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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2/24 길들이기와 편가르기를 넘어 (11)
  2. 2010/01/07 세계사를 움직이는 다섯 가지 힘 (30)
길들이기와 편가르기를 넘어

(박노자, 허동현, 푸른역사 2009)

이 책을 쓴 박노자와 허동현은 근대를 둘러싼 주제들에 대해 서로의 논지를 펴보이고 반박해간다. 그러나 이 논쟁은 서로를 "이겨보려는" 노력이 아니다. 이 두사람은 역사가 "진실"이라기보다 "해석"임을 바탕으로, 서로 다른 관점을 통해 복잡다단한 현실에 접근하려는 노력주1며이다. 두 지성인의 논쟁을 보는 독자 입장에서 참 좋은 경험이었다.

이광수를 통해 본 근대 지식인의 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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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든 이성은 괴물을 불러온다, 고야

그들의 첫 논쟁거리는 작가 이광수다.  그의 작품도 접해본 적 없고 그를 그저 '친일' 딱지 붙은 작가로만 알고있는 필자로서는 따라잡기 버거운 주제기도 했다.

박노자의 경우는 이광수를 힘의 논리에 자신을 편입시킨 자로 그리고 있는데 반해주2 허동현은 "민족을 위한 친일"에 정밀한 이해가 필요하다는 시각이다.

허동현의 글을 읽노라니 다른 나라의 근대 지식인 프란시스코 고야가 생각났다. 스페인의 왕정 화가이면서 동시에 지식인으로서 계몽에 많은 관심이 있던 그였기 때문에 Los Caprichos 시리즈를 통해 '이성적 사고'를 열렬히 지지했다. 왼편의 그림이 시리즈의 대표작 중 하나로 제목부터가 'El sueño de la razon produce monstruos(The sleep of reason produces monsters)'다. 그랬기에 나폴레옹이 스페인에 들어왔을 때 내심 반기었던 것이다.

그러나 정작 나폴레옹이 스페인에 들어와서 한 것은 그가 꿈꾸었던 '자유 평등 박애' 세상이 아니었다. 그 자신이 황제가 되고 동생을 스페인 왕좌에 앉힌 나폴레옹을 보며 그는 어떤 생각이 들었을까. 그의 대표 걸작 'The Third of May, 1808'을 떠올려보자주3. 등돌린 프랑스 군인들에게 힘없이 포위당한 스페인 반란군주4에서 고야의 고뇌가 느껴진다. 비슷한 이치로 이광수를 광기의 시대에 산 지식인의 아픔이란 시각으로 한 번쯤은 그를 바라볼 수 있지 않을까?


한류의 서로 다른 해석

올드보이
우리 드라마와 영화가 해외에서 선전하는 이야기는 이제 새롭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이 두 저자가 파악하는 선전 이유는 신선하고, 또 많은 차이가 난다.

우선 박노자. 주요 '팔리는 영화'를 보면 스릴러, 혹은 '한국의 미' 종류에 몰려있다는 점을 들어 '무의식적 오리엔탈리즘'이라 진단한다. '신묘하고 이질적인 눈요기 거리'로서 낙지 먹는 모습 혹은 조용한 아침의 나라 모습을 찾는 것이지 한국 영화의 높은 기술 수준이나 스토리텔링을 찾는 게 아니란다.

허동현은 다른 시각을 나타낸다. <태극기 휘날리며>를 예로 들어 할리우드 영화가 홍보하는 미국적 가치와 충돌하는 한국의 특수성이 아시아 사람들의 마음에 공통적으로 흐르는 보편적 가치이기 때문라는 입장이다. 이는 <대장금>이나 <겨울연가>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필자 생각에는 둘 다 일리가 있다고 본다. 우선 박노자의 설명은 주로 유럽 또는 북미에 들어맞는다. 허동현의 입장은 아시아 대륙과 중남미 대륙에서 이는 한류를 설명하는 데 더 어울린다.

한류라는 주제로 시작했지만 두 저자는 영화란 문화상품에 대한 서로 다른 이해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이 서로 다른 이해가 한류를 바라보는 방법에 어떻게 영향을 끼쳤는가를 대조해가며 두 지성인의 이야기에 귀기울여 보면 근대 영화산업에 대한 지식까지 덤으로 얻게 되리니.


근대화 과정 속 종교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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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중원 1대 원장 알렌 의사

요즘 필자는 '제중원'을 매우 재밌게 보고 있다주5. 근대화 과정의 역동적이고 불안한 사회 모습과 그만큼 넓은 가능성 때문에 드라마 제중원의 무대는 참매력적이다. 그리고 그 매력의 한 가운데에 알렌 의사가 있다.주6

그런 그를 인터넷 검색해보았다가 놀랐다. 천상 선인으로 다가왔던 그가 금광채굴권이나 철도공사에 관련되어 있었다. 이성적인 판단에 앞서 배신감이 들었다. 그러나 한숨 돌리고 생각하니, 이해 못 할 것도 아니다. 그 역시 제국주의 시대를 산 사람으로서 '민족'이란 틀에서 자유롭지 못했겠구나 싶다. 그의 입장에서 의료 봉사만큼 금광채굴권 역시 '국위선양'이었을테니.

좀 더 넓혀 기독교 전체로 보자. 근대 역사에서 기독교, 특히 개신교의 역할이 컸다 할 수 있다. 학교와 병원 등 근대적 시설을 만들었다. 유관순이 다녔던 이화학당 역시 기독교 선교자가 세운 학교이며, 세브란스 병원에 막대한 자산을 기부한 세브란스 역시 기독교 인이었다.

그들의 이런 업적은 칭송받을 만하다. 그러나 기독교 선교사의 업적이 과연 절대 선이었는가는 고민해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기독교 인이었던 박영효가 미국인에게 보낸 편지를 보면 알 수 있듯, 조선의 '기독교화'를 통해 국민국가 만들기를 꿈꾸는 기독교인이 꽤 되었을 것이다. "서양 제국주의의 앞잡이" 역할을 한 면도 있다.

타 종교에 대한 제국주의적 태도 역시 문제 삼을 수 있다. 이사벨라 버드 비숍의 글을 보면 그 때까지 존재하던 유교, 불교, 토속 신앙을 우상숭배로 폄하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러나 기복신앙이 어디 '열등한' 종교만이 갖는 요소인가? 기독교가 기복신앙에서 자유롭다 할 수 없는 데 불구코주7 덮어놓고 기존 종교을 '악습'으로 치부하여 철폐 대상으로 삼는 모습은 기독교 신앙인의 모습이라기보다 제국주의자의 모습이 더 어울린다.



두 사학도의 논쟁을 지켜보니

필자는 모범생 역할이 몸에 배어 '반박'이란 것이 약하다. 그래서 이런 류의 책을 읽다보면 찬동으로 시작해서 찬동으로 끝나거나 '음? 이 분 생각은 나랑 좀 다르네?'에서만 끝나는 게 대부분이다. 그러나 두 분의 논쟁을 읽다보면 상대의 논리 뒤에 있는 전제를 꼼꼼히 파악하고, 전제와 논리, 그 전개 과정에서 파생되는 오류들을 찾아내는 예시들을 만날 수 있다. 나아가 자신의 논지를 밝히는 모습을 보며 '진정 다른 사람의 의견은 이렇게 읽어야 하는 구나'를 배우는 좋은 기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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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아닌우현.

책은 삶을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매체인 동시에 삶에서 가장 쉬운 도피처라고 믿는 사람.
다른 사람이 글을 너무 잘 쓰면 배가 아픈 속 좁은 글쟁이 워너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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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otnote.
  1. p.9 [Back]
  2. 어쩌면 다양한 시각을 독자에게 전하는 몫을 허동현을 통해 이루기 위해 일부러 논쟁의 시작을 단순한 해석으로 열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긴한다. [Back]
  3. 아니면 검색이라도, 부디. [Back]
  4. 그들의 차림새며 겁에 질린 모습을 보면 '군'을 붙이기도 민망스러울 지경이다 [Back]
  5. 왜 필자가 밀어주고픈 드라마들은 다 시청률이 저조한지..... "우현의 저주"라도 있는 걸까 [Back]
  6. 사실 필자는 주연 캐릭터들보다 알렌 의사 캐릭터에게 더 많은 애정을 품고있다. 이 드라마 최고의 훈남은 역시 알렌 의원! 영어권자 특유의 억양이 들어간 '~해요'체를 구사할 때마다 귀엽기까지 하다 [Back]
  7. 무신론자에게 안수치료와 굿이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것을 어찌 설명할 수 있을까 [Back]
2010/02/24 23:52 2010/02/24 2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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