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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9/26 아서왕, 여기 잠들다 (31)

아서왕, 여기 잠들다

2010/09/26 02:02
아서왕, 여기 잠들다아서왕, 여기 잠들다 - 10점
필립 리브 지음, 오정아 옮김/부키


남장 여자, 여장남자. 서양 중세판 성균관 스캔들?

성균관 스캔들

인기 원작을 바탕한 인기 드라마 성균관 스캔들

요즘 인기 소설 <성균관 유생들의 나날>를 바탕으로 한 드라마 <성균관 스캔들>이 인기다. 남장 여자라는 <커피 프린스 1호점>때 이미 공중파를 타서 신선한 소재라 할 수 없지만 여기다 "금남"의 장소 성균관에 유일한 여자라는 점이 더 매력으로 작용하는 듯하다.

이 소설의 화자로 등장하는 주인공 소녀 그위나 역시 소녀시절의 대부분을 소년으로 산다. 또래 다른 소녀들이 귀족의 시녀 생활을 하며 바느질과 요리를 배울 때 그위나는 기사가 되려 애쓰는 소년들 사이에서 말을 타고 사냥을 한다.

성균관에서 이선준과 친구로 남기위해서라도 남자가 되야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여자로 보이고픈 마음 때문에 생기는 긴장이 이 소설에도 등장한다. 그래서 <커피 프린스>나 <성균관 스캔들>을 보며 마음 졸이는 분이라면 충분히 즐겁게 읽을 수 있는 이야기다. 저자 필립 리브의 이름이나 대부분의 한국인들은 아는 척만 할 수 있는 아서왕의 전설을 강조하느라, 이 마케팅 포인트를 놓친 게 안타까울 지경이다.

그러나 성균관 스캔들이나 커피 프린스와 달리 이 소설에서 그위나가 말려들어간 남자들의 세계 속 남자는 그저 여자의 로망으로 그려지지 않는다. 착하고 솔직하던 소년들이 사냥을 나가고 선배 기사들을 뒤쫓기 시작하면서 변하는 모습은 남성의 사회화의 어두운 면을 잘 끄집어 낸다. 강한 척하는 허풍쟁이가 되어가며, 지나가는 시녀들을 그저 몸매로 순위 매기고 낄낄대는 소년들은 그 어디에도 자신의 약한 모습을 털어놓을 데가 없다. 그렇다고 다시 소녀로 돌아온 그위나가 겪는 소녀들의 세계도 별반 나을 건 없다. 그저 누구의 아내가 되길 바라며 하루 종일 성 안에서 마님을 모시는 일을 하고, 자신들을 순위 매기는 소년 중 한 명과 사랑을 이루길 꿈꾸는 것이 고작이다. 대신 소녀들은 제 친구와 같이 바느질을 하며 속내를 털어놓을 수 있다.

그래서일까, 주인공과 이뤄지는 남자는 오랜시간 자신을 여자로 알고 자란 남자다. 전쟁으로 아들을 잃을까 두려워하던 어머니가 딸로 키웠던 남자 아이로, 우연한 계기로 자신의 남성을 되찾지만 여성성주1을 잃지 않고 간직하는 사람이다. 주인공도, 주인공의 짝도 모두 양성의 매력을 갖춘 이라는 점은 명백히 작가의 의도로 보인다.



춘향전 모르고 쾌걸 춘향, 방자전 보기
사용자 삽입 이미지

춘향전을 비튼 쾌걸춘향(상)과 방자전(하)

사실 이 책이 내 손에 들어온 지 한참을 지나서야 읽기 시작했다.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이 책이 '셀링 포인트'로 내세운 아서왕 전설의 반전이 부담스럽게 느껴진 건, 필자가 아서왕 전설을 수박 겉핡기보다 못하게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아서왕 전설이 작가가 사는 영미 문화권에서는 유명한 전설이겠지만, 대한민국 국민인 필자에게는 차라리 대조영 전설이 더 알만한 이야기겠다.

이는 마치 평균적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모두 아는 춘향전을 전혀 모르는 외국인이 <쾌걸 춘향>이나 <방자전>을 접하는 것과 같다.아예 새로운 창작물로 접하면 모를까 이미 춘향전을 비튼 작품이라는 사실은 알되 춘향전을 모르는 외국인라면 두 작품을 접하는 것을 망설이게 될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래도 재밌다!
필자가 아서왕의 전설에 대해 아는 거라고는 아서왕은 전설의 칼을 뽑은 사람이 전부였지만 그 게 큰 장애로 느껴지지 않았다. 영국에서 이 먼 대한민국에까지 내용은 몰라도 이름은 들어본 왕 답게 당시 잉글랜드에 큰 영향력을 끼쳤으리라는 짐작 정도면 이야기의 흐름을 따라 잡을 수 있다.

어차피 대조영이나 박혁거세처럼 아서왕도 실제로 확인된 바나 알려진 바가 없다고 한다. 그러니 아서왕이 누군지 모른다고 이 책을면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스토리텔링과 제한된 미디어가 만드는 환상

이 소설에서 가장 흥미로운 사람을 꼽으라면 단연 마르딘이다. 아서 왕을 둘러싼 모든 전설을 만들어 내는 사람이다. 그위나를 호수의 여인으로 만들어 아서 왕을 '선택받은 자'로 만든 것 역시 그의 작품이다.

그가 세계를 떠돌며 전하는 환상적인 이야기는 아서 왕이 침략하기 전부터 사람들의 마음에 아서 왕을 영웅으로 만든다. 폭압적인 아서 왕이 그의 이야기에서는 더 없이 현명하고 강직한 왕으로 변모한다. 침략자가 외부인인 색슨족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할 수호자로 변하고, 아비규환의 전쟁터도 사나이의 로망으로 탈바꿈한다. 그의 이야기를 모닥불 앞에서 반복 듣노라면 그 전쟁을 치뤘던 군인들마저 자신의 기억을 마르딘의 이야기로 대치시킨다.

강력한 스토리텔링의 힘과, 진실을 마주할 수 없도록 제한된 미디어가 만들어내는 효과는 소설을 읽는 내내 놀랍다. 단 한 사람, 마르딘의 바로 곁에서 수없이 "귀신은 없다", "사람들은 자신이 바라는 이야기를 믿는다"란 가르침을 수없이 들은 그위나만이 그나마 진실을 기억한다. 비록 소설 속 세계는 작가가 창조한 허구지만 그 울림은 현실적이다. 여전히 사람들은 이야기를 좋아하고, 듣고 싶은 이야기에 더 마음을 쏟으며, 극적인 이야기에 마음을 뺏긴다. 그래서 정치인과 연예인은 이미지 창출에 목숨 걸며 신문사 별 독자층은 뚜렷히 나뉜다.

그러나 스토리텔링의 달인 마르딘도 결국 아서 왕을 바꾸지는 못한다. 여전히 아서 왕은 감정적이고 폭압적이다. 지혜롭지도 못하다. 마르딘이 더 없이 훌륭한 멍석을 깔아놓았지만 아서 왕은 전설을 완성하지 않는다. 진실을 품고 있지 않은 스토리텔링의 한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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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아닌우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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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권위적이기보다 포용적인 품성 [Back]
2010/09/26 02:02 2010/09/26 0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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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Subject: 아서왕, 여기 잠들다- 아서왕의 전설에 흑마법을 건 필립 리브

    Tracked from ILoveCinemusic의 영화이야기 2010/10/04 11:20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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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ILoveCinemusic 2010/10/04 11:2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소설작품들이 영화로 재탄생되는 측면이 많다고 보면 필립 리브의 이번 작품은 참 재미없는 영화가 될 듯 합니다.
    이런 작품은 그냥 소설로 읽는 것이 낫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