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미로 책 읽기
보노보 찬가 표지

(조국, 생각의 나무, 2009)


운동권 훈남 조국 교수, 그를 통해 본 나의 모습.

책읽는밤

2009.11 책읽는밤 조국 교수 강연

'운동권 훈남'이라는 표현은 필자가 다니는 학교의 인문사회과학부 교수님께 빌려왔다. 학점 정글로 변해가는 캠퍼스에서 '책 읽는 밤' 행사에 학생들을 끌어오기 위한 애처러운 교수님의 노력이기도 했지만, 그렇다고 틀린 말도 아니었고 조국 교수님의 목소리까지주1 좋으셨으니!

강연은 긴장을 늦출 새 없이 알찼다. 세대 차이가 나는 대학생들을 위해 충분한 역사적 배경설명을 곁들이면서, 현재 이슈가 되는 문제들을 짚어나갔기 때문에 '나만 아니면 돼'라는 정신으로 무식+무관심을 생활신조로 삼던필자 역시 많은 걸 얻어갈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오랜 예약대기 끝에 빌린 이 책을 통해 강연에서 미처 몰랐던 조국 교수의 모습도 알게 되었다. 이 책의 '맺음말을 대신하여'에 실린 내용을 잠깐 옮겨보겠다.

나는 지역주의 수혜지역인 경상도 지방에서 남성으로 자라나서, 입시경쟁의 승자가 되어 대학에 들어간 후 '미국 물'까지 먹고 돌아왔으며, 집값 비싼 강남 지역에 거주하면서 '학벌'의 정점이라는 대학에서 교수를 하고 있다. 침팬지 세상의 '승자'가 된 것이다. 마르크스의 유명한 정식, "존재가 의식을 규정한다"에 따르면, 나는 지금 '숭미 보수우파'로 활약하고 있어야 할게다.
그런데 나는 사회적으로 반대성향의 사람으로 분류되고 있으며, 스스로도 자신을 그렇게 생각한다. 나는 우리 사회가 신자유주의 또는 시장만능주의를 버리고 사회민주주의적 사회운영원리를 대폭 받아들어야 한다고 판단하고 행동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의 특이한 이력이 눈을 끌었다. 이는 필자의 환경도 되돌아 보게 되었다. '공교육을 가장한 사교육'을 통해 특목고-명문대 코스로 진입했으며주2, 집이 크게 잘 살진 않아도 부모님 모두 교육계에 일하시며 안정적인 사회명예직을 갖고 계시다. 집에서 보는 신문은 중앙일보이고, 친척 중에 공무원이신 분들이 계시고 고위공무직이신 분도 있고, 보수정당에서 활동 하시는 분도 계시다. 동시에 나는 약육강식 대한민국의 20대로 절망의 트라이앵글 속에서 스펙을 못 쌓은 것에 불안해하며 살아가고 있다. 그래서인지 한겨레 출판에서 나오는 책들을 수시로 집에 사다 나르기도 한다.



보노보 닮은 꼴 조에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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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지럼을 태워 화를 푸는 조에족

보노보 이야기는 앞 선 포스트 보노보 혁명:돈도 벌고 세상도 구하는 비즈니스에서 다루었으니 그 곳을 참고하시면 좋겠다. 이 평화를 사랑하는 종을 다시금 만나니 떠오르는 사회가 있었다. MBC 다큐멘터리 아마존의 눈물에서 보았던 조에족.

잡아온 식량을 소외받는 자 없이 나누기 위해 2시간 동안 고민하고, 화가 난 사람에겐 간지럼을 태워 화를 풀어주는 조에족 사회가 보노보로 대표되는 평화적 사회의 모습과 많이 닮지 않았는가? 내가 조에족을 알게되면서 뭉클했던 이유였다. 이론은 좋지만 실제는 불가능하리라 믿었던 선한 사회가 실재하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는 어떠한가? 1박 2일의 "나만 아니면 돼!" 구호가 웃음을 유발할 만큼 우리 깊숙히 들어와 있다. 저자가 들어가는 말에 밝히는 "억울하면 출세해라', '억울하면 부자되라', 억울하면 남자로 태어나라"로 대변되는 '억울하면' 3종 세트에서 침팬지가 되어버린 우리 모습을 볼 수 있다.



진보의 진보를 위한 저자의 고언

필자는 지금의 헌법체계가 이루어진 1987년 6.10 항쟁 이후에 태어났다주3. 젊은 세대로서 친미/친북 기준이 왜 보수/진보의 기준인가를 이해할 수 없다. 그 어느 쪽이라도 편들고 싶기도 하지만 그 어느 쪽도 편들어 주고 싶지 않기도 하다. 내게 정치란 '행복하게 살기 위한 제도'를 위해 있는 것이지 친(무엇)을 위해 있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이런 답답함을 품고 있는 사람이라면 조국 교수의 고언에 고개를 끄덕일 수 있을 것이다. 진보가 들고나와야 할 것은 사회적 약자를 위한 복지이며, 지지자를 얻기 위해서는 "우중을 계몽시키는 지도자"의 태도를 버리고 자세를 낮추어 시민들의 이야기를 듣고 이해하는 것이 먼저다. 무능력한 진보가 내세우는 고리타분한 구호나 명분에 감하기엔 세상은 너무나 치열하고 밥벌이에 바쁘다. 왜 함께 좋은 세상 안 만드냐고 윽박지른다고 그들이 돌아서지 않는다. 왜 자신들이 주장하는 것들이 우리를 풍요롭게 해 줄지 이야기하고 이해 받을 노력을 해야한다. 진보세력을 지지할 것이라 예상했던 저소득층이 왜 오히려 이명박 정부를 (욕하면서도) 지지하는가를 머리 싸매고 고민해보아야한다.



이 땅의 소수자들을 위한 보노보 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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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대학 새내기 시절 홍석천의 강연에 간 적이 있다.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성소수자들도 성소수자이기 앞서 사람임을 잊지 않아야겠다고 느꼈다. 이주노동자들도, 양심적 병역 거부자들도, 장애인도, 한센병과 에이즈보균자들도 모두 사람이다. 그렇기에 모욕받고 거부받고 차별받으면 상처받는다. 이 당연한 수칙이 그런데 너무나 쉽게 잊혀지는 곳이 대한민국이다.

같은 교실에서 수업을 받던 장애 학생들은 '효율적 수업'에 방해된다는 이유로 쫓겨나고, 청소년과 아동들은 '제도적 아동폭력'에 내몰려 체벌의 두려움 속에서 장시간 공부를 강요받는다. 이주 노동자들은 산업재해에 아무런 안전장치 없이 내몰려 있고, 양심적 병역 거부자들은 반사회 분자로 낙인찍힌다.

맹자는 측은지심 없이 사람이 아니라고 했다. 소수자들 역시 모두 같은 사람이라 여길 때 오는 "왼쪽 가슴 아래께에 온 통증"주4을 느껴보자. 지금 세상은 어쩌다 남과 공감하는 능력을 상실한 아스퍼거 환자들로 넘쳐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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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아닌우현.

책은 삶을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매체인 동시에 삶에서 가장 쉬운 도피처라고 믿는 사람.
다른 사람이 글을 너무 잘 쓰면 배가 아픈 속 좁은 글쟁이 워너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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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otnote.
  1. 필자가 사람 인상을 보는 데 아주 중요하게 여기는 요소다 [Back]
  2. 비록 졸업은 불투명하나 [Back]
  3. 블로그에서는 나이 밝히고 싶지 않았는데... [Back]
  4. 장석남 시인의 시 제목, 맺음말을 대신하여에서 재인용 [Back]
2010/02/26 03:08 2010/02/26 0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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