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퀴즈쇼

2010/03/17 02:40
퀴즈쇼

(김영하, 문학동네, 2007)


이민수, 낯설지 않은 20대 모습

유일한 친족이라 할 외할머니가 빚덩이만 남기고 돌아가셨을 때, 그는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고 그저 집에 눌러 앉아 드라마를 보며 현실도피한다. 빚을 대신해 집을 빼앗기고 좁은 고시원 한 칸에 옮겨서도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여전히 그는 돈을 그깟 얼마라 부르고, 그깟 얼마를 외치며 대차게 편의점조차 때려친다. 그러나 아무런 대책도 없다. 그게 싫지만 그래도 행동은 달라지지 않는다. 무얼 해야겠다는 것은 알되 하고 싶지 않은 상태. "그 무엇도 할테지만 그 무엇도 하고 싶지 않은" 상태다.

그런 그를 뼈아프게 꿰뚫어보는 이가 "속된" 여자 빛나다. "게으름이 뼛속에 깊이 뱄어". 그렇다. 그런데 그를 욕하지 못하겠다. 나 역시 무엇이라도 해야겠지만 하고 싶지 않은 졸업반이다. 말이 좋아 내가 하고 싶은 걸 찾는 중이라지, 글쎄. 사회인이 된 모습은 쉽사리 그려지지 않는다. 혀를 끌끌 차야할 잉여족 이민수에서 필자는 본인의 일부를 보고 말았던 게다.


떠남, 새로운 세계와 만남

이춘성의 제안을 받아들여 떠난 곳은 공간을 분명히 인식할 수 없는 특이한 곳이다. 복잡하고 늘 변하는 듯한 공간에서 그는 그의 방조차 단말기에 의존해 찾아가야 한다. 마치 그의 정체성처럼 그의 방도 떠다니는(unlocalized) 형태다. 여기에 유리의 매트릭스 이론까지 겹쳐져 더욱 그가 어디에 있는가는 혼란스러워진다. 현실과 떨어진, 퀴즈를 위해 살아지는 삶의 공간. 그 모호한 곳에서 그는 점차 떠나온 곳을 잊고 그 때의 몸을 퀴즈에 맞춘 몸으로 바꾸고 있었다. 스파링의 승률을 올리기 위해 도서관에 붙박여 살고, 지지 않고자 했다.



부활 - 새로 태어남, 시작

도망쳐 나오기까지 그는 그 곳에서 무엇을 배웠을까? 팀원들간에 흐르는 정치? 경쟁? 아니면 허무? 무엇이엇든 간 그가 도망쳐나와 다시 현실에 섰을 때, 그는 마치 아기 같았다란 느낌이다. 돈 한 푼 없이, 가진 것이라곤 좋아하는 여자의 전화번호가 다다. 그나마 그 전화조차 경찰서에서 전화를 빌려써야 하는 처지다. 그는 자신이 있는 곳이 어딘지도 잘 몰랐다. 세상에 태어난 아기처럼 그는 가진 것 없이 보살핌이 필요한 존재였다. 그러나 그 보살핌을 부끄러이 여길 줄 알고, 제 위치를 다시 잡아가는 온실 밖 묘목이기도 했다. 대차게 대문을 차고 나온 집에 들어가 일을 청하고, 책방 지하에서 야전침대에 몸을 뉘이는 그는 흡사 다시 생명을 얻은 이의 모습이다.

이 책을 읽는 기간, 그리고 이 글을 쓰는 지금 이 기간 모두 사순절이다. 기독교에서는 회개하며 부활을 기다리는 시기다. 사순절(Lent)란 말은 게르만 어의 '봄'에 해당하는 말에서 유래했다 한다. 만물의 소생을 기다리는 시기. 나 역시 이 사순절을 잘 보내고, 부활절 무렵에는 좀 더 튼튼한 나무가 되어있길 바래본다. 그런 의미로 이 글을 마무리하고 기숙사 방을 나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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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아닌우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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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3/17 02:40 2010/03/17 0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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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활엽수 2010/08/25 03:1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트랙백에 있는 글을 보고 글 읽어보았는데 저는 글 후반부에서 동감이 잘 안됬는데 쓰신 글 보니 조금 이해가 되고, 동감이 되네요 :) 글 잘 읽고갑니다^^

    • 우연아닌우현 2010/08/25 08:47  댓글쓰기  수정/삭제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책 읽으면 정말 우리 자신을 보고 있다라고 느끼는 구절이 참 많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