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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6/15 마녀의 한 다스: 유쾌한 지식여행자의 문화인류학 (37)
마녀의 한 다스마녀의 한 다스 - 10점
요네하라 마리 지음, 이현진 옮김, 이현우 감수/마음산책

http://elcamino.namoweb.net/tc/books2010-06-15T13:44:270.31010

화장실 개그: 인류 공통의 언어유희

동시통역사였던 저자가 들려주는 화장실 개그는 "웃기려 애 쓰는" 개그가 아니다. 다른 언어를 통역하다보니 전혀 다른 맥락에서 자국어로는 "인체의 하반신"혹은 "그 배출물"에 관한 단어가 나오는 상황이다. 이런 예기치 못한 상황이다보니 좌중이 웃느라 꼴까닥 넘어가는 상황, 혹은 이미 그 전에 동시통역관이 우스워죽는 경우가 있다 예를 들면 이런 거다. 머리 끝부터 발끝까지 위엄으로 무장한 듯한 사회주의 노동영웅 육군대장 시리미에타. 그런데 시리미에타는 "엉덩이 보였다" 뜻이다. 그 밖에도 일본 맥주 에비스는 러시아어 중 "Fuck"의 명령어에 해당한다든지, 참치 종류인 가쓰오가 이탈리아에서는 남근을 뜻한다든지 하는 예기치 않은 "사고"들이 많다.

아다시피 모차르트는 똥에 관한 이야기를 너무나 사랑했다. 그런데 꼭 모차르트 뿐 아니라, 쟁쟁한 문인들까지 그랬다 한다. 사실 가장 원초적인 개그 중 하나가 화장실 개그 아니던가.

이런 현상에 관한 저자의 고찰은 이렇다.
원래 하반신에 관한 어휘는 어느 언어에나 풍부하다. (중략) 예를 들어 액체 배설물 하나만 봐도 소변, 소피, 오줌, 뇨, 작은 거, 쉬,......,  등 당장 동의어가 몇 개나 떠오른다. 그만큼이나 인간에게 친숙한 존재다. 요람에서 무덤까지 따라다니는 현상이니 당연하다. 주1
다양한 문화를 직접 몸으로 체험하고 중개했던 저자이기에 가능한 개그이고 고찰이다. 끅끅 웃어가며 책장을 넘기면서도 가볍지만은 않은 이유기도 하다.



이단: 나를 나이게 하는 존재

이단은 완결된 것처럼 보이는 세계에 구멍을 내준다. 늘 보아온 풍경을 달리 보게 하고, 신선한 면을 보게 한다. 하지만 지금까지 정의나 상식으로 여겨져온 것을 뒤집는 위협도 숨기고 있다 주2
사용자 삽입 이미지

Marcel Duchamp, Fountain

이 책에서 주로 다루는 "이단"은 "다른 문화"를 이야기하지만, 위에서 작가가 말하는 이단의 가치를 이야기하기 위해 조금 다른 예를 가져와봤다. 서구 미술 세계의 역대 "이단"을 꼽으라면 많은 사람들이 마르셀 뒤샹(Marcel Duchamp)의 '분수(Fountain)'를 꼽지 않을까 싶다.

지금이야 한 세기 가까이 지나 그 충격 또한 무뎌졌지만, 당시 전통적인 예술에만 익숙했던 사람들은 이 변기를 보고 얼마나 당황했겠는가? 그리고 발발한 질문들. "대체 예술이 무엇인가?", "어디까지를 예술이라 할 수 있는가?"

이전까지 사람들은 누가 그래야 한다 하지도 않았건만 "예술작품=예술가가 손으로 만든 작품"이라 여기고 있었다. '분수'는 이러한 당연한 생각에 반기를 든 것- 곧 이단-이었고 이를 통해 우리는 예술의 근본적 가치를 "예술가가 만든 물건"에서 "예술가의 의도"로 이행할 수 있었다.

이 책 제목 "마녀의 한 다스"를 보자. 우리가 아는 다스(dozen)은 12개다. 왜 그런 건지 굳이 생각해본 적 있는가? 필자도 저자가 오컬트주3 마을 체험 이야기를 듣기 전까지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저 예전에 연필 한 다스를 사면 12자루 들었으니까 다스는 12개일 뿐. 그 것이 당연한 것이었다. 그런데 그 마을 마녀들에겐 한 다스는 13개 들이다. 여기서부터 저자의 빛나는 고찰이 시작된다. 왜 한 다스는 12개였을까? 12가 길한 숫자인 이유는 무엇일까? 왜 13은 흉한 숫자로 인식할까? 우리가 익숙해진 서구문명에서 12는 분명 길한 숫자다. 예수의 사도가 12명이었고, 12는 1로도 2로도 3으로도 4로도 6으로도 나눠지는 "아름다운" 숫자다. 반면 13은 이런 규칙을 뒤엎는 솟수다. 그러나 사실 13은 동아시아 불교 문명에서 길한 숫자였다. 불교법전은 13경으로 정리되었고, 음력 3월 13일에는 13세 소년, 소녀가 차려있고 보살님을 참배하는 '13참배'라는 행사가 있다주4. 유럽인이 본다면 이런 문화는 이단이다.

이런 이단을 '마녀사냥' 하는 것으로 우리라는 집단을 강력히 결속시키기 한다. 반공시대 이단은 빨갱이였고, 나치 통치 하 독일의 이단은 유대인이었다. 교회의 이단은 기독교 아닌 모든 종교여서 예수의 가르침까지 거스르는 잔학한 전쟁을 치루기도 했다.

그러나 이단의 역동성을 잘 받아들일 수 있는 사회 풍토라면, 뒤샹의 'Fountain'이 예술의 영역을 넓혔던 것처럼, 최남선의 '해에게서 소년에게'가 한국 현대시를 탄생시켰듯이, 이단은 '나'의 범위를 넓히고 깊게 할 수 있지 않을까?



웃다 울다, 롤러코스터 태우는 필력

필자는 얼마전 종영한 '신데렐라 언니'를 끝까지 보지 않고 '검사프린세스'로 갈아탔다. 문근영과 서우의 연기에 감탄했고 화면미도 나름 좋았지만, 쉴새없이 가라앉는 그 분위기를 견디기 힘들었다. 모든 작품에 코믹한 요소가 있어야 하는 건 아니지만, 웃음은 자못 딱딱해질 수 있는 구석을 소화하기 쉽게 풀어낸다. 화장실 개그 뿐 아니라 책 전반에 걸쳐 이방인이 낯선 문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일으키는 소동을 재미있게 엮어내는 저자의 솜씨는 그런 면에서 뛰어나다. 그렇지만 그저 외국인을 덜 떨어진 사람으로 만들지 않고, 그 사연을 세밀히 들여다보고 다른 문화에서 오는 충돌을 끌어내 해체해보이는 저자의 수고는 더더욱 감동이다.

한국인이어서 더욱 뭉클했겠지만, 그녀가 베를린 하늘에서 만난 북조선 사람 이야기는 나를 울릴 뻔 해서, 하마터면 필자 엉덩이에 뿔 날 뻔했다. 독일 통일 전 분단된 베를린을 보며 그녀는 별 생각없이 "이 나라는 당신의 나라와 운명이 같아 보이네요"라고 했다가 조금 전까지 온화했던 북조선 신사가 이성을 잃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부아가 치밀어 말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그 조선인을 보며 쉽게 '피해의식이다'라고 일축하지 않고 '한국과 북한이 전범 일본의 책임을 대신하고 있다'라는 논리를 이끌어 내는 걸 보며 어찌나 가슴이 쿵쾅 거렸던지. 월드컵 경기조차 안 보는 필자가 말이다.



요네하라 마리의 다른 책도 곧 찾아보게 될 듯 싶다. 특히 동시통역사 시절 이야기가 많은 '미녀냐 추녀냐'와 소설 '올가의 반어법'을 기대하고 있다. 읽으려 잔뜩 쌓아놓은 책들을 다 읽는 대로 읽어야지. 저자가 더 오래 살아 좋은 글을 많이 남겨주었음 하고 뒤늦게서야 바라고 있다. 어쩌겠는가. 이렇게라도 남겨주고 가신 이에게 감사를 표할 뿐.

+덧 (예고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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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otnote.
  1. 본문89 [Back]
  2. 본문 22쪽 [Back]
  3. 일종의 신비주의 주술 [Back]
  4. 본문 24쪽 [Back]
2010/06/15 22:44 2010/06/15 2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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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곤듀♡ 2010/06/24 08:5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음크크 동생님 글 잘쓰는데? 저 책 막 읽고 싶어진다? 난 요새 스웨이(sway) 읽고 있는데 고것도 아주 재밌어.

    • 우연아닌우현 2010/06/24 23:12  댓글쓰기  수정/삭제

      이 책이랑 이 작가가 쓴 '프라하의 소녀시대'도 참 좋아. 스웨이는 소설?