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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3/01/06 마음대로 고르세요 (13)

마음대로 고르세요

2013/01/06 13:07
마음대로 고르세요 - 10점
켄트 그린필드 지음, 정지호 옮김/푸른숲

이전부터 <선택의 패러독스><쉬나의 선택 실험실>을 읽으면서 선택지가 많은 것이 좋은 것만은 아니다, 유한한 존재인 우리는 무의식적으로나 또는 심사숙고를 거치고도 우리 자신에게 해로운 선택을 할 때도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런데 이 책은 더 나아가 '선택'이란 무엇인가, 선택이 온전히 한 개인의 의지인가, 그렇다면 혹은 그렇지 않다면 선택에 따른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가 묻는다.



네가 결정한 거니 네 책임? 자기책임의 신화

상사가 '짤릴래, 나랑 잘래?'라고 묻는다면 그것은 선택권을 주는 것이 아니다. 작업 환경이 위험할 줄 알지만 회사는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는 것이라고, "싫으면 나가"라고 하는 것은 어떤가?

놀랍게도 메사추세츠 법원은 후자에서 고용주의 손을 들어주었다. 당시 판사는 "노동자가 선반이 무너질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일터에 남기로 결정한 것은 위험을 감수하기로 선택한 것"이라고 말했다. 자신과 가족을 부양해야 하는 노동자의 환경은 이러한 판결에 영향을 주지 못했다.

100년 전에 내려진 이러한 판결이 뜨악스럽긴 하지만 논리만 따지면 틀린 게 없다. 그 노동자는 작업 환경의 위험을 충분히 간파하고 있었고, 위험을 피할 방법(퇴사)도 있었다. 그럼에도 그는 출근하기로 "결정"했으니 이에 따른 책임 역시 그에게 주어진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현대사회는? 2005년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뉴올리언스를 강타했을 때 2,100명이 사망했다. 이들 대부분은 허리케인이 오기 하루 전 강제 대피령이 발령되었음에도 집에 남아 있던 이들이었다. 이를 두고 <워싱턴 타임스>는 이렇게 말했다. "수천 명의 뉴올리언스 주민은 (중략) 개인으로서의 책임감을 보여주지 못했다" 물론 이러한 보수주의자의 개인책임론은 오래가지 못했지만 그들의 논리 역시 100년 전 메사추세츠 법원의 판결과 같은 논리다. 희생자들은 폭풍이 와도 집에 남아 있기로 선택한 이들이기 때문에 그 책임 또한 희생자에게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현대 사회를 사는 일반 시민이라면 이러한 개인책임론이 불편할 것이다. 대부분의 뉴올리언스 주민들은 가난했고 갈 곳이 없는 상황이었다. 100년 전 메사추세츠 노동자는 자신과 가족을 부양해야 하는 환경 때문에 위험한 직장으로 출근했다. 그렇다면 선택의 결과에 환경은 얼마만큼 책임이 있을까?

3~4년 전 뉴욕의 청소년 두 명이 맥도날드 사를 고소했다. 자신을 비만이 되게 만드는 환경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이 사건이 미국 내 퍼지면서 "자기 절제를 못하고 습관적으로 감자튀김을 먹은 아이들이 자신의 비만을 남 탓으로 돌린다"는 비웃음을 샀다. 하지만 양심있는 마케터라면 맥도날드 사의 영악한 전략, 그러니까 식욕을 부르는 노란색, 뇌에 즉각적이고 중독적인 쾌락을 불러오는 단맛과 짠맛을 한껏 선사하는 메뉴, 저소득층이 모여 사는 동네나 도로변 휴게소, 공항에 자리한 위치, 등등등을 알고나서도 과연 이 청소년들을 힐난할 수 있을까?


너의 결정이 온전한 너의 결정이 아니다; 인간의 뇌와 문화, 권위, 시장의 힘

지름신을 자주 접신하는 이라면 접신의 순간의 감정을 돌이켜보라. 그 상황에서 두뇌의 화학작용은 쾌락중추에 집중한다. 낭비벽이 있는 사람의 뇌든 알뜰한 사람의 뇌든 정도의 차이일 뿐 합리적이 아니라 순간적인 감정에 따라 물건(혹은 서비스를)을 구입한다. 그러나 신경과학자와 마케터가 아니고서는 우리가 이러한 괘락중추에 좌지우지되는 존재라는 사실을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한다. 그러고 있는 동안 마케터는 쾌락중추를 자극해 우리가 무엇을 갈망하도록 유도하고 지출에 대한 고통 중추의 반응을 억누른다. 위에서 말한 맥도날드의 식욕을 자극하는 노란색, 단맛과 짠맛이 그러하고, 소주 광고에 나오는 볼륨감 넘치는 여동생들이 그러한 역할을 하고 있다.

그렇다면 문화는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가?
스파이더맨 놀이 중인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

꼬마 스파이더맨과 장단 맞춰 노는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 우리나라에서라면 '체신에 맞지 않는다'라고 된통 혼나지 않았을까?

바지 입은 것으로 소송

바지를 입었다는 이유로 소송당한 수단의 루브나 후세인. 이곳에서 여성이 치마를 입는 것은 '자발적인 선택'이라 보기 어렵다.

대통령과 농구 한 판 후에 발을 쭉 뻗고 쉬는 영화배우들, 꼬마 스파이더맨의 장단에 맞춰 익살맞게 장난치는 대통령. 대한민국에서 쉽게 상상할 수 없는 모습이지만 미국에서는 일어나는 일이다. 대통령이 근엄하고 선비다운 모습을 보이기 바라는 문화가 한 몫한다. 물론 우리 대통령은 어묵을 맛있게 잡수시긴 했지만......

조금 더 극단적인 예로 수단이 있다. 수단의 루브나 후세인이라는 여성이 카페에서 연행되어 소송을 치뤘다. 죄목은 치마가 아닌 "타이트한주1" 바지를 입었다는 것이다. 후세인은 기꺼이 자신의 자유를 위해 재판장에 서서 자신을 변호했지만 내가 수단에 사는 여성이었다면 어땠을까? 벌금과 재판에 서는 수고스러움까지 감당해가며 바지를 입겠다고 선택할까?

자베르가 놓쳤던 것: 법 집행자에게 공감이란?

사용자 삽입 이미지

레 미제라블에서 자베르는 자신이 정의를 실현하고 있다고 굳게 믿었을 것이다. 저자가 말한 '지적 공감'을 놓친 채 굳게 그 길을 걸었던 자베르는 '자신이 틀렸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검은 강물로 몸을 던진다


비록 특정 환경에서 모든 사람이 같은 선택을 내리는 것은 아닐지라도 한 개인의 선택이 온전한 개인의 결정이 아니라 그 개인을 둘러싼 환경과 인간의 유한한 한계라는 점을 받아들였다면 이제 생각해보자. 그렇다면 선택에 따른 책임은 한 개인이 어디까지 져야 하는가? 그 책임이 법률적인 책임이라면?

필자는 개인적으로 이 부분이 이 책에서 가장 빛나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저자가 보스턴대 법률학자로서 법이, 재판관이 선택에 따른 책임을 어디까지 물어야 하는 지에 대해 숙고해 왔다는 점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위에서 말한 <선택의 패러독스><쉬나의 선택 실험실>과 같이 진화심리학자나 신경과학자의 저작에서 한 발자국 더 나아간 고찰이다.

먼저 그는 우리가 재판관하면 떠올리는 스포츠 경기의 심판관 이미지를 내려놓을 것을 주문한다. '아웃'과 '세이브'를 외치는 심판관과 달리 재판관은 단순한 법의 집행이 임무의 전부가 아니기 때문이다. 재판을 통해 우리는 잘못된 선택을 한 사람들에게 적어도 자기 이야기를 할 기회를 부여 하고, 그들이 다른 사람들의 이해를 구하고, 마침내 이해받을 기회도 주어야 하기 때문이다주2.

이를 위해 저자는 재판관에게 '지적 공감'이 필요하다 주장한다. 지적 공감은 가해자를 불쌍히 여기고 감형해주는 동정심이 아니다. 결정이라는 것이 흔히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복잡하고 여러 요소로부터 영향을 받는다는 사실, 이에 따라 유한한 우리 인간은 잘못된 선택을 내리기도 한다는 사실을 이해하는 것이다.

이러한 지적은 재판관에게만 해당하지 않을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며 상영 시간을 기다렸던 영화 레미제라블에서도 지적 공감이 부족한 인물을 볼 수 있었다. 자베르다. 그는 자신의 행동을 정의의 구현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래서 그는 마들레느 시장으로 신분을 감추고 있는 장발장에게 "내가 잘못 알고 당신을 장발장이라 신고했다. 처분해달라"라고까지 말했던 것이다. 그가 믿은 정의는 법의 엄격한 집행이었고 자신 또한 그에 벗어나지 않는다고 믿었기 때문이다주3.

그런 그가 장발장에게 "당신은 당신의 사명에 따라 일을 한 것"이라는 지적 공감을 얻었을 때 자신의 신념이 무너져내리는 소리를 들었을 것이다. 그렇기에 검은 강물에 총을 내버리고 몸도 따라 내버렸을 것이다.

굳이 사법계에 몸담고 있지 않더라도 우리는 매일 누군가에게 '착한 사람', '나쁜 사람', '몹쓸 사람' 등등 '판정'을 내리며 산다. 그 약식판정에 우리가 지적 공감을 포함시키지 않는다면 어느 날 우리도 작은 죄인을 과하게 벌하고, '나는 진정 정의의 편이었나?'하는 고뇌에 흔들릴 지 모른다. 나의 행동, 남의 행동을 불러일으키는 선택, 그리고 선택이라 볼 수 없는 선택에 관심을 가져야 할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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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아닌우현.

책은 삶을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매체인 동시에 삶에서 가장 쉬운 도피처라고 믿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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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otnote.
  1. 스키니진을 떠올리지 마시길. 구글에서 찾아보니 이건 스키니진은 커녕 밀리터리 카고 바지에 가깝다 [Back]
  2. 본문 261쪽 [Back]
  3. 그래서 그가 Stars를 부를 때 정의를 상징하는 독수리 상을 등지고 있는 장면은 참 절묘했다. 그 사진을 삽입하고 싶었으나 찾지 못했다 [Back]
2013/01/06 13:07 2013/01/06 1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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