다. 잘났다는 양반이나 양인들에 비해 앞설 수 있다는 자신감. 그러나 그 자신감 뒷 편에는 '결국엔 나는 의학이란 재주를 지닌 장터 동물은 아닌가?'란 열등감에 사로잡혀있다. 그에게 자신을 백정 아닌 사람으로 인식해 줄 자존감이 부족했던 탓이다. 물론 삶 전체에 따라다녔던 '천인'이란 꼬리표를 생각하면 자존감을 키울 수 없던 그를 탓할 수 없다. 그러나 부족한 자존감은 믿을 수 있어보이는 이에게 의지하려는 모습으로 나타났고, 이 때문에 그는 오랜 기간 서양의학과 조선의학을 제대로 볼 수 없었다. 지독한 성장통을 겪고 의사로서, 사람으로서의 자신을 세우고 나서야 그는 담담히 "자존감을 가진 사람이 얼마나 터무니없는 욕심을 부리지 않는지 깨닫는다"며 이야기하는 모습은 그래서 필자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한 발 더 나아가 그는 "사람의 욕심과 허영이 얼마나 괜찮은 일들을 많이 이루어내는지 보아왔다"며 열등감의 가치까지도 인정하는 모습을 보인다.


근대로 들어서는 아픈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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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완용의 서명이 담긴 한일합방조약서

19세기 말, 20세기 초. 지독하던 시대다. 나라의 주권이 청과 일본에 이리 저리 넘어가고, 황후도 시해당했다. 있던 학문과 들어온 학문의 간극은 크디 크다. 대체 어느 뜻을 따라야 할지, 어느 옷을 입어야 할지, 누구에게 잘 보여야 하는 지 그 어느 것도 명확하지 않은 시대다. 그런 시대를 사는 인물들이 모두 그러하듯, 박서양의 이야기는 그저 박서양 개인의 이야기가 아니다.

소설 중간 중간 나오는 고종의 이야기는 참 아릿하다. 자신의 아버지로부터 이용당하고, 자신의 백성은 자신을 나약한 왕으로 생각하고, 청과 일본은 자신을 왕 취급하지 않는다. 자신을 황제로 칭하고 제대로 해보려 하니, 독립협회는 자꾸 자신을 나무란다. 말도 안되는 협약의 무효를 알리려 했는데 그 믿었던 미국은 차갑게 등 돌리고, 일본은 헤이그 특사 파견을 빌미로 한 나라의 왕을 제멋대로 폐위시킨다. 지독하게 외로운 자리였겠구나, 싶다.

소설 마지막 장 '조선인으로 산다는 것'에는 헤이그 특사 중 한 명이었던 이위종이 기자와 인터뷰하는 장면이 나온다. 당시 특사 중 가장 어린 20살의 나이라 믿기지 않게 제국주의를 꿰뚫어 보고, 또 그 나이에 어울리게 돌려말하지 않고 그 핵심을 찌르는 그의 발언이 참 마음을 서늘하게 한다.
당신들의 정의는 겉치레에 불과하며 기독교 신앙은 위선일 뿐입니다. 왜 한국이 희생되어야 합니까? 일본이 힘이 있기 때문인가요? 이곳에서 정의와 법과 권리에 대해 말해 보았자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왜 차라리 솔직하게 총칼이 당신들의 유일한 법전이며 강한 자는 처벌 받지 않는다고 고백하지 못하는 겁니까.




작가의 말로 이 포스트를 정리할까 한다. 비단 박서양에게만, 그 지독했던 시대에만 적용되는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는 지금에도 너무나 잘 들어맞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욕망에 무릎 꿇고, 두려움에 뒷걸음질 치며, 그르다는 것을 알면서도 손에 쥔 것을 놓지 못하는 현실, 그런 현실은 뼈아프고, 또 너무나 일상적이다. 그리고 그 뼈아픈 현실이 일상적이라는 것은 또 얼마나 가혹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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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아닌우현.

책은 삶을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매체인 동시에 삶에서 가장 쉬운 도피처라고 믿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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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3/27 03:25 2010/03/27 0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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