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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7/30 미식견문록: 유쾌한 지식여행자의 세계음식기행 (34)
미식견문록미식견문록 - 10점
요네하라 마리 지음, 이현진 옮김/마음산책


http://elcamino.namoweb.net/tc/books2010-07-30T02:36:300.31010

역시 요네하라 마리다!

혼자 침대에 엎드려 읽는 내내, 어찌나 큭큭 댔는지! 그 동안 읽었던 저자의 다른 책에서처럼, 저자의 재치가 곳곳에 숨어있다 일격한다.

"부엌이 훌륭하면 훌륭할수록, 요리 솜씨는 좋지 않다."
아무튼 이런 어이없는 반비례 법칙은 부엌에 한해서는 얼마든지 눈에 띈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요리 만드는 데 든 시간과 그것을 먹어치우는 데 드는 시간은 반비례"요, "어차피 실패한 요리는 손을 대면 댈수록 맛없어"지며, "열심히 만든 음식일수록 손님의 평은 좋지 않"고, "가장 주목받는 것은 언제나 최소한의 노력으로 만든 것"이다.
-본문 20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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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기율표 화학자 멘델레예프와 보드카의 관계?

비참하게 싱크대 하수구로 흘려보냈던 내 요리들을 떠올리면 슬퍼해야겠지만, 이런 글에는 절로 웃음이 난다. 그렇다고 역시나 요네하라 마리는 가벼운 웃음만 주지 않는다. 지식을 술술 풀어내지만 결코 어렵지 않다. 오히려 독자를 마법피리에 홀린 아이들처럼 "그래서? 어떻게 됐는데?"하고 어서 다 털어놓으라고 재촉하게 만든다. "러시아의 보드카가 주기율표를 만든 러시아 화학자 멘델레예프의 작품이다?"라는 귀가 솔깃해지는 질문을 던져놓고, 보드카의 탄생신화를 밝히는 솜씨가 예술이다. 처음엔 "어, 진짜인가 보네?"하던 마음이 들다가도, 한 장을 채 못 넘겨 "그럼 아니야?"라는 의구심이 들다, 또 "어, 그럼 그 말이 진짜 진짜네!"라고 여기게 만드는 글솜씨! 정답이 궁금하신 분은 책을 읽어보시길.

감자와 토마토 이야기도 재밌다. 서양 음식에서 빠질 수 없는 이 재료들이 처음엔 악마의 음식으로 여겼단다! 정말 칼을 목에 대고 먹으라 종용해서 먹기 시작한 이야기를 풀어놓는 저자의 지식과 입담은 실로 놀라울 뿐이다. 이런 할머니가 계신다면 그 집 손녀 손자들은 아마 밤새 이야기 듣느라 잠들지 못할 것이다. 세헤라자데의 환생이랄까!


먹어본 적 없는 할바가 먹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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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바의 먼 친적, 로쿰(Turkish Delight)

그녀의 입담을 확인할 수 있는 장(章)이 바로 할바(halva)이야기가 담긴 장이다. 저자가 프라하에서 러시아 국제 학교를 다닐 무렵 처음 맛보고는 반했다는 그 신비의 꿀이다. 통역가가 되어 전세계를 누비게 되었을 때, 이 할바를 찾기 위한자의 여정을 따라가다 보면, 나도 죽기 전에 이 할바를 먹어봐야겠다는 마음이 절로 든다. 이름도 생소한 할바가 단지 텍스트로만 보았을 뿐인데 이토록 먹고 싶어지다니!

신비의 꿀답게 그 여정이 거의 운명의 검을 찾아나서는 무림계 인사를 방불한다. 터키며 그리스, 이란 지역을 훑으며 할바와 조금이라도 비슷한 이름을 가졌다거나, 재료가 같다거나, 반응이 비슷하면 여기저기 부탁해서라도 얻어 맛보고, 레시피를 구해 만들어본다. 몇 년에 걸친 기나긴 여정 끝에 만난 '파란 철뚜껑에 담긴 할바'를 만났을 때 그 감격이 활자 넘어 생생히 전해지며 필자 입에 침이 돈다주1. 필자는 할바의 친적 쯤 되는 로쿰, 혹은 터키쉬 딜라이트라 하는 것을 맛 본적이 있다. 매우 달디 단 설탕젤리 비슷한 맛으로 처음에는 '와, 달다!'지만 한 번에 3개 이상 못 먹겠는 맛이었다. 이런 로쿰과 비교할 바 못된다니, 할바 장인이 만든 파란 철뚜껑 할바를 꼭, 꼭, 꼭, 먹어보고 싶다.

아마 이 책을 읽고나면 니베아 로션을 볼 때마다 필자처럼 할바 맛을 상상하게 될지도!



최후의 애국심은 위(胃)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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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왼편)에게 오니기리를 건네주는 하쿠(오른편)

영화 '센과 치이로의 행방불명'을 보면, 하쿠가 센에게 오니기리(삼각김밥)을 주는 장면이 있다. 낯선 세계에 들어와 온통 정신없고 불안하던 센은 그 오니기리를 받아들고서는 펑펑 울며 정신없이 먹어대는 장면이 있다. 필자는 이 장면을 꽤나 좋아하는 데, 음식이 주는 위안을 너무나 잘 나타냈기 때문이다. 상황이 낯설 수록 특별한 음식보다는 늘상 먹던 음식이 더 큰 위안이다.

이 책에도 비슷한 일화들이 있다. 저자의 프라하 유학시절에 생긴 우메보시사연 뿐 아니라 더욱 극적인, 라식 수술 후유증 퇴치 사연까지 나온다. 물론 이는 음식 자체가 약 횩과를 내는 것이 아니라 고국음식이 주는 심적 안정이 가져다 준 효과다.

필자는 김치를 안 먹는 소수 한국인이다. 일주일에 쌀밥 먹는 횟수도 열 번이 될까 말까다. 그러다보니 해외여행을 나서면 음식 고생은 덜 하는 편이다. 그렇다고 한국 음식이 그립지 않은 건 아니다. 2달 터키에 있는 동안 노트 한 페이지를 '한국 가면 먹을 음식'으로 빼곡히 적어놓고 돌아와서 하나씩 지워가며 다 먹었으니까!

저자 요네하라 마리는 말한다. 애국심은 튼튼한 동아줄처럼 '위에 닿아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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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아닌우현.

책은 삶을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매체인 동시에 삶에서 가장 쉬운 도피처라고 믿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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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otnote.
  1. 지금 이 글을 쓰는 도중에도 침이 고인다. 꼭 먹어보고 말테다 [Back]
2010/07/30 11:36 2010/07/30 1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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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Subject: [에세이] 미식견문록 - 요네하라 마리

    Tracked from Nomadic DNA | Naebido Style 2010/08/05 15:20  삭제

    ㅇ 미식견문록 ㅇ 원제 : RYOKOSHA NO CHOSHOKU (旅行者の朝食) ㅇ 저자 : 요네하라 마리 ㅇ 이현진 옮김 / 마음산책 / p260 / 2009. 7 즐거운 분, 요네하라 마리. 사람을 고향과 이어주는 끈에는 참으로 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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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naebido 2010/08/05 15:1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안녕하세요? 댓글 남겨주셔서 다녀갑니다. 요네하라 마리 참 글이 읽는 맛이 있죠. 돌아가셔서 넘 안타까워요.

    • 우연아닌우현 2010/08/07 00:28  댓글쓰기  수정/삭제

      그러게 말입니다. 재밌고 알찬 이야기를 쭉 듣고 싶은데 말입니다. 아직 읽지 못한 책들을 읽을 생각만으로도 벌써 유쾌해지는 느낌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