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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12/18 Flow: 미치도록 행복한 나를 만나다 (17)
Flow: 미치도록 행복한 나를 만나다

(미하이 칙센트미하이, 최인수 옮김, 2004)

칙센트미하이 교수는 이 책을 통해 'flow'라 이름붙인 정신상태에 대해 이야기하고,
우리는 이러한 상태를 통해 행복에 가까워진다고 한다.
'flow'란 우리식으로 말하면 삼매경이다. 무언가 빠져 주변의 것들이 희미해지는 상태?

'행복'.
얼마나 쉽고도 어려운 주제인지.
이런 주제에 깊이 파고드는 학자여서일까. 나는 칙센트미하이 교수의 말이 인용된 구절들로 그 이름을 처음 들었다. 헝가리 출신인 그의 이름에서 느껴지는 이국적인 냄새와 더불어 그의 뼈있는 말들 때문에 나는 그가 작가일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이 책은 정보 이론에 근거한 의식의 현상학적 이해(응?주1)라는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한다. 저자가 직접 했던 연구들을 대중을 상대로 풀이해 놓은 책이랄까. How to Read 다윈 글을 쓸 때도 이야기했지만 정말 대단한 학자들은 전문분야의 최고학자이기 이전에 인간에 대한 철학을 가진 사상가이다. 미하이 칙센트미하이 역시 그렇다. 더구나 그는 누구보다 치열하게 '인간은 언제 행복할까?'를 고민한 학자다. 그리고 그는 이 책을 통해 강력한 힌트를 우리에게 던져준다 - 몰입.

그가 말하는 몰입(Flow)는 내적 에너지를 선택적인 주제에 집중하는 상태다. 그래서 정말 몰입의 상태에서는 쾌락을 느끼기보다는 자아가 그 환경과 일치를 이루는 느낌을 받는다는 것이다.

나의 이야기로 예를 들어보자. (펼치기)


편지 쓰기

편지를 쓰는 것 역시 Flow를 일으킬 수 있다

내가 Flow를 느끼는 다른 행동으로 편지쓰기를 들 수 있다. 그렇다. 이메일과 트위터가 세상을 먹고 있는 요즘에도 나는 손수 편지 쓰는 걸 좋아하는 20세기 사람이다(편지 쓰면서 CD Player로 음악을 듣기도 한다!)

편지를 쓰면 일기와 마찬가지로 나를 반추해 볼 수 있다. 그리고 글을 쓰면서 나도 모르고 있던 내 감정의 실체를 만난다. '아, 나는 이래서 서운하게 느꼈구나', '내가 이런 면은 아직 유아적인 면이 있군.' 하고.

더구나 일기와 다르게 편지는 내가 관계맺고 있는 사람들이기에 -특히, 대부분의 경우는 내가 사랑하고 믿는 몇몇이다- 쓰면서 내가 못 났음에도 불구코 사랑받는 존재임을 잊지 않게 되어 자기비탄에 빠지는 걸 줄일 수 있다.

공상

공상도 능력이다!

글을 쓰면서 접어드는 반추는 대개 공상을 불러오기 마련이다. 너무 심한 공상은 물론 위험하지만, 공상 자체는 나쁜 것이 아니란다. (휴~) 칙센트미하이 교수는 공상을 통해 현실에서 받을 수 없었던 위로를 자기치유 형식으로 얻기도 하고, 앞으로 일을 내다보며 사회적 사고실험(예: 이렇게 시험공부 내팽개치고 포스팅하면 내일 시험 결과는 좋지 않을 거다라는 추측)도 할 수 있는 능력이라 칭한다. 실제 공상이 불가능한 사람도 있다고 하니, 사차원으로 날아간 사람에게 멍 때린다 놀리지 말 일이다.

그가 책 전반에 걸쳐 '몰입'의 적으로 돌린 이는 바로 바보상자 TV다. 깜박이는 화면들을 쳐다보고 멍해있으면 집중하지 않아도 시간이 흘러 우리의 내적 에너지 사용을 방해한다는 거다.

나는 이 주장에 좀 딴지를 놓고 싶다. 물론 수긍이 가지 않는 바 아니다. 현대 사회에서 시간 때우는 데 TV만큼 자주 쓰이는 녀석이 있을까. 그저 넋놓고 쳐다보고 있으면 시간이 흐르고, 정신을 놓고 있노라면 하루가 훌쩍이다.

굳이 교육적인 프로그램을 다큐프로그램이나 시사프로그램을 들먹이지 않아도 나는 TV에게 Fair Hearing을 줘야한다 생각한다. 플로우를 선사하는 '지적활동', '문화적 상징'이 TV 프로그램에도 있기 때문이다. 특히나 스토리가 있는 드라마라면 더욱더주2. 칙센트미하이 교수가 TV를 공격하는 주 근거는 '수동적 수용'이 내적에너지 사용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러나 TV 시청이 늘 수동적 수용인 것은 아니다. 내 동생은 나보다 9살이 어린 막둥이다. 이 녀석이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 온 세계를 유아들을 현혹한 녀석들이 있었으니.....
텔레토비

이제 정말 안녕~

 내 동생도 예외는 아니어서 매일을 보았다. 다 컸다고 생각하는 내 입장에서는 대체 왜 녹화한 걸 자꾸 보나 싶었다. 더구나 안 그래도 반복*반복하는 녀석들인데, 그걸 다시 (반복*반복)^반복 하는 꼴이니, 나는 죽을 맛이었다.

그렇지만 그 아이가 그저 넋 놓고 수동적으로 바라보기만 했을까?
외계에서 온 텔레토비가 지구를 배워가는 것과 마친가지로 유아들은 온통 낯선 세계를 배워가는 입장이다. 그들 입장에서 텔레토비 이야기는 자신들의 이야기일 수 있다. 이를 반복함으로써 그들은 최대한의 심볼들을 뽑아내어 체화시키려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그 다음 방학동안 '인어공주 2'를 하루 한 번씩 총 40여회를 봐야했다. 그나마 자막판이라서 영어공부라도 했으니 다행이랄까.)

사용자 삽입 이미지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 것은 꼭 유아들에게 해당하는 것만은 아니다주3 적극적으로 드라마를 시청하는 '폐인'들의 등장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드라마 '부활'을 보면서 왜 작가는 쌍둥이들에게 주사위를 나누어 갖게 했을까. 왜 파란색과 노란색 주사위였을까. 왜 동생의 랩탑 비밀번호가 yellow dies였을까, 하고 고민해보고 분석해보는 시청자들의 등장. 물론 9%라는 시청률로 알 수 있듯 아직 이런 추세가 대세는 아니다.

윗 편 오른쪽의 마치 장르화를 연상시키는 장면은 BBC의 시대물 드라마 North and South의 한 장면이다. 아직 텔레토비만큼 보지는 못했지만 4부작짜리 이 드라마를 꽤 보고 또 봤다. 아마 또 볼 것이다. 이제는 자막없이 볼 수 있고 주요 대사는 외울 지경이다. 그런데 왜 또 볼까? 물론 Richard Armitage씨가 정말 샤프하고 멋있으시다. 그러나 Armitage씨가 기즈본으로 나오는 로빈훗은 도저히 두 번 못 보는 것에서 알 수 있듯, 그의 매력 때문에 이 드라마를 다시 보는 것은 아니다. North and South를 다시 볼 때마다 새로이 발견하기 때문이다. '수용'이 아닌 '발견'. 차이는 집중력이다. 낮은 채도로 빅토리아 시대 산업사회 분위기를 나타내려 했던 감독의 의도, 마가렛과 쏜튼 부인 둘 다 단호한 여인으로 사실은 서로가 닮은 꼴이라는 것...... 다시 볼 때마다 이런 작은 조각들을 찾아내 이야기에 덧붙여 가는 것은 내게 책 읽는 일 만큼이나 지적활동이기 때문이다.



드라마가 되었든, 책이 되었든, 설거지가 되었든 당신을 몰입시키는 것, 내적 에너지를 쏟게 하는 것, 행복하게 해주는 것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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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아닌우현.

책은 삶을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매체인 동시에 삶에서 가장 쉬운 도피처라고 믿는 사람.
다른 사람이 글을 너무 잘 쓰면 배가 아픈 속 좁은 글쟁이 워너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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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otnote.
  1. 그냥 본문 59쪽을 보라 [Back]
  2. 그렇다, 나는 공대녀이면서 오타쿠다 [Back]
  3. 그러나 본인이 우정아 교수님 정의에 의하면 유딩이라는 점에서 확신할 수는 없다. [Back]
2009/12/18 01:22 2009/12/18 0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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